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사죄가 피해자를 향하지 않은 이유는? 안보법 개정으로 본 일본의 전후민주주의,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비판도.....
일본의 사죄가 피해자를 향하지 않은 이유는? 안보법 개정으로 본 일본의 전후민주주의,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비판도.....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7.1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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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2016년 일본의 안보법 개정은 일본 국내 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 많은 논란을 낳으며 전쟁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본은 안보법 개정으로 자국이 공격받지 않더라도 밀접한 관계의 국가가 공격 받았을 때 반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일본이 방위가 아닌 공격 또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국회의 승인만으로 자위대의 파견이 가능해지면서, 자위대의 활동 범위가 광범위하게 넓어졌다. 

일본은 안보법을 개정하며 이를 "적극적 평화주의"를 위해서라고 강조했으며, 특히 국제 테러 조직과의 전쟁은 안보법제의 중요한 근거로 다뤄졌다. 안보법 개정으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미국과의 훈련 횟수를 3배 이상 늘렸으며, 자위대의 영향 범위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발표 중인 김항 교수 [사진 = 뉴스페이퍼]
발표 중인 김항 교수 [사진 = 뉴스페이퍼]

조선대 인문학연구원이 개최한 2018년 정기학술대회에 참여한 연세대 김항 교수는 일본의 이러한 태도가 “보편주의의 부정”이 아니라 “보편주의의 뿌리를 이루는 섬멸전쟁을 체현하고 실현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류의 평화를 침해한 범죄자는 비인간으로 취급되어 온 서구의 법사상과도 연관되어 있는데, 로마의 철학가인 키케로는 “해적과는 어떤 법권리도 의무도 공유할 수 없다”, 독일의 법학자인 칼 슈미트는 “인류의 적이란 철저하게 비인간적으로 취급되어 섬멸되어야 할 존재”라고 한 점에서 그러한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안보법제의 근원인 ‘섬멸전쟁’이 일본 전후 민주주의의 근저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비판적으로 추적하고자 김항 교수는 먼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가지고 있는 역사 인식에 대해 비판했다. 김항 교수는 “식민주의로 역사 문제를 다룰 때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현재 유효한 국민국가를 전제하는 논법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만다. 마치 그것이 현재 시점의 각 국민들 사이의 문제인양 호도하는 논법이 정작 각 국민들을 성립시킨 식민주의의 복잡한 역사구조를 망각하게끔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제국의 위안부는 그 대표적 사례”라고 제시했다. 

“지원자들은 정치가나 관료의 대부분이 '전후민주주의' 교육을 받았고 천황제를 부정하지는 않아도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필요한 만큼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반성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경시했다.” -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199

“이 20년 동안의 강경한 주장과 한국에 대한 지원이 결과적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섰던 관료들과 '선량'한 일본인들까지 자포자기적 무관심과 혐한으로 몰았다는 점이다.” -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203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유하 교수는 한국의 위안부 문제 관련 운동가들이 ‘전후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 개인으로서 책임을 질 줄 아는 일본의 선량한 관료나 시민들을 적으로 돌렸다고 비판한다. 김항 교수는 “박유하는 제국일본의 식민주의 비판을 일본 전후 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전개한다. 즉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마음 속 깊이 높게 평가하고 신뢰함으로써 식민주의를 넘어서자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전후 민주주의와 일본국민의 양심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본다면 “정치를 넘어서서 세계와 사태를 볼 수 있어야만 하며, 상대를 도덕적으로 힐난하면서 지배하려 하는 정치를 넘어서, 인류 공존을 위한 보편적 이념과 가치만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길”이 된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역사경험을 정치화하는 것은 비판” 되어야 하는데, “개인에서 국가에 이르는 모든 수준에서 궁극의 귀결이 전쟁으로 귀착되는 대립과 갈등은 극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항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인식은 박유하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일본 정권이 내세우는 ‘적극적 평화주의’와 중첩되게 된다. 

