이기형 통일시인 5주기 추모 시 낭송회, 생전 시인의 모습 회상하고 추모하는 시간 가져
이기형 통일시인 5주기 추모 시 낭송회, 생전 시인의 모습 회상하고 추모하는 시간 가져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6.1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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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통일시인 이기형 기념사업회’는 지난 12일 오후 6시 30분, 대학로에 위치한 이음센터 이음아트홀에서 “이기형 시인 5주기 추모 시 낭송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이기형 시인 생전의 행보를 추적하며 그를 기리는 시를 낭송하고, 회고담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기형 추모 낭송회에 참여한 시인들. 사진 = 육준수 기자>

이기형 시인은 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났다. 일본대학 예술부 창작과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해방 직전에는 지하협동사건과 학병거부사건 등 항일투쟁에 가담한 혐의로 약 1년간 복역했다. 각별히 모시던 몽양 여운형이 암살당한 47년 7월 이후로 33년간 창작과 사회 활동을 중단했으며, 80년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2013년 6월 1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낭송회의 사회는 맹문재 안양대학교 교수가 맡았으며, 추도사는 정동익 사월혁명회 회장, 권오현 양심수후원회 회장과, 임헌영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정동익 회장(좌)과 권오현 회장(우). 사진 = 육준수 기자>

정동익 사월혁명회 회장은 “이기형 선생님이 가신 날인 오늘, 싱가폴에서는 조미 정상회담이 있었다.”며 “이기형 선생이 그토록 바라던 통일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살아계셨다면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시로 쓰셨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제게 통일이 되면 북에 있는 자녀들을 만나달라고 오래 전에 부탁하셨다.”며 “아들인 영철씨와 딸 호정씨를 만나게 되면, 이기형 선생님이 얼마나 자녀분을 그리워했는지, 어떻게 모범적인 삶을 살았는지 전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며 “이 약속 지킬 날(통일의 날)이 그리 머지않은 것 같다.”고 기쁨을 표했다. 

권오현 양심수후원회 회장 역시 “선생님이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통일세상을 못 보신다 해도 오늘 이 순간만이라도 보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며 “선생님은 발로 현장을 뛰고 취재하시며 통일의 목소리를 담아낸 현장 시인이셨다.”며 “비록 오늘 함께하진 못했지만 선생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제겐 들리고, 보이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반대로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이기형 선생님께서 하늘에서 오주기를 맞아 흐뭇해 하시면서도, 내 속을 몰라주냐고 하실 것”이라며 “지금 살아계셨다면 트럼프를 욕하고, 화를 내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조미 정상회담에서 맺은 4개 조항 중,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애쓰겠다는 1조항 외에는 “전부 북한에 강요하는 내용”이라는 의견이다. 임 평론가는 “트럼프가 막판에 좋은 일 하는구나하고 귀여워질 만하다가, 제국주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며 “너무 환희에 차지 마시고, 앞으로 (미국이) 우리 남북한을 얼마나 더 괴롭힐까”를 염두에 두라고 첨언했다. 그러며 임헌영 평론가는 “선생님께서 가졌던 올바른 역사 의식을 함께 나누길 바란다.”고 전했다. 

추도사 뒤에는 시낭송이 이어졌다. 행사에 참여한 시인들은 이기형 시인의 시를, 혹은 이기형 시인을 회상하며 직접 쓴 시를 낭송했다. 

<박희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김명지, 문창길, 박희호, 오우열, 유순예, 정우영, 조기조, 나해철, 김영옥 시인은 이기형 시인의 시를 꼭꼭 씹듯이 읽으며, 고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월남자”라는 박희호 시인은 “몇 해 전 북한에 있는 제 사촌들과 연락이 닿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 시인은 “이기형 선생님께 그들과 만나야 하고 물으니 아무 말씀 없이 제 어깨를 두드려주셨다.”며 “저는 그거에 힘을 받아 가족을 만났다. 오늘따라 선생님이 더욱 그리웁다.”고 이야기했다. 

권옥희, 김이하, 이승철 시인은 고인을 떠올리며 직접 쓴 시를 낭독했다. 권옥희 시인은 ‘통일별곡 : 여민 이기형 대표님을 보내고 맞는 첫 생신(11월 11일)날에’는 “선생님이 소천하시고 첫 생일에 쓴 시”라며 “세상에서는 빼빼로데이라고 하지만, 저는 너무 마르신 선생님이 생각나서 썼다.”고 이야기했다. 설명대로 시의 화자는 ”오늘은 당신이 몹시도 그리운 빼빼로데이/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당신이 걸어온 길과/목타는 통일 염원으로 야위어만 가던 당신의 육신이/빼빼로가 되어 아릿하게 남은 가슴에 영원히 기억되는 날“이라며 이기형 시인을 추억하고 있다. 
   

<권옥희 시인(좌), 이승철 시인(우). 사진 = 육준수 기자>

‘저토록 푸르렀던 임이여 : 통일시인 여민(與民) 이기형 선생을 생각하며’를 낭독한 이승철 시인은 “84년 12월 자유실천문인협회가 재창립될 때 이기형 선생님을 처음 봤다.”고 이야기했다. 이 시인은 “선생님께서는 자실 사무실이 열리기도 전에 미리 오셔서 문 앞에 기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전두환 오공 통치가 극악에 달한 때임에도, 궂은일과 농성에 빠지지 않고 오신 분.”이라고 이야기했다. 

이기형 시인의 아들 이휘건 한양대 교수는 “나의 아버지 이기형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고인을 회고할 예정이었으나, 차오르는 눈물을 참기 어려워했다. 그는 “저희 아버지께서는 며느리를 굉장히 좋아하셨고, 아내도 아버지를 좋아했다.”며, 아내인 윤석희씨에게 발언 기회를 넘겼다. 

<이휘건 한양대 교수(좌)와 윤석희씨(우).사진 = 육준수 기자>

윤석희씨는 “아버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아직도 그립고 힘들지만, 아버님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아 아버님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일요일에 들렀던 이기형 시인의 산소에는 이미 누군가 술잔과 꽃을 놓아뒀다는 것. 윤석희씨는 “이 자리를 통해 아버님을 다시 뵙는 것 같다.”며 “내년, 후년에도 많은 분들을 뵐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맹문재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낭송회는 많은 시인들의 참여 속에서 끝을 맺었다. 행사를 마치며 맹문재 교수는 “바쁘신 가운데 와주신 시인들, 가족 분들께 모두 감사드린다.”며 “내년에도 건강하셔서 이 자리에서 다시 반갑게 뵐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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