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작”, 사회 시스템에 의해 도구화된 인간의 삶... 냉전 속 스파이 통해 보여주다
영화 “공작”, 사회 시스템에 의해 도구화된 인간의 삶... 냉전 속 스파이 통해 보여주다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7.12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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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보안 CP이병 허지훈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러면 도와줄 수가 없어. 너처럼 느리게 말을 하면 도와줄 수가 없어.”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스틸컷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스틸컷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영화감독 윤종빈의 데뷔작 “용서 받지 못한 자”에서 어리버리한 이병 허지훈과 말년 병장 유태정이 나누는 대화이다. 영화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쯤은 이 대사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상황이 주는 리얼함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을 수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전화를 받을 때 말을 조금 느리게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를 문제 삼는 장소는 오직 군대뿐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에만 존재하는 부조리들을,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후임병의 새 보급품을 가져가거나, 모두가 잠든 밤에 따로 불러 폭력을 휘두르는 선임병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은 영화가 “군대 부조리의 실체를 사실감 있게 고발”했다며 감탄했다. 

윤종빈 감독. 사진 = 육준수 기자
윤종빈 감독. 사진 = 육준수 기자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윤 감독의 고발은 현상을 일차적으로 그리는 데에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중 군대의 부조리함을 납득하지 못하는 인물 ‘이승영’은, 자대 배치를 받은 부대에서 말년 병장인 친구 ‘유태정’과 만나게 된다. 승영은 태정에게 자신이 선임병이 되면 “군대 안의 나쁜 관습을 없애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태정이라는 거대한 보호막이 없어지자 왕따 취급을 당한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승영은 결국 악의의 고리를 끊어내는 대신, 군대의 방식에 순응하기를 택한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한 명의 인간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승영이 군대의 체계 앞에서 신념을 포기하는 모습에는, 윤종빈 감독이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시스템이 강조될수록 인간은 사물화, 도구화 되고 인간성은 희미해진다. 상병 이상만 긴팔을 입을 수 있다거나, 병장만 맨발에 슬리퍼를 신을 수 있다거나... 수많은 부대에서는 저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무의미한 부조리들이 관행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런 부조리는 일상마저 관리되는 극도의 체계화 속에서, 일상의 의미는 사라지고 행위만이 남아 탄생됐다고 볼 수 있다. 

시스템에 길들여져 자신도 모르게 부조리를 행하고 있는 선임병을, 우리는 과연 무조건적인 가해자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공작" 스틸컷
영화 "공작" 스틸컷

윤종빈 감독의 이런 고민은 오는 8월 8일 개봉할 영화 “공작”에서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압구정 CGV에서는 영화 “공작”의 제작보고회가 개최됐다. 영화 “공작”은 남북한의 냉전 속에서 북핵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방북한 대북 공작원 ‘흑금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흑금성은 실존인물로, 안기부가 대북 광고 프로젝트 추진 업체인 아자커뮤니케이션에 전무로 위장 취업시킨 박채서씨의 암호명이다.

이날 윤 감독은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냉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냉전 자체가 아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작중 흑금성은 자신이 굳게 믿는 국가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방북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가 공작 과정에서 보게 되는 것은 남한의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남과 북의 은밀한 거래이다. 조국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방북이었는데, 정작 안기부는 북한과 함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낙선시킬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흑금성의 내면에 개인의 신념과 시스템의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흑금성을 연기한 황정민 배우. 사진 = 육준수 기자
흑금성을 연기한 황정민 배우.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들 간첩의 삶은, 국가의 시각에서 보자면 오랜 시간에 걸쳐 마련한 비품에 불과하다. 이는 한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무함마드 깐수”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1984년도에 아랍 연구자로 한국에 들어온 무함마드 깐수는 세계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뽐내며,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북한에서 보낸 남파 간첩 “정수일”이다. 정수일은 중국 길림성 연길에서 태어난 조선족 출신으로 모로코 중공 대사관에서 2등 서기관으로 활동한 지식인이지만, 북한에 귀화한 후 그의 해박한 언어 능력과 이국적인 외모는 대남 공작을 펼치는 데에만 사용했다. 

무함마드 깐수. 사진 출처 = 국방TV
무함마드 깐수. 사진 출처 = 국방TV

정수일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귀화를 결정한 것은, 그가 중국에 팽배한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을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중국에 있을 당시부터 아랍어에 대한 연구를 해왔으나, 북한에서는 이에 별 관심을 갖진 않았다. 게다가 정수일은 북한에 처와 세 딸을 두고 있었으나, 공작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숨긴 채 남한의 여성과 또 한 번의 결혼을 하게 된다. 

정수일은 아랍어 연구자나, 한 가정에 속한 개인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북의 이익을 위해 권위 있는 아랍어 연구자 “무함마드 깐수”를 연기하는 조선노동당의 대남 공작원일 뿐이었다. 고기를 자르는 데에 쓰이는 포크나 나이프와도 같은 입장이다. 

영화 "공작" 스틸컷
영화 "공작" 스틸컷

윤종빈 감독은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싸워왔다.”며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과연 무엇을 위해 싸워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만들어낸 시스템이, 도리어 인간을 도구화시키고 겁박하여 고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상처와 아픔이 발생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의 정상은 판문점에서 만나 평화를 약속하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한반도에 급격하게 평화의 물결이 들이치고 있는 것이다. 윤종빈 감독은 남북의 관계가 점차적으로 나아지고 있는 현재일수록 영화 “공작”의 역할은 더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통일이 이루어지려고 하는 때인 만큼, 우리 역사 속에는 고뇌한 인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 의미를 아로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영화 "공작"의 주연 배우들. 사진 = 육준수 기자
영화 "공작"의 주연 배우들. 사진 = 육준수 기자

남과 북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냉전 시기, 그 안에는 남한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숨겨야 했던 흑금성이 있었다.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에서 윤종빈 감독은 군대를 바꾸겠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 현실의 문제에 부딪혀 허덕이다가 이내는 목숨을 끊는 모습을 그려낸 바 있다. 자신이 믿던 조국에 대한 의심이 생겼을 때, 대북 공작원 흑금성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한 달 남짓 남은 영화 “공작”의 개봉일이 무척이나 멀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