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사회 시스템에 의해 고립된 개인... 벗어나기 위해선 '타자성' 회복해야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사회 시스템에 의해 고립된 개인... 벗어나기 위해선 '타자성' 회복해야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8.3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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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독일 지역에는 언제나 먹을거리가 가득하고 아무런 걱정도, 노력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상향을 그린 우화가 있다. 바로 “게으름뱅이의 천국”이다. 이상향의 이름은 ‘슈라라펜란트’로,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죽으로 된 성벽을 허물어질 때까지 핥아먹는 것이다. 이는 모두가 게으르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는, 역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건강한 사회임을 암시한다. 

이 슈라라펜란트에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남의 노력을 부당하게 갈취하는 ‘거짓말 기술자’가 되는 것이다. 슈라라펜란트에서는 거짓말을 무엇보다도 훌륭한 기술로 취급하여, 가장 큰 거짓말을 한 이에게는 돈을 주기도 한다. 끝없이 죽을 핥는 이들은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지만, 거짓말 기술자는 착실히 호주머니를 채워가는 것이다.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이 우화를 모티브로 삼아, 현 사회의 시스템이 가진 문제점을 고발한 이들이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최초예술지원을 받아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을 공연한 창작집단 루페이다. 루페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이 지닌 모순과 그로 인한 균열을 발견하여, 연극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연극 “게으름뱅이 천국”은 대한민국 사회의 대표주자 격인 네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사회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거머쥐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김지녀’는 거액의 대출 빚을 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대기업 엘리트와 구로기와 결혼을 꿈꾸며, ‘구로기’는 대기업이 아닌 하청업체의 파견 직원임을 숨긴 채 김지녀와 결혼한다. ‘이배충’은 나노라의 전남편이 남긴 재산을 노리고 그녀와 결혼하며, ‘나노라’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 종교에 거금을 바친다. 

창작집단 루페 이태권 연출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창작집단 루페 이태권 연출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창작집단 루페의 이태권 연출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주체성만이 강조된 혼자 사는 사회, 오직 나 혼자만 중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비정상적인 사회”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현대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도덕성을 요구하지만 “정말로 도덕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배신할 수 있는 ‘거짓말 기술자’들의 사회”가 됐다는 것. 

사람은 기성복처럼 같은 사이즈로 재단해 만드는 존재가 아니다. 때문에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인간의 삶에는 균열이 생겨난다. 극중 인물들이 결혼생활 중 집의 한 구석에서 발견한 작은 ‘구멍’은, 이런 균열을 상징한다. 이들은 처음엔 이 구멍을 무시하고 방치하지만 어느 순간 그 구멍이 자신을 잡아먹을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음을 알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구멍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과 고립감은, 사방이 천장이면서 바닥이고 동시에 벽인 독특한 무대 세팅은 위에서 극대화 된다. 특히 천장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 인물들의 위치는 지상에서 지하에 난 구멍 안으로 순식간에 격하된다.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이태권 연출은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에 따르면 현대인은 ‘연(학연, 지연, 혈연 등)’을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하기에 계약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스스로 왜소한 존재가 된다고 정의했다.”며 “우리는 각자의 구멍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며 사회는 “거대한 구멍, 혹은 수많은 구멍들의 합일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즉 타인과의 연 등을 모두 져버리면서, 아주 왜소하고 연약한 존재가 되어 타인의 거짓말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극중 인물들은 행복을 거머쥐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기도, 서로를 속이기도 한다. 하지만 빚에 쪼들리는 김지녀는 남편의 사망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 설계자에게, 행복을 꿈꾸는 나노라는 게으름뱅이의 천국으로 가는 책을 팔아 돈을 갈취하는 종교인에게 휘둘린다. 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당하고 있던 착취를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리고 놀란 이들에게 보험사 직원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항상 함께 있었어요.”라는 말을 내뱉는다. 이는 우리 현대인은 태어난 최초부터 시스템 안에 갇혀있었다는 증언과도 같다.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빠져나올 수 없는 순환을 보여주며, 그 안에 갇혀 거짓말을 갈고 닦거나 착취당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그저 손 놓고 시스템이 ‘나’를 짓밟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이태권 연출가는 우리 사회는 “거대한 하나의 구멍, 혹은 수많은 구멍들의 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며, “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구성원들의) 주체성이 타자성과 균형을 이루는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자기 자신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타인의 중요성도 알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며 “저는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의지가 있다면,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상당수 손실된 지점인 공감능력과 연대, 즉 ‘타자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대화와 소통,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가능하다. 

그렇기에 결말부에서 인물들은 끝없이 달음박질치고 헉헉대면서도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동안 함께였으나, 각자의 구멍에만 갇혀 알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의 끝에 이들은 관계의 단절과 파멸로 치닫게 된다. 서로에게 연결된 끈을 잘라버리고, 바닥에 드러누워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오직 자신만을 중요시 여기는 시스템의 꼭두각시로서 서서히 파멸하는 것과, 타자에 대해 알고 난 후 스스로 선택하는 파멸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게으름뱅이의 천국" 중. 사진 = 육준수 기자

창작집단 루페는 “게으름뱅이의 천국”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주일간의 여정을 마쳤다. 이태권 연출은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독일의 화가 파울 클레의 말을 인용하며, 앞으로도 “이 사회 곳곳에 있는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은 균열들”에 대한 담론을 연극으로서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