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 교수, '여성의 수치, 체화, 성적 코드화, 젠더 이해 없이 감정상태 이해 힘들어'
이정화 교수, '여성의 수치, 체화, 성적 코드화, 젠더 이해 없이 감정상태 이해 힘들어'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7.17 21:49
  • 댓글 0
  • 조회수 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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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광주학연구소가 지난 6월 22일 “앙가주망 : 예술 젠더 정치”라는 제목으로 2018년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앙가주망’을 키워드로 예술과 정치성에 대한 논의가 중점을 이뤘으며, 발표자로 이정화(조선대), 김향(연세대), 복도훈(한예종), 이승민(연세대) 등이 참여했다. 

나희덕 조선대 인문대학장 [사진 = 뉴스페이퍼]
나희덕 조선대 인문대학장 [사진 = 뉴스페이퍼]

앙가주망은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를 비롯한 실존주의자들이 제시한 용어로, ‘사회참여’, ‘자기구속’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희덕 조선대 인문대학장은 개회 인사에서 “앙가주망이라는 말이 단순하게 참여라고 번역되는 것을 넘어서서 넓은 의미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지난 학기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페미니즘을 다룰 때에 예술과 정치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그 두 가지가 연결되는 지점을 보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첫 발표는 이정화 조선대 교수가 맡았으며, 이정화 교수는 “감정의 정치성 : 수치와 젠더”라는 제목으로 ‘수치의 정동성’을 살펴보고 사회문화적 이해 없이는 정동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여성의 수치, “영구적, 체화되어 있으며, 성적으로 코드화”

이정화 교수는 먼저 브라이언 마수미와 이브 세즈웍의 정동론에 대해 소개했다. 마수미는 "정동은 지각이나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사회적 의미화의 결과인 정서와는 확연히 구분된다."고 보았으며 세즈윅 또한 "정동은 자유롭고 전염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정화 교수는 이들의 정동론은 “주체와 몸을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설명하는 이미 알려진 방식을 거부하고 정동의 '예측불가능한' 이동성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정화 교수는 "어쩌면 우리는 정동의 가치가 그것의 자율성이 아니라 비자율성에 있음을 직시하고 '사회적 의미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의 정동에 대한 동시대의 매료'를 경계하라는 헤밍스의 충고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수치의 정동'에 주목했다. 

앙가주망 : 예술, 젠더, 정치 제1발표가 진행 중이다 [사진 = 뉴스페이퍼]
앙가주망 : 예술, 젠더, 정치 제1발표가 진행 중이다 [사진 = 뉴스페이퍼]

이정화 교수는 톰킨스와 사라 아메드의 발언을 인용하며 “주체에게 수치를 유발하는 목격자의 시선은 주체가 중요시하는 시선이라는 의미에서 ‘이상적인 타자의 응시’”이며, 이 ‘이상적인 타자’의 시선은 무엇이 수치스러운 것인지를 규명하는 규범적 시선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규범적 시선에는 젠더가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는데, 캐서린 노르베리의 언어학적 연구 결과에서 알아볼 수 있다고 보았다. 노르베리는 83년부터 94년까지 1억 개의 영단어를 분석한 결과 수치와 파생어들이 젠더에 따라 달리 사용된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여성의 수치는 “영구적이고 보통 체화되어 있고 성적으로 코드화”되어 있는 반면 남성의 수치는 “일시적이고 몸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정화 교수는 “여성의 수치가 몸에 각인되어 회복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남성의 수치는 불쾌하지만 사회적 삶의 정상적인 측면으로서 도덕적 삶을 돕는 순기능을 갖는다.”는 노르베리의 말을 인용하고, "노르베리의 연구는 수치의 이해에 젠더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함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치와 젠더의 관계를 숙고하는 방편으로 남아공 작가 쿳시의 소설 "치욕"에 대해 살펴보았다. 

- “사회 문화적 이해 없이는 정동에 대한 이해 제한”

쿳시의 ‘치욕’은 케이프 기술 대학의 교수인 백인 남성 루리와 그의 딸인 루시가 등장하며, 수치와 젠더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루리는 수강생인 멜라니를 유혹해 그녀가 원치 않았던 성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대학은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하는 조건으로 교수직을 유지시켜 주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하지만, 루리는 이를 거부하고 ‘침묵할 자유’를 고집하며 학교를 떠난다. 

이정화 교수는 “모욕을 감내하는 사적인 방식의 참회와 속죄로 이루어진 루리의 서사는 노르베리의 언어학적 연구에서 '남성의 수치'로 명명된 것의 특징을 보여준다. 루리의 수치는 규범을 일탈한 대가로 치루는 일종의 '정동적 비용'으로 경험되기 때문에 일시적이며 궁극적으로 회복 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루리의 치욕은 멜라니와의 성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의 것으로, “루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부도덕적인 존재로 발각되었다는 사실이고, 이는 사회적 추락을 감내하는 고행을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리가 남성의 수치의 특징을 보여주는 인물이라면 루리의 딸인 루시는 루리와는 다른 형태로 수치를 보여준다. 루시는 추문에 휩싸인 아버지를 위해 지낼 방과 소일거리를 내려주는데, 그 와중에 농장에 세 명의 원주민 남성이 급습해 루리를 욕실에 가둔 채 루시를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루시는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함구시키고, 농장을 떠나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권을 물리친다. 루시는 강간으로 인해 생긴 아이를 임신한 채, 농장의 일꾼이었던 원주민 페트루스의 보호를 받고자 그에게 농장을 넘겨주고 그의 세 번째 아내가 되기로 결심한다. 루리는 루시의 침묵을 ‘수치의 표현’으로 해석하고, 치욕, 수치로 인하여 “그녀는 얼굴을 숨기고 싶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루시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루시는 “자신에게 자행된 끔찍한 폭력을 본래 자신들의 땅이 아니었던 아프리카에 머무는 것에 대해 지불해야 할 값”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강간한 원주민 남성을 '빚쟁이', '세금 징수원'에 빗댄다. 루시의 침묵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라는 역사적 짐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며, “그녀의 수치는 원주민과 백인이 아프리카에서 공존하기 위해 온 몸으로 대신 치르는 희생이고, 그녀의 침묵은 일종의 사과”인 셈이다. 

이정화 교수(왼쪽) [사진 = 뉴스페이퍼]
이정화 교수(왼쪽) [사진 = 뉴스페이퍼]

이정화 교수는 “‘치욕’에서의 수치는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초월하지 못한다.”며 마수미와 세즈윅의 믿음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보았다. 루리는 성추문으로 인한 수치와 성폭행을 막지 못한 아버지의 수치심을 느끼면서 루시의 감정에 공감하려 노력하지만, 루시는 “아버지는 계속 저를 잘못 읽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루리의 수치와 루시의 수치는 같지 않았으며, 결국 루리는 “루시의 직관이 결국 옳다. 그는 이해한다. 집중한다면, 자신을 버린다면, 그 현장에서 그 남자들이 되고 그들 안에 있으면서 그들을 자신의 영혼으로 채울 수 있다.”고 고백한다. 

이정화 교수는 “감정의 이동성에는 한계가 있으며, 감정과 맺는 관계에 차이를 만드는 사회 문화적 힘들을 여전히 중요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으며, “소설 ‘치욕’이 주는 불쾌한 통찰은 우리의 감정이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한계 속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며, 상상력과 공감 능력이 나와 당신의 경계를 허무는 데 필요한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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