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제2장 2편: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오딧세우스와 식민제국주의.
[연중기획]제2장 2편: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오딧세우스와 식민제국주의.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6.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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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   
-오딧세우스와 식민제국주의

2장 1편 보기

2, 식민제국주의의 계보와 신화 재생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제국주의라는 신념이 내면화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문명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디세이아]에서 숱하게 볼 수 있거니와 오딧세우스가 다다른 곳에서 만나는 모든 섬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한 야만인들, 아니 괴물이 아니고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막말로 야만족속을 징치하고 다스리고 한 수 지도할 수 있다는 사고가 매우 자연스럽게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즉 ‘문명인-야만인’ 구도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기본구도라는 거, 바로 여기에서 문명적 오만을 지닌 사고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먼서 펼쳐진 인류사의 긴 여정을 탐색할 수 있거니와, 그것은 머 문학으로만 한정지어 말한다 하더라도 그리스의 [플루타크 영웅전]을 비롯, 로마의 시저의 [갈리아 전기]를 들 수 있고, 영국의 대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들 수 있으며, 테니슨의 ‘율리시스’, 그리고 미국의 허먼 멜빌의 [흰 고래白鯨]을, 여기서 우리는 ‘미국판 오딧세우스’ 스타벅스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식민제국주의라는 상념은 이렇게 오딧세우스 이래, 끊임없이 그리스는 물론 서구인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haunt 이양과 변양, 차이와 반복을 거듭하면서 마르지 않는 샘으로, 서구정신사의 저류低流로 꾸준히 흘러오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중에서 영국시인 테니슨의 ‘율리시즈Ulysses’를 언급해 보것습니다 왜냐하먼 테니슨의 이 야심작이야말로 ‘작가와 전통적 인물이 상호작용하여 생산된 최고의 작품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Tennyson's Ulysses is one of the surest products of this personal interaction between author and traditional figure(W B . STANFORD [THE ULYSSES THEME]) 

알프레드 테니슨, 그는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이른바 대영제국의 계관시인이었습니다 당시의 빅토리아 여왕이 그에게 이 빛나는 영예를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는 후일 남작이 되고, 테니슨 경이라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의 시적 공훈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예술가들은 어는 시대든 도덕이나 철학 또는 종교의 시종으로,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추종자나 후원자에게 너무 낯간지러운 말로 아첨하는 사람이었고 구세력이나 신흥세력에게 눈치 빠르게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라던 니체([도덕의 계보학])의 말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릴없는 왕으로서,/이 적막한 화롯가, 불모의 바위 틈서리, 
늙은 아내와 짝하여,/먹고 자고 욕심만 부리는 야만 족속에게, 
어울리지 않는 법이나 베푼다는 것,/쓸모없는 짓이다. 
방랑을 쉴 수 없는 나,/인생을 찌꺼기까지 마시련다. 
나를 따르는 자들과 또는 혼자서/언제나 크낙한 즐거움 맛보고, 또는 크낙한 고난당하였느니, 
뭍에서, 또는 달리는 구름 사이로/비에 젖은 히아데스 성좌가 
검푸른 바다를 노엽게 할 때./이제 하나의 이름이 되어버린 나. 
굶주린 심정으로 방랑하면서/본 것, 배운 것도 많다. 
뭇 도시들, 풍습, 기후, 의회, 정부,/나 자신 얕보이지 않고 어디서나 기림받았다. 
바람 찬 트로이의 소란한 들판에서/동료 영웅들과 전쟁의 재미 만끽하였다. 
나는 나 자신의 모든 체험의 일부이다./그러나 모든 체험은 하나의 홍예문, 
그 너머로 가보지 못한 세계가 흘긋 보이나,/다가갈수록 그 변경은 사라져버린다. 
지루하여라, 머무름, 끝장냄, 닦지 않아 녹슮,/쓰지 않아 빛나지 않음이여! 
숨쉬는 것이 사는 것인가!/삶 위에 삶을 포개어 가는 것은 
너무나 사말하다./나에게 삶도 많이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낱낱의 시간이/그 영원한 침묵에서 구제되어, 
그 이상의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가져온다./삼 년 동안이나 몸을 살찌우고 있는 것, 
추악한 짓이어라,/이 늙어가는 영혼은 
인간 사상의 아득한 변경 너머로/침몰하는 별처럼 지식을 추구하려 몸살하는데, 
이게 내 아들, 내 혈육 텔레마커스,/그에게 왕홀과 섬을 맡긴다. 
내가 귀애하는 놈,/사나운 족속을 순화하여 
유익하고 선한 일에 따르게 할/참을성 있는 지혜로써 
이 힘든 일을 감당할 지각이 있다./내가 없더라도, 
뭇 일거리에 둘러싸여/인정을 베푸는 일에 실수 없고 
집안 신들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결함이란 조금도 없다. 
그는 자기 일을, 나는 내 일을 할 뿐. 

