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벌일까, 유유
부엌엘 홀로 와 앉자 식탁보 위 펼쳐진 *만다라
밤은 처절하게 한 글자로 불려온 역사를 살아
우리가 포옹하면 허공은 속살이 되고
펴면 소슬하게 시린 팔오금
무엇을 어떻게 포옹하지
안녕 나의 유유, 듣고 있는지
우리는 이름으로 불린 적 없으니 우는 소리로 명명해볼까
희한하다 혼자서도 키스할 수 있는 저녁마다
꽉 쥔 하루 풀어내며 오는 체크무늬 표정들
탁자 위 글라스에 몰래 담는 언어 스칠 때마다
이건 병(病)일까 유유, 우리는 홀로 괜찮다고 말하면서
가끔 앓는 소릴 내면서 기일-게 울잖아 낭인(狼人)처럼, 유유
음식에 주사를 놓는 것처럼 아, 젓가락을 들고
너는 무언가를 씹는 척 우물거리는 복화술
우린 책상 위 걸터앉아 다만 질펀한 밥에 수저를 꽂고. 침묵
당신의 입모양은 알아들을 수 없고
이건 제(祭)일까 유유, 연무 하나 오르지 않는 밤의 아귀에서
다정하게 나눌 단어가 여기 남아있는지
식탁에 놓인 꽃병 기린 같은 목
쓸어주려다 너를 안아주려 뻗는 팔마디 내가 시린 건
접시 위에다 유골 같은 생선 등뼈 우리
다 쏟아낸 잔가시들 그러모아 글자를 만들까, 유유
*우주 법계의 온갖 덕을 망라한 진수를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의 하나. 본질이라는 의미
시작노트
소통이 없는 식탁 꼭 우리네 삶을 탁본한 것 같아
이름 없는 유유를 마주하며 이따금씩
나는 거울 앞에서 유유 하고 말을 건넨다. 아, 오늘의 나는 또 초면인데 너는 유유 하고 따라 울어준다. 너에게 찬사를 보낼게
나 같은 목소리를 내는 거울 안아주려다 머리를 부딪히고 나서야, 심장을 부여잡는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거울 속 남자 이건 비극일까?
이른바 혼밥이 유행입니다. 혼자 떠서 허공에 올리는 수저가 가끔은 외롭지 않나요? 밥을 뜨는 수저가 아닌 서로의 마음을 후비는, 그런 것을 찾는 그 와중에
엉엉 우는 유유 氏, 이건 벌일까요

최류빈 시인
1993년 전북 출생
2017년 <포엠포엠> 신인상 당선
광주문화재단 창작기금수혜
전남대학교 생물공학, 시설경영학 재학
시집 <장미 氏, 정오에 피어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