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앉아 노래 부르고 웃겠다” 쫓겨날 위기의 상인들 돕는 “현장잡지”
“버티고 앉아 노래 부르고 웃겠다” 쫓겨날 위기의 상인들 돕는 “현장잡지”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7.0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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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궁중족발 후원 위한 낭독회 진행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문화예술 운동 “현장잡지”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하여 쫓겨날 위기에 처한 상인들을 돕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 공씨책방 등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을 방문해 낭독회를 열고 상인들과 연대하여 임차인이 쫓겨나는 현실에 문제제기를 해왔으며, 지난 17년 12월부터는 서촌 본가 궁중족발을 찾아 연대를 이어오고 있었다.
  
“현장잡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 참석한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이 쓴 작품을 그 자리에서 엮고 낭독하며 만들어지는, 이름 그대로 ‘현장’의 잡지다. 서촌 본가궁중족발에는 17년 12월 “쌈장과 마늘”을 시작으로 “개돼지”(1월), “롱패딩”(2월), “건물주”(3월), “맛동산”(4월), “빵과 장미”(5월)에 이르기까지 총 다섯 차례 “현장잡지”를 만들어왔으며, 6월에는 “빨간맛”이라는 이름으로 낭독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6월의 “현장잡지”는 완성되지 못했다. 서촌 본가궁중족발의 건물주가 6월 4일 새벽 중장비를 동원해 강제집행을 진행했고, 이로 인해 궁중족발 사장 부부와 활동가들이 내쫓겨졌기 때문이다. 궁중족발 사장은 1인 시위에 나섰지만 건물주의 날선 말로 인하여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그 이후는 임차인이 임대인을 공격한 ‘궁중족발 사건’으로 알려지게 된다.
  
6월의 “현장잡지”를 만들지 못한 “현장잡지” 기획팀은 궁중족발 사건 이후 어려움에 처한 궁중족발 사장 부부를 위해 지난 6월 28일 “다시, 두리반에서”라는 제목으로 후원 낭독회를 진행했다. 이번 낭독회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상징적인 장소로 존재하는 홍대 “두리반”에서 진행됐으며, 권창섭, 김보민, 김현, 배수연, 석지연, 신철규, 이서하, 이설빈, 이소연, 임승유, 임승훈, 정현석, 최창근 등 13명이 참여했다.

'두리반' 벽면을 채우고 있는 응원의 포스트잇 [사진 = 김상훈 기자]
'두리반' 벽면을 채우고 있는 응원의 포스트잇 [사진 = 김상훈 기자]

“두리반”은 홍대에 위치한 칼국수집이지만 음식을 파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철거의 위기를 맞았다가 농성을 통해 협상을 이뤄낸 경우이기 때문이다. 2009년 두리반이 철거당할 위기에 처하자 두리반을 운영하던 안종녀 씨와 유채림 소설가는 농성에 들어갔고, 문학, 음악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이들을 찾아 도왔다. 1년 반 이상을 농성한 끝에야 부부는 건설사와 협상을 할 수 있었고, 현재의 위치에서 다시 영업을 재개하게 된다. 이들의 일화는 많은 철거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두리반 투쟁 과정을 담은 에세이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이 실천문학사를 통해 출간되기도 했다.

두리반 투쟁 과정을 설명 중인 유채림 소설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두리반 투쟁 과정을 설명 중인 유채림 소설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낭독회에 앞서 두리반 투쟁의 당사자인 유채림 소설가가 두리반의 투쟁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낭독회가 계속 이어지고, 낭독회에 대해 시나 산문을 써서 기고하는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끈질기게 해나가면 결국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궁중족발의 성공을 기원했다.
  
“현장잡지” 기획팀의 권창섭 시인은 “홍대 두리반의 투쟁은 즐거운 투쟁이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다. ‘너희들이 쳐들어와서 때려 부숴 봐라, 우리는 버티고 앉아 노래 부르고 춤추고 웃겠다’는 정신으로 투쟁해왔던 것 같다. 오늘의 낭독회 또한 웃고 떠드는 투쟁이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어제를 견딘 장소, 오늘을 견디고 있는 장소, 내일을 견뎌야 할 장소, 장소들에 모여 있는데, 장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곁과 옆이 있다. 곁과 옆은 비슷한 의미인 것 같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곁은 추상적인 반면 옆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옆보다 곁의 의미를 더 우월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착각인 것 같다. 옆일 때만 공유할 수 있는 감정, 지을 수 있는 표정, 맞춰나갈 수 있는 발걸음이 있기 때문. 곁의 힘이 가지지 못한 것을 옆의 힘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다시 두리반에서 모인 이유는 두리반이라는 이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두리반’은 동그란 밥상을 의미하는데, 동그라미는 옆들이 만들어 나간다.”고 전했다.

