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시인, 역사적 사건들의 사이 이어주는 것이 시인의 역할. 책방이듬에서 독자들 만나
박철 시인, 역사적 사건들의 사이 이어주는 것이 시인의 역할. 책방이듬에서 독자들 만나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8.3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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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박철 시인은 올해 4월 경 창비를 통해 시집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를 출간했다. 이전 시집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를 발표한 후 2년 만이다. 이에 고양시 일산구에서 동네서점 책방이듬을 운영하고 있는 김이듬 시인은, 지난 28일 박철 시인을 초청하여 시 낭독을 듣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제28회 일파만파 낭독회”를 개최했다. 

박철 시인은 1987년 창작과비평에 ‘김포’ 등의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데뷔했다. 펴낸 저서로는 시집 “김포행 막차”와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등과 소설집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 등이 있다. 

박철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박철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박 시인은 시집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를 출간한 소회를 밝히며, 수록된 시에 얽힌 사연을 말해주었다. 시인으로서 문학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밝히기도 했다. 

박철 시인은 자신은 시를 쓸 때 “만족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한다.”며, 이는 “소설로 치면 장편소설 하나를 쓴 만큼 체력 소모가 심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글에 만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 시인은 원고가 나온 이후에도 시집을 고치고 또 고치느라, 다른 작가들보다 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원고를 편집하는 데에만 5개월의 시간이 들어갔다는 것. 

체력소모 탓에 정작 책이 나오고서도 제대로 훑어보지 못했다는 박철 시인은, 이번 낭독회를 통해 책을 펼쳐보게 됐다며 몇 편의 시를 낭독했다. 사전에 시를 낭독하고 싶다고 요청한 독자들이나 행사에 참여한 김연수, 안경모 등 동료 작가들과 번갈아가며 작품을 읽기도 했다. 

김연수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김연수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서시인 ‘빨랫줄’은 역사의식에 관한 시이다. 박철 시인은 ‘글’과 ‘글을 쓰는 사람’은 역사적 사건에 가장 근접하고, 그 중심에 서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역사적인 사건을 멀찍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박철 시인은 “건너 아파트의 불빛”처럼 빛나는 서로 다른 역사적 사건들 사이에서, 시인은 “빨랫줄을 늘이는 자세나 역할을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폴란드라 비껴 말했지만 실상 아우슈비츠다 
사는 게 그냥 그래야 하는 것처럼 언젠가 나는 
옛 서대문 형무서 터 사형장 입구의 
늙은 미류나무 곁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무와 나란히 선다는 일 
부동의 자세가 세상을 멈추게 하거나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일부

시 ‘그냥 그래야 하는 것처럼’은 서대문 형무소와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이에 빨랫줄을 늘이듯 쓴 시다. 박철 시인은 과거 서대문형무소에 방문하여 입구 옆의 큰 나무를 보았을 때, 그리고 5년 전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 통로 옆의 큰 나무를 보았을 때 같은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 나무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봤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박 시인은 아우슈비츠,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 제가 가까이 서있진 않았지만, 두 나무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를 통해 그 나무에 얽힌 공통적인 순간을 전하고 싶었다는 것. 그러며 박철 시인은 “이것이 글을 쓰는 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박철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박철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지난 시집의 표제작인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를 낭독한 독자도 있었다. 낭독을 들은 박철 시인은 “저는 평생에 자충수를 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며 15년 전 독자들과 베트남을 여행하던 중, “하루는 로비에 제가 먼저 내려와 있었는데, 내가 있는지 모르고 아주머니들이 와서 한 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독자가 한 말은 “시인 양반 어디 갔는지 안 오냐. 그 돈 떼먹는 양반”이었다. 박철 시인은 “그때 독자들은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한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시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의 화자는 영진설비에 하수도 뚫은 돈을 가져다주라는 아내의 심부름을 두 번이나 나갔으나, 돈을 가져다주는 대신 술을 사마시거나 자스민을 한 그루를 사는 데에 돈을 쓴다. 그러다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와 화를 내자 아내는 나를 돌아보고, 화자는 그저 웃고 만다. 낭독회 현장에서 한 독자가 “그럼 현실과 시의 내용과는 다르냐.”는 질문을 던지자, 박철 시인은 머쓱해하며 “시의 내용에서 크게 다르진 않다.”고 답해 청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돈 좀 갖다 주려니 오늘처럼 장대비가 내려서 그렇구나 했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박철 시인은 글을 쓴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한 번도 글을 써본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며 “제가 앞으로 얼마만큼 글을 더 쓸지는 모를 일이지만, 있는 힘을 다해 써보려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철 시인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박철 시인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낭독회는 박철 시인의 노래와 기타연주를 끝으로 마무리 됐다. 박 시인은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를 한 곡씩 불러주며, 각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청중은 폭우로 인해 옷은 홀딱 젖었지만 “시와 노래, 기타 연주가 어우러진 시간은 무척이나 즐거웠다.”며 빗길을 뚫고 오길 잘했다고 말했다. 김이듬 시인 역시 “오늘 방문해주신 분들께서 즐길거리도 풍성해서 너무 좋았다고 말해주시더라. 저도 동의한다.”며 뿌듯함을 표했다.

책방이듬 일파만파 낭독회. 사진 = 육준수 기자
책방이듬 일파만파 낭독회. 사진 = 육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