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타카시 감독 내한 기념 특강 "실험영화가 내 인생을 미치게 하다" 성료
이토 타카시 감독 내한 기념 특강 "실험영화가 내 인생을 미치게 하다" 성료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8.20 1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페이시"의 설계도를 보여주고 있는 이토 감독 [사진 = 김상훈 기자]
"스페이시"의 설계도를 보여주고 있는 이토 감독 [사진 = 김상훈 기자]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1980년대부터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며 일본 아방가르드 영화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이토 타카시 감독이 2018년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하 네마프)을 맞아 내한한 가운데, 18일에는 “실험영화가 내 인생을 미치게 하다”라는 주제로 한국의 관객들과 만나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이토 타카시 감독은 1956년 후쿠오카 출생으로, 큐슈예술공과대학 재학 중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실험영화 “SPACY”를 만들며 두각을 드러냈다. 하이퍼-리얼리즘적인 시각 세계, 인간 내면의 광기와 모순 등을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어왔으며, 최근에는 댄서들과의 협업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올해 네마프에서는 이토 타카시 감독과 이토 감독의 스승인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특별전을 기획했다.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장편 대표작인 “장미의 행렬”을 비롯 “니시진”, “모나리자”, “색즉시공”, “아트만” 등 다수의 작품이 상영됐으며, 이토 타카시 감독의 데뷔작인 “스페이시”를 비롯한 “천둥”, “구역”, “달”, “마지막 천사” 등이 관객들과 만났다. 

이토 타카시 감독 [사진 = 김상훈 기자]
이토 타카시 감독 [사진 = 김상훈 기자]

8월 18일 오후 7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강연에서 감독은 60~70년대 일본의 실험영화를 인용하여 자신의 작품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했다. 

감독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스물 살 때 본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실험영상 “아트만”이다. 그 전까지 상업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던 이토 감독은 “아트만”을 보며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아트만”은 반야의 가면을 쓴 여자를 중심으로 10개의 동심원을 그리며, 방사상 패턴을 48분할하여 생겨는 480개의 촬영 포인트에서 반야 가면의 여성의 모습을 담는다. 이토 감독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영상이었다.”며 “‘아트만’은 한 명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사상이나 테크닉만으로 굉장한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됐다.”고 회상했다. 

"아트만"의 설계도
"아트만"의 설계도

마츠모토 감독이 공간을 좌표축으로 분해해 재구성하며 생겨나는 움직임과 시각적 세계는 이토 감독에게 큰 영향을 줬다. 젊은 이토 감독은 “아트만”과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카피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76년 “能(No)”는 반야 가면 대신 노멘(能面)을 쓴 여자가 등장하며, 노멘(能面)을 중심으로 공간을 분할한다. 공간을 분할하는 기법은 81년 “스페이시”에도 적용되며, 이토 감독은 체육관이라는 공간을 좌표에 의해 분해해 재구성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아트만, 마츠모토 토시오
아트만, 마츠모토 토시오

이토 감독은 스승인 마츠모토 감독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지만, 70년대 출몰한 다양한 실험영화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실험영화는 60년대 말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시네마와 유럽의 아방가르드 영화 등이 대대적으로 유입되었고, 70년대는 일본의 화가부터 뮤지션, 건축가, 사진작가, 소설가 등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실험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때 탄생한 실험영화 작가들은 일본 실험영화의 1세대라 할 수 있는데, 이토 감독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여러 실험영화를 인용해 소개했다. 

아이하라 노부히로의 STONE
아이하라 노부히로의 STONE

아이하라 노부히로의 “STONE”은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이 프레임 안쪽 뿐 아니라 바깥쪽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돌 위에 얼룩 그림 형태의 데칼코마니가 놓여 있고, 데칼코마니 뿐 아니라 주변 풍경도 함께 움직인다. 애니메이션은 프레임 안에서만 움직인다는 상식을 깨고 프레임 밖의 세계까지 애니메이션이 되는 시각체험을 제공한다. 