저기 항구가 있다. 돛에 바람이 가득하다./어둡고 넓은 바다가 저기 검푸르다. 
나의 뱃군들아,/나와 더불어 애쓰고 일하고 궁리한 사람들아, 
우레와 햇볕을 똑같이 흔쾌히 받아들이고,/열린 마음씨, 열린 머리들과 맞붙어 싸운 사람들아, 
그대들도 나도 다 늙었다./그러나 늙은 나이에도 명예와 일거리가 있다. 
죽음이 모든 것을 삼킨다./그러나 종말이 있기 전, 
무언가 명예로운 업적을,/신들과 다툰 사람에게 어울릴 일을 
이룩할 여지는 남아 있다./바야흐로 바위 끝에 불빛이 반짝인다. 
기나긴 날이 이운다. 느린 달이 솟는다./깊은 물이 많은 목소리로 한숨지으며 감돈다. 
오라, 친구들아./더욱 새로운 세계를 찾는 일이 
너무 늦진 않았다./배를 밀어라, 줄지어 앉아서 
소리치는 파도 이랑 가르며 가자./나의 목표는 죽을 때까지 
일몰 저 너머로, 모든 서녘 볕의 자맥질을 지나,/멀리 저어가기로 굳어 있다. 
혹시는 심연이 우리를 삼킬지 모르나,/혹시는 '행복의 섬'에 닿아 
우리 옛 친구 위대한 아킬레스 다시 보리라./비록 잃은 것 많아도, 아직 남은 것도 많다. 
지난날 천지를 뒤흔든 역사들은 못되나,/지금의 우리도 또한 우리로다. 
시간과 운명으로 노쇠했어도/한결같은 영웅적 기백, 
힘쓰고 추구하고 찾아내고 버티어내는/ 강한 의지력. 

                                            - 테니슨, '율리시스', 이상섭 옮김

자, 보다시피 여기서 우리는 한 편의 시가 어떻게, 아니 한 시대의 시인이 어떻게 식민제국주의 신화神話 재생산의 꼭두각시가, 시종侍從이 되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신화! 하니 신화 이론의 대가 롤랑 바르트가 떠오릅니다 그의 이론을 활용하여 테니슨의 ‘율리시스’를 해석해 보것습니다 거짓을 탈은폐시키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 이것을 다루는 게 바로 기호학입니다 그는 소쉬르의 기호학을 발전시켜 '신화론mythologies'이라는 매혹적인 문화이론을 주창한 프랑스가 자랑하는 국보급 문화기호학자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신화는 빠롤이라고...신화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아래 사진은 프랑스의 문화기호학자인 바르트가 신화적 현실 읽기의 고전적 비평서인 [신화론]에서 언급한 유명한 그 사진입니다. 여기서 [파리마치] 표지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한 흑인 소년 병사가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는 형식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다France is a great empire'라는 새로운 내용을 읽어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일차 의미에 새로운 의미를 더함으로써 가능세계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일차적 의미denotation; 한 흑인 소년 병사가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이차적 의미connotation;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의 작품을 읽고 감상하는 일련의 행위는 그 작품을 읽고 감상하는 주체가 놓인 현실적 조건을 떠나서는 이뤄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머 진공이 존재하지 않듯이, 가치중립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언어는 그 자신의 몸에 묻어있는 사회성과 역사성이라는, 의미의 이데올로기적 '때'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위 사진도 마찬가집니다 이는 단순히 한 흑인 소년 병사가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는 사실만도 아니고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라는 의미만도 아닙니다 위 사진에는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다시 말해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재현되어 있고, 그리하여 알제리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식민 지배를 계속해서 정당화하려는 제국주의 신화가 조작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파리마치]는 우파 대중지입니다 

자, 그렇다먼 이런 이론을 ‘율리시스’에 적용하게 되먼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일차적 의미; 그리스를 위해 명예롭게 싸우다 죽은 위대한 아킬레스를 보러 떠나자 
-이차적 의미; 우리도 대영제국의 명예를 위해 아킬레스처럼 죽으러 가자 

3, 결어 

대중기만적인 신화가 판치는 세상, 이렇게 기호는 재생산 메카니즘을 통해서 식민제국주의 논리는 끝없이 국민대중들의 뇌리를 파고 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기, 문명인이 야만인을 합리적으로 정복, 침략하려는 신념을 노골화하고 있는 텍스트를 보먼서 우리는 알 수 있거니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딧세이아]는 서구제국주의 우파의 기원신화다’ 

계속~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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