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가까운 것이야말로 문학” 정철훈 작가, 근대문학의 현장성 책방이듬에서 말해
“현장에 가까운 것이야말로 문학” 정철훈 작가, 근대문학의 현장성 책방이듬에서 말해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8.23 14:00
  • 댓글 0
  • 조회수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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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30년 이상 문학계의 각종 사건을 취재해온 문학기자 출신 작가 정철훈은, 올해 5월 경 삼인 출판사를 통해 저서 “문학아 밖에 나가서 다시 얼어 오렴아”를 출간했다. 정지용이나 이용악, 최서해, 손창섭, 김사량 등 근대 작가 31인의 비화를 탐구하며, 이를 통해 문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모색해보는 산문집이다. 

일산 호수공원의 동네서점 책방이듬은 지난 16일 이런 정철훈 작가를 초청하여,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삼인 출판사 김도언 주간의 사회 하에 진행된 ‘제1회 저자와의 만남’ 행사이다. 

정철훈 저서 "문학아 밖에 나가서 다시 얼어 오렴아". 사진 = 육준수 기자
정철훈 저서 "문학아 밖에 나가서 다시 얼어 오렴아".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정철훈 작가는 “신문사에서는 편집방향이 있다 보니 유명세 있는 작가를 주로 다룬다.”만 “화제성 있게 다뤄지지 않은 세상을 떠난 작가라고 해서 절대로 B급 작가는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신문사를 그만두고서는 그동안 공부해온 문학을 정리하고, 생물성이 끝난 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는 것. 

오히려 일제강점기와 해방, 육이오라는 세 가지 굴곡진 삶을 겪은 우리 근대 문학의 역사를 추적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문학의 주요한 성질인 ‘영토성’과 ‘현장성’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며, 정철훈 작가는 정지용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분단이 일어나기 전인 1940년, 정지용 시인은 길진섭 화가와 함께 영하 30도가 넘는 한반도 북쪽과 만주 땅을 여행한 바 있다. 현재는 북한이 된 선천 지역의 숙소에서, 정지용은 ‘추월’이라고 하는 어린아이가 북방의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눈 내린 하얀 땅, 창백한 회벽과 대조적으로 발갛게 언 귓불은 앵두와도 같았다. 실내에 들어온 추월이의 꽁꽁 언 귓불이 녹아 붉은 기운이 가시자, 정지용은 아쉬움을 느낀다. 그러곤 “추월아 너 밖에 나가 다시 얼어 오렴아”라고 이야기한다.  

정철훈 작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정철훈 작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정철훈 작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추운 북방 지역의 어린아이가 발갛게 얼어붙은 모습과, 그 희고 빨간 색조는 때때로 문학이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흰 벽과 벌건 귓불은 단순히 예쁜 이미지가 아니라, 추위와 싸웠던 당시 북방의 영토성과 시대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문학적 영토를 회복하자는 의미로 이 일화에서 산문집의 제목을 따왔다고 밝혔다. 

정 작가는 “현재 남한에서 할 수 있는 문학은 우리 역사의 반쪽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 책을 통해 “결국 문학은 영토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문학인에게는 이런 공간에 가깝게 사유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이런 공간적인 특징(영토성)에서는 현장성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성에 대해 정철훈 작가는 한 곳에 고착화된 상태에서는 찾아낼 수 없다며, “현장성은 움직이는 것이며, 액체화되어 유동성을 띤 상태에서 획득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많은 지역을 오가며 월남 문학, 해방 문학을 한 작가들(황석영, 박완서 등)의 글이 실감이 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삼인 출판사의 김도언 주간(좌)과 정철훈 작가(우). 사진 = 육준수 기자
삼인 출판사의 김도언 주간(좌)과 정철훈 작가(우). 사진 = 육준수 기자

현장성에 대한 설명을 보태기 위해 정철훈 작가는 최서해의 소설 “탈출기”를 예로 들었다. 작중 늘 배를 곯는 가난 속에 놓인 화자는, 임신한 아내가 무언가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화자가 혼자서 무얼 먹느냐고 다그치자, 아내는 울면서 먹던 걸 아궁이에 팽개치고 나가버린다. 화자가 새까만 아궁이를 뒤적여보자 그 속에서는 중국인들이 먹다 버린 귤껍질이 나온다. 귤껍질에 아내의 이빨 자국이 새겨져 있다. 

정철훈 작가는 “그 이빨자국이 바로 현장이고 실감”이라며 “까맣고 노란 귤의 색깔은 현장에서밖에 볼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탈출기의 저자인 최서해는 가난 때문에 자식과 아내를 몇 차례나 잃어야 했으며, 다양한 직종을 전전했다. 두부장수를 하던 때에는 가족 전체가 팔지 못해 쉰 두부의 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정철훈 작가는 북방에서 가난한 삶을 산 최서해는, 뚜렷한 하나의 직업 없이 수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었기에 “탈출기”를 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정 작가는 “이것이야말로 생활이고, 가장 작은 것이고, 빛나는 문학의 현장”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어떤 사람은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을 보고 삶의 진리가 통과하는 것을 느끼지만, 반대로 그걸 영원히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 가깝게 산 사람이 아니라면, 귤에 난 이빨 자국과 추월이의 귓불은 절대로 발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끝으로 정철훈 작가는 “우리의 문학이 현장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실내에 갇혀 글을 쓰다 보니, 경험이 축적된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 작가는 “경험이 적은 작가는 큰 것에 대해 쓰려고 하지만 문학은 가장 작은 걸 써야 하고, 큰 걸 지향할수록 망가진다.”며 “이런 작은 것은 현장에 있다. 작가들은 이런 현장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철훈 작가가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정철훈 작가가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행사는 동네 주민들과 출판인, 작가, 습작생들의 참여 속에서 끝을 맺었다. 행사 이후에는 독자들과의 질의응답과 사인회가 이어졌다. 

한편, 책방이듬의 김이듬 시인은 이날 진행된 ‘제1회 저자와의 만남’은 그간 진행해왔던 ‘일파만파 낭독회’와는 별개의 행사라고 이야기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새로이 준비한 행사라며, 정례화하며 진행할 것이니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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