궁중족발 후원 낭독회가 진행 중인 홍대 두리반 [사진 = 김상훈 기자]
궁중족발 후원 낭독회가 진행 중인 홍대 두리반 [사진 = 김상훈 기자]

 

낭독회는 작년 12월부터 7차례 진행됐던 “현장잡지”의 소개글을 권창섭 시인이 낭독하며 시작됐다. 김보민 활동가는 개발 논리로 쫓겨나야했던 궁중족발을 소재로 ‘다시, 발’을 낭독했으며, 김현 시인은 신작 시 ‘리얼한 연기를 위해서 불을 피웠다’를 낭독했다.

선생님 
어제는 흰 나비 떼를 쫓아갔다가 
그것이 참인 세상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움은 꽃잎의 묵시록이었어요 
잠에서 깨면 여전히 
종아리와 허벅지가 뻐근하고 척추의 건강을 염려하여 양배추즙을 마시고 유산균을 챙겨 먹고 출근해서 자본주의의 리얼이 되었습니다 
오볶 하나 제육 하나 된장 둘을 앞에 두고 모두가 오장육부가 
편안해야 살아도 사는 거라고 결의하며 
내일 남성 회식의 기쁨조는 최 대리와 홍 과장이 맡기로 동의하였습니다 
넣고 빠지고 흔드는 거지요

- '리얼한 연기를 위해서 불을 피웠다', 김현, 일부

‘리얼한 연기를 위해서 불을 피웠다.’를 낭독한 김현 시인은 “두리반에서 처음 낭독회를 했을 때가 생각난다. 두리반이라는 현장에서 다 같이 모여 자신의 시를 읽고, 제 시가 읽힌다는 게 좋은 경험이었다. 지면에 시나 글을 발표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시를 읽는 것이 어떤 발표가 되기도 하는구나 라는 경험을 했다.”고 두리반 투쟁 당시의 모습을 회상했다. 두리반에서의 시 낭송이 원동력이 되어 지금까지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힌 김현 시인은 “이 시간에 와 있는 사람만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찾았다.”고 이야기했다.

네, 여기는 브라질 나타우 근처의 비닐촌입니다 
2주 전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와 대나무에 검은 비닐로 천막을 치고 살고 있습니다 

17살 페드로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처음에 우린 그들에게 윙윙대는 작은 벌레였어요. 여긴 벌레 무덤이나 마찬가지죠. 벌레 무덤 같은 거 본 적 없죠? 우린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페드로는 9살 때부터 거리에서 엽서나 카드를 팔아왔습니다

- 'sinkhole', 배수연, 일부

배수연 시인은 브라질 월드컵이 이뤄질 당시에 썼던 시 ‘Sinkhole’을 낭독했다. 브라질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며 경기장 건설을 이유로 대규모 철거를 진행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철거민을 양산해 비판받은 바 있다. 시 ‘Sinkhole’은 철거로 내쫓긴 브라질 빈민촌의 소년을 화자로 등장시키며 개발의 논리에 대해 비판한다.

석지연 시인은 자신의 일기를 낭독하며 참가자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아현동 재개발지를 걸은 시인이 당시의 상황과 경험을 기록한 일기로, 석지연 시인은 “아현동이 재개발 지역으로 묶이며 상가와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아왔다. 골목골목을 다니며 썼던 일기 중의 한 편을 낭독하겠다.”고 이야기했으며, 낭독 이후에는 궁중족발 사건을 접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했다.

궁중족발 후원 낭독회 [사진 = 김상훈 기자]
궁중족발 후원 낭독회 [사진 = 김상훈 기자]

“현장잡지” 기획팀은 향후의 활동에 대해 “확실히 정해진 계획은 현재 없지만, 함께 논의를 하여, 지금과 같은 낭독회의 방식이든 다른 방식이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일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 공간은 궁중족발 바로 앞이 될 수도 있고, 두리반처럼 궁중족발과 연결된 또다른 장소일 수도 있을 것”이라며 “궁중족발 사태가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걸음을 해 나가겠다. 그리고 앞으로 또 궁중족발과 같이 미비한 법에 의해 고통 받는 "현장"이 있을 때도 계속 함께 연대해 나가는 작가들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