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빈, 김은지, 임지은, 한연희 시인 함께하는 "분리수거 낭독회". 버려진 사물들 새로이 느껴보는 시간
강혜빈, 김은지, 임지은, 한연희 시인 함께하는 "분리수거 낭독회". 버려진 사물들 새로이 느껴보는 시간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7.31 2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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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시트가 떨어져 나간 의자는 오래된 주화처럼 녹슬고 색이 바래있다. 앉을 공간조차 없는 앙상한 철골 같은 형태다. 손끝으로 만지면 벌건 녹이 묻어나올 것만 같아, 도저히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의자 위에는 용케 한 명의 사람이 앉아 있다. 말갛게 산화된 오토바이 안장 몸통과, 흐늘흐늘 부러질 듯한 철사 팔뚝, 칠이 벗겨진 선풍기 머리가 조립된 금속 재질의 인간이다. 

이는 고 성찬경 시인이 생전에 자신의 앞마당 “응암동 물질고아원”에 설치한 오브제다. 성 시인은 수많은 폐품들을 가공하여 자신의 앞마당에 설치한 바 있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폐품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것이다. 

왼쪽부터 김은지, 한연희, 강혜빈, 임지은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왼쪽부터 김은지, 한연희, 강혜빈, 임지은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처럼 최근 시 분야에서는 쓸모없는 쓰레기에 ‘시’라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자리가 있었다. 지난 23일 임지은, 김은지, 한연희, 강혜빈 시인이 노원구에 위치한 동네책방 ‘지구불시착’에서 개최한 “분리수거 낭독회”이다. 임지은 시인은 본 행사는 쓰레기들을 새롭게 느껴보고 감각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며, “네 명의 시인들은 온도나 개성이 다 다르다. 재활용 쓰레기 중 자신과 흡사한 성질을 하나씩 맡아 해당 질감의 시를 썼다.”고 밝혔다. 임지은 시인은 플라스틱, 김은지 시인은 종이, 한연희 시인은 캔, 강혜빈 시인은 유리이다. 

시인들은 이 네 가지 사물을 바탕으로 쓴 시를 각 두세 편씩 낭독하고, 어떤 사고를 거쳐 사물이 시가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임지은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임지은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임지은 시인은 플라스틱에 대해 조사해보니 “플라스틱은 단순한 재질이라 생각했으나 구성이 복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딸이면서 엄마, 동생이면서 친구, 직장 후배이면서 상사로 위치가 굉장히 복합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렸으며, “복잡한 구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내면 역시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런 인식은 임 시인의 시 속에 녹아들었다. 

깜빡 잠이 든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남편이 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흐름이 조금 밀리고 그는 벽의 일부가 되었다 

-「깨부수기」 일부

시 “깨부수기”에서 화자의 남편은 “벽 안 쪽의 깊은 고독”을 느끼고 있다. 그는 살며시 벽에 기대보더니, 끝내는 빨려 들어가 벽의 일부가 돼버리고 만다. 나는 망치로 벽을 깨부수지만 끝내 남편을 발견하지 못한다. 여기서 ‘남편’은 단순히 화자의 반려가 아닌, 벽과 같은 고독을 느끼는 복합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김은지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김은지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김은지 시인은 종이의 속성과 “타인에게 섭섭함을 느끼면 그것을 가만히 두는 저의 성격”이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운하거나 속상한 기억들을 오래된 책처럼 마음 속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충분히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시로 쓰기 때문이다. 이는 시 ‘염소의 예방접종’에서 “미워하는 일은 너무 복잡해/한철 어려워한 다음, 곧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자신이 겪은 아픔을 책장에 꽂아 넣듯, 관계에 있어 한 발짝 물러서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연희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한연희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한연희 시인은 “알루미늄(캔)이라는 재질에 원래 관심이 있었다.”며 “그래서 전부터 늘 지켜보고, 저 속성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다 마셔서 납작해진 캔을 보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없애버렸다는 느낌이 든다.”며 “그런 부분들이 저에겐 항상 인상적이었고, 우그러지거나 납작해지는 것이 알루미늄 캔의 이미지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시 ‘알루미늄’에는 성장 과정에서 알루미늄처럼 많은 억압을 받은 여성이 화자로 등장한다. 

쓰레기통엔 빈 깡통들이 북적인다. 그중 하나를 납작해질 때까지 밟는다. 여자애가 어딜 감히 부라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웃집 아저씨가 손목을 낚아 챈 기억이 난다. 아저씨의 비린내가 손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다른 캔을 또 주워 밟는다. 

-「알루미늄」 일부

강혜빈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강혜빈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강혜빈 시인은 유리의 물성을 맡아,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상황을 시 ‘마녀는 있지’에 담아냈다. 강 시인은 “마녀라는 존재는 흔히 매부리코에 주걱턱을 가지고 마법으로 농작물이나 사람을 해치는 폭력적인 존재로 생각된다.”만 “이는 당시 사람들의 편견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입부의 “거울 속에 마남은 없지만/마녀는 있지”라는 구절처럼, 중세 마녀사냥의 대상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으로 한정되었다. 강혜빈 시인은 “요즘 세상은 누구나 마녀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며, 현 시대가 마치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상태라는 맥락의 말을 했다. 

분리수거 낭독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분리수거 낭독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낭독회는 문학 독자들과 동네 주민들의 참여 속에서 끝을 맺었다. 낭독을 마친 시인들은 청중들에게 ‘자신이 언제 어느 때에 재활용 쓰레기처럼 구겨지고, 납작해지고, 깨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끼냐’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지구에서 만난 사물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쓴 시를 함께 읽어보는 시간. “분리수거 낭독회”는 오는 8월 26일 저녁 7시 서촌에 위치한 베어카페에서 제2회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