이토 감독은 “마츠모토 토시오와 동시대에 이 작가의 작품을 접하고 강한 자극을 받았다. 바깥의 움직임과 애니메이션이 함께하는데, 현실의 풍경과 맞물린 애니메이션이 흥미로웠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와 애니메이션의 요소가 합쳐진 새로운 어프로치였다.”고 밝혔다. 

이토 타카시 감독(오른쪽)
이토 타카시 감독(오른쪽)

야마자키 히로시의 “HELIOGRAPHY”는 천체관측용 도구에 카메라를 장착해 촬영한 영화다. 카메라는 태양에 고정되어 있으며, 태양의 순환을 카메라가 따라가며 주변의 풍경이 움직인다. 이토 감독은 “지구와 우주로부터 느껴지는 웅장한 영상이 감동적”이며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에 대한 짜임새가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오쿠야마 준이치의 “LE CINEMA”와 서 슌조의 “FILM DISPLAY”는 필름의 구조를 가지고 실험한 구조영화(structural film)다. “LE CINEMA”는 영화 필름의 1초가 24장의 정지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머리를 쓸어내리는 여성의 모습이 담긴 24개의 장면에 각각 번호를 매겨놓았다. 처음에는 1번부터 24번까지 순서대로 보여주지만, 영상이 진행되면서 속도가 빨라지거나 중간이 생략되거나 역순으로 재생되거나 무작위로 재생되기도 한다. 필름의 구조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순서에 따라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상이 탄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서 슌조의 “FILM DISPLAY”는 필름의 구조를 보여주는 영화인데, 필름의 재생을 세로가 아닌 가로로 보여주며 교묘한 트릭을 선보인다. 

코타 이사오, 네덜란드 인의 사진
코타 이사오, 네덜란드 인의 사진

마지막으로 코타 이사오의 “네덜란드인의 사진”은 “SPACY”에 기술적인 부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준 작품이다. 영상의 첫 부분은 해변을 걷고 있는 남자가 자신의 발치를 찍은 연속 사진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어 해변의 사진을 들고 있는 손가락 사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영상은 순차적인 장면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대한 기술을 선보인다.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준 일본의 실험영화를 소개한 이토 감독은 “마츠모토 토시오의 창작의 중심에는 확장과 변형이라는 이념이 있었다. 교육자로서 마츠모토 감독은 고전적이고 알기 쉬운 드라마를 부정했고, 학생들이 그런 걸 계획해가면 속속 공격하셨다.”며 “기성품의 개념을 뛰어넘으라고 교육했고, 나 또한 그의 이념이 박혀 있다.”고 설명했으며, 최근의 작품들 또한 확장과 변형이 작품의 중심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도중 자신의 작품 "세 명의 여자"를 설명 중인 이토 감독 [사진 = 뉴스페이퍼]
인터뷰 도중 자신의 작품 "세 명의 여자"를 설명 중인 이토 감독 [사진 = 뉴스페이퍼]

2016년 “세 명의 여자”는 이토 감독의 최신작 중 하나로, ‘확장과 변형’의 정신을 이은 작품 중 하나다. 극이면서 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3면의 멀티스크린을 통해 영상이 나오는데, 하나의 장면을 가지고 서로 다른 시선에서 인물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영화 속 등장인물인 여배우는 영화 마지막에 극장 안으로 들어와 영화 속에서 자신이 찍었던 16mm 영화를 영사기에 걸고, 영상이 끝나면 영사기를 내리고 퇴장한다. 

약 1시간 30분 가량 자신에게 영감을 준 작품들과 현재의 관심사를 밝힌 이토 감독은 강연 말미에는 강연에 참석한 예술가들과 조명, 음향, 예술공학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질의응답을 나눴다. 최근에는 댄서들과 협업 중이라고 밝힌 이토 감독은 “주변 지역의 행위 예술가들과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으며, 영상을 찍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2018 네마프는 오는 24일까지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이라는 슬로건으로 세계 각국의 실험영화, 대안영상 상영을 진행한다. 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무악파출소, 문화비축기지, 서교예술실험센터 등에서 진행되며 자세한 사항은 네마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