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 시인, '김수영 문학의 숭고함과 시인으로서 받은 영향' 김수영문학관에서 이야기해
서효인 시인, '김수영 문학의 숭고함과 시인으로서 받은 영향' 김수영문학관에서 이야기해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7.20 15:45
  • 댓글 0
  • 조회수 2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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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수영 시인과 같은 시기에 살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의 시로부터 많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초기 시인의 삶이라는 게 다 불안해요. 주눅 들어 있고요. 그러던 중 저는 김수영문학상을 받아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너무 자랑스러워서 저를 ‘제3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 서효인’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어요. 김수영 시인의 삶을 보면 윤택과는 거리가 멀지만... 선생님의 이름을 딴 문학상 덕에 후배들은 용기를 받고 조금 더 잘 살 수 있는 듯합니다.” 

서효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서효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김수영 문학관은 지난 6월 23일부터 7월 14일까지 매주 토요일, 김수영 시인 50주기 추모 강연 “나와 김수영 그리고 詩”를 진행했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이성복, 여태전, 함민복, 서효인 시인에게 김수영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강연의 마지막 순서인 14일, 서효인 시인은 독자들과 만나 김수영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그로부터 자신이 받은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효인 시인은 고등학생 시절 “낮은 수준의 따돌림을 받았다.”며 당시 “자존감이 많이 깎여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때 서 시인은 “김수영의 시를 읽고 자존감이 많이 회복됐다. 제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강고한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삶의 본질은 더 깊은 곳에 있을 수 있으니, 현재의 감정은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서효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서효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우리나라의 시에 흐르는 전통으로 서효인은 ‘서정성’을 꼽았다. 산과 강, 꽃 등의 자연물과 나를 동일시해서 의인화하거나, 나의 감정을 사물에게 반추하는 방법이다. “산에 올라가다 들꽃을 보고 외로움이 보인다.”고 말하는 식이다. 

하지만 서효인 시인은 “김수영은 이런 것을 거부”했으며 “김수영은 나는 나고 사물은 사물이지, 왜 사물과 나를 동일시하냐는 태도를 취했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사물을 무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물의 객체성을 인정해 함부로 동일시하지 않고, 사물이 가진 특징을 집요하게 바로 보아 그것을 시로 쓴 것이다. 서효인 시인은 김수영의 시에는 시대상을 관통하는 시선과 지식인으로서의 강고한 의지가 느껴진다며, 이런 의지는 “2018년 젊은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作戰)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 이태리어(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공자(孔子)의 생활난(生活難)」 전문

서효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서효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시 ‘공자의 생활난’은 “나는 죽을 것”이라는 구절로 끝이 난다. 서효인 시인은 “우리는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하물며 “타자, 사물에 이해하는 것은 더욱이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수영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때문에 서효인 시인은 김수영의 태도는 “실패를 알면서도 도전하는 숭고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수영은 완벽한 자유는 죽음에 가깝다고 인식했다.”고 덧붙였다. 김수영은 죽음만큼의 큰 사연을 가져야, 자유도 그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는 투사에 가까운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서 시인은 “김수영의 언어는 자유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강한 의지”라고 칭했다. 

서효인 시인은 이런 김수영의 영향을 받아, 집요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시집 “여수”에서는 지역과 그 지역의 역사, 현상에 대한 집요한 시선이 엿보인다. 서효인 시인은 자신의 시집 “여수”에 수록된 시 몇 편을 낭독하고, 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서효인 시인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서효인 시인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시 ‘서울’은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시기 서울에 살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린 시다. 시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명확하게 특정되지 않아, 읽는 독자에게 혼동을 준다. 서 시인은 “시를 쓸 때는 나름 등장인물을 상정하며 썼다.”만 “퇴고할 때 보니 여자들이 혼동되는 것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서효인 시인은 이를 수정하지 않았다. 본래 의도가 “한 사람의 일대기가 아닌 서울이란 도시 자체를 쓰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서효인 시인은 “서울의 역사는 사람을 계속해서 가르고, 계급화 시키고 층위를 만드는 역사”라고 말했다. 때문에 서울의 외부인 전라도 출신으로서 과거에 “서울 바깥으로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재밌으면서도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고 전했다. 서울이 우리나라에 어떤 입지를 가지고 있는지 재확인했다는 것. 

서효인 시인이 자신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서효인 시인이 자신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어 낭독한 시는 ‘귀향’이다. 이 시는 서효인 시인이 어린 시절, 막내 외삼촌이 실제 아현동 언저리에서 족발집을 냈을 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에서 어머니는 “사투리를 쓰면 무식한 거니 사투리를 쓰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공간에서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은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조카뿐이다. 서효인 시인은 “80년대 생인 저조차 쉽게 하는 말들에서 내재된 지역에 대한 혐오감정을 느낀 적이 종종 있었다.”며 현재까지도 “이 감정은 흐려지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서효인 시인은 앞으로의 글쓰기가 어떤 방향으로 갈 지는 알 수 없으나, 문학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했다. 김수영의 시로 문학을 공부했으며, 김수영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수상했고, 김수영의 자세를 본받아 시를 쓰고 있다는 서효인 시인. 현재까지도 그를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은 김수영의 문학에서 큰 영감을 얻고 있다. 한국 시의 전위에 섰던 김수영 시인의 발걸음이, 계속해서 후배 문인들을 단단히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는 서효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는 서효인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강연은 구민들과의 질의응답 및 사인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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