“일본이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것은 비약일 뿐이다. 일본의 국방예산은 금액 자체는 많지만,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비율은 미국이나 중국은 물론 한국보다도 낮다. 패전 후 60년 이상, 미국과 한국은 징병제를 유지했고 타국에 군대를 보내기도 했지만, 일본은 그런 적이 없다. 물론 그건 일본이 이른바 평화헌법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한국이나 북한은 오래전부터 늘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사실화하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군국주의를 비난한다면 북한부터 비판받아야 할 일이 아닐까.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인 한국의 진보가 북한의 군사주의를 큰 목소리로 비난하는 일은 없다.” -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300

김항 교수는 “안보법제가 테러리즘으로 대변되는 ‘모두의 적’을 궁극의 적으로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박유하는 북한의 군사주의를 일본 전후 민주주의가 전제하는 인류의 가치와 이념에 대한 ‘적’으로, 즉 ‘인류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의 일본 정부가 보여주는 이러한 사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김항 교수는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시점에 등장한 근원적인 사상의 회로이기 때문.”이라며 일본의 사상가 난바라 시게루가 제시했던 ‘순수 일본’과 국민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바라 시게루는 전후 일본에서 문화공동체론을 주장한 일본의 정치학자로, 전쟁 후의 신헌법 심의에 참여하고, 신생 도쿄대의 총장으로서 전후의 교육개혁을 주도했다.

"천황제는 군민일체의 일본 민족공동체 자체의 불변의 본질입니다. 외지이종족이 떨어져나가 순수 일본으로 되돌아온 지금, 이것을 상실한다면 일본민족의 역사적 개성과 정신 독립은 소멸할 것입니다.” - 난바라 시게루, ‘祖国を興すもの’(1947)

난바라의 ‘순수 일본’은 조선과 타이완을 비롯한 제국일본의 피식민지인의 추방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난바라는 또한 “새로이 재건될 일본국가는 개개인이 기초가 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천황과 국민이 통합체로 성립해온 국민공동체를 민주주의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개인 – 인류’가 아닌 ‘개인 - 국민 – 인류’라는 관계로 인류와 개인을 바라보았으며, 국민 없이는 개인과 인류도 없다는 테제를 제시했다. 국민공동체는 개인과 인류를 분화시키는 원천 역할을 하는 역사적 실체이며, 개인이 인류로 곧장 보편화되는 게 아니라 국민들 중 하나에 속하는 한에서 인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45년의 조선과 타이완은 식민지배로 인한 역사적 분열, 이데올로기적 분열로 신음하고 있었고, 제대로 된 ‘국민’을 구성하고 있지 못했다. 난바라의 국민통합은 ‘외지이종족’에 대한 인위적 배제를 통해 가능했으며, 배제된 외지이종족은 국민이 될 수 없으므로 인류조차 될 수 없었다. 식민주의적 배제를 통해 성립된 국민 공동체 일본은 한반도, 타이완, 오키나와 등의 인민을 국민으로의, 따라서 인류로의 ‘도상’에 있는 민족들로 간주하게 된다. 김항 교수는 “일본은 이미 국민이 되어 인류에 속한 한편, 저 지역 - 조선, 타이완, 오키나와 등 - 은 여전히 비국민, 비인류의 무법지대가 펼쳐져 있다는 시선이 잠재적으로 내장되는 순간”이며 “이것이 식민주의와 보편주의의 착종으로 이뤄진 전후 일본 평화국가의 근원적 한계”라고 지적했다. 

발표 중인 김항 교수 [사진 = 뉴스페이퍼]
발표 중인 김항 교수 [사진 = 뉴스페이퍼]

‘식민주의와 보편주의의 착종’은 19세기 식민주의에서도 나타나는 모습이다. 벨기에의 레오폴트 2세는 “문명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지구상의 한 부분을 개척하려 하고 있다. 암흑을 뚫고 그 땅의 모든 주민을 위해서 말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것은 진보의 세기에 걸맞는 십자군인 것이다”고 연설하며, 콩고 지배를 진보의 이름 아래의 십자군으로 규정한다.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원주민은 진보와 보편의 이름으로 야만인으로 규정되며, 궁극적으로 ‘비인간으로서 추방되어 섬멸되어야 할 존재’로 지목되었다는 것이다. 

김항 교수는 "전후 일본의 사죄가 피해자를 향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식민지배 반성은 언제나 인류를 향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김항 교수는 “평화와 인권을 체현하는 추상적 세계시민에게 반성과 책임이 발화되었을 뿐”이며 “박유하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선이 민족주의를 배척하면서 인류 혹은 인간이라는 층위에 집중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후 일본이 아시아를 수평적으로 마주치는 일은 불가능했다. 식민주의와 보편주의는 현재까지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