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 소설가, “SF는 상상 노동이 필요한 장르”... SF가 한계 뛰어넘어 더 큰 사랑 받길 바라
백민석 소설가, “SF는 상상 노동이 필요한 장르”... SF가 한계 뛰어넘어 더 큰 사랑 받길 바라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8.2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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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노원구에 위치한 문화플랫폼 ‘더숲’은 지난 21일 백민석 소설가와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매달 1회 시인이나 소설가를 초청하여 작품을 낭독해보는 ‘더숲낭독회’이다. 

백민석 소설가는 1995년 문학과 사회에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여 데뷔했으며, “목화밭 엽기전”과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러셔”, “아바나의 시민들”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2003년에는 소설 “러셔”와 “쭉은 올빼미 농장”을 발표한 뒤 돌연 절필했으나, 2013년 소설집 “혀끝의 남자”를 출간하면서 다시 작가로 복귀했다. 

백민석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백민석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백민석 소설가는 단행본으로 엮지 않은 신작 SF 단편소설 “어째서 당신들은 나 없이도 행복한 건가?”를 낭독하고, SF 장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국내 입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설 “어째서 당신들은 나 없이도 행복한 건가?”는 남성이면서 여성의 몸을 가진 미치광이 천재 ‘사드/샤데이’가, 악의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는 익명의 인물과 벌이는 네트워크 전쟁을 관찰자 ‘나’의 시점에서 그리고 있다. ‘사드/샤데이’는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자신의 몸을 낙원으로 여겼으나,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잠식당해 정신과 몸의 불일치를 느끼게 된다. 백민석 소설가는 이런 인물의 모습을 통해 ‘소수자에 대한 혐오 속에서 어떻게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드/샤데이’는 프랑스의 마르키 드 사드 후작과,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샤데이의 이름을 따와 만든 인물이다. 백민석 소설가는 “둘 다 스펠링을 보면 SADE지만 프랑스식으로 읽으면 사드 영국식으로 읽으면 샤데이”라며, 같은 문자임에도 다르게 읽히는 아이러니를 한 인물에 담았다고 전했다. 

해당 작품은 본래 문예지에 청탁을 받을 때마다 연작 형식으로 집필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런 작업 방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고 내용 이해에도 어려움을 호소했다며, 백민석 소설가는 “이제 연작은 그만두고 추후 내용을 정리해 단행본으로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SF소설 집필은 2003년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러셔” 이후 두 번째 도전이라며, “첫 도전은 결국 무너지고 망했었다. 삼천부를 찍었는데 아직도 재판을 못 찍었다. 그런데 두 번도 망해버린 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백민석 소설가가 작품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백민석 소설가가 작품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에 행사의 사회를 맡은 유현아 시인은 “SF 영화는 굉장히 잘 나가는데, 소설은 왜 주춤하는 것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백 소설가는 “우리나라에는 SF의 독자는 오백여 명밖에 없다.”며 “요즘에는 좀 더 늘었지만, 초판을 찍어도 그걸 소화하기는 힘든 추세”라고 답했다. 

또한 “영화는 눈으로 보여줘서 머리를 쓸 필요 없이 받아들이기만 해도 재밌다.”만, 소설은 “SF적 상황이 눈에 보이지 않아 떠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즉 SF 소설은 독자에게 “상상의 노동”을 요구하는 장르라는 것. 백 소설가는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감정 노동에 익숙하고, 상상 노동을 힘들어한다.”며, “그래서 아픔을 이야기하거나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때문에 SF는 물론 철학서 등도 국내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백민석 소설가는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종로’ 등 익숙한 지명을 주로 사용하여, 상상의 노동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한다고 밝혔다. 자기가 보지 못한 지역이나 낯선 이름이 등장한다면, 독자는 그것을 떠올리고 이해하는 데에 굉장히 힘들어한다는 것. “가벼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름이나 지명 등이 가상의 지역이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일”이라며, 백 소설가는 이런 어려움을 뛰어넘어 “우리나라 독자들이 SF를 사랑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SF 장르의 소설을 써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백 소설가는 SF장르를 선호하는 국가에 대해 말해주었다. 백민석 소설가는 “SF는 일찍이 과학적 상상력이 주입되어, 미래주의가 그 나라의 독서를 지배했던 나라에서 선호한다.”며 “북한, 중국, 러시아 등 현재 사회주의거나 사회주의를 겪었던 나라에서는 SF가 인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며 백 소설가는 “언젠가는 통일이 될 텐데, 저는 북한의 SF 독자들을 노리고 있다.”고 말해 청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오랜 팬들의 참여에 깜짝 놀란 백민석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오랜 팬들의 참여에 깜짝 놀란 백민석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한편, 이날 낭독회에는 백민석 소설가의 오랜 팬들이 참여했다. 10~20년 전 백민석 팬카페에서 활동했던 독자들이다. 이들은 “절필 선언 이후 카페도 폭발되고, 독자들이 작가님에 대해 많이 궁금해 했다.”며, 절필을 한 이유와 절필한 기간에 어떻게 지냈는지 질문했다. 

백민석 소설가는 “사실 당시에는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 절필한 사람이 많았다.”며 “저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라졌는데, 절필한 걸로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백 소설가는 “제가 다 필요 없다며 떠나서 노동자의 삶을 사신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문학과지성사 측으로부터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아 다시금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며 백민석 소설가는 “이제는 글 쓰는 걸 그만두고 일하기는 힘들겠더라. 뉴스 보니까 사십대들이 다 일에서 잘리고 전멸했대서, 아등바등 쓰고 있다.”고 농담을 던졌다. 

끝으로 백민석 소설가는 “이달 말쯤이나 구월 초에 ‘헤밍웨이’라는 책이 나올 것 같다. 그리고 예전에 제가 냈던 책들이 다시 출간되기도 하고, 연재 중인 작품들도 책으로 내려고 한다.”며 “저는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일이 있어야지만 편안해지는 사람이라, 일을 하는 지금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전했다. 

백민석 소설가가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백민석 소설가가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낭독회는 문학 독자들, 특히 백민석 소설가의 오랜 팬들의 참여 속에서 마무리 됐다. 팬들은 “이제 작가님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셨으니, 다시 팬클럽을 만들 생각”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또한 더숲 관계자는 다음 더숲낭독회는 9월 18일 시집 “그네”와 “구르는 잠”의 저자인 문동만 시인과 함께 시를 읽는 시간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