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에서 발견한 고생대의 생태계!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유영진 작가
[인터뷰] 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에서 발견한 고생대의 생태계!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유영진 작가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8.31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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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 사진 = 육준수 기자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약 5억 4천만 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에는 폭발적인 종의 분화가 있었다. 이 시기의 화석들은 이전에 있었던 단순한 형질의 동물 화석과는 달리, 복잡한 다세포생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캄브리아기를 기점으로 생물의 종이 다원화된 것이다. 지질학계에 큰 파란을 몰고 온 이 사건은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주지하듯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상상조차 어려운 먼 옛날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환경이 캄브리아기와 매우 흡사하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인사미술공간에서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진행 중인 유영진 작가이다. 유 작가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서 사진을 전공했으며, 13년도 졸업 이후부터 시각분야 예술에 매진하고 있다. 

유영진 작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유영진 작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서울의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런 주택가 주변을 둘러보면 폴리우레탄 폼이나 PVC 파이프 등 조악하게 수리해놓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현대의 도시 건물, 특히 서울의 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을 '캄브리아기'의 환경으로 사유하며, 이 안에서 발생한 부속물들은 분화된 생물체의 생태계로 은유한다. 주먹구구식으로 해놓은 수리는, 저마다 그 형태가 다르다. 고생대 “캄브리아기 대폭발” 때 수많은 생물이 분화했듯이, 부속물들 역시 서로 다른 종으로 분화한 셈이다. 

유영진 작가가 다세대 주택의 부속물이 캄브리아기 대폭발 속 생태계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유 작가는 “저는 이십대 초반부터 구도심인 관악구의 주택 밀집가에 살았다.”며 “처음엔 저도 도시 부속물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진 작업을 할 때 생긴 ‘주변을 예민하게 살피는 습관’은, 매일 보던 구조물들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리하여 부속품들이 마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는 것.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작업 방식에 따라 세 개의 테마로 구분된다. 지하 1층의 ‘설치 미술’과 1층의 ‘사진’, 2층의 ‘드로잉 작업’이다. 전시물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부속물 속에 감춰진 생물성을 끌어내고 있다. 각기 다른 세 장르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유영진 작가는 “물론 사진은 좋은 작업 방식이지만, 항상 작업을 하면서 대상을 좀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들이 있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이번 전시전은 다양한 생물이 생겨난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다루고 있기에, 사진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설치 미술품. 사진 = 육준수 기자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설치 미술품. 사진 = 육준수 기자

도시 속 부속물은 수리에 의해 갑작스레 만들어지지만, 환경 조건이나 시간의 변화에 따라 부서지거나 색이 변하게 된다.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다. 지하 1층에는 이렇듯 주변의 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부속물의 생태를 설치 미술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재현된 조형물들은 적색 벽독을 토대로 하고 있으나, 그 모습이 전부 다르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진 형태가 있는가 하면, 부서지거나 조명이 달린 형태도 있다. 또한 버섯이나 이끼가 자라는 것처럼 폴리우레탄 폼에 뒤덮여 있기도 하다. 

1층 전시에는 도시에 기생하는 부속물의 다양한 모습을 촬영한 사진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시멘트나 철근, PVC 파이프와 폴리우레탄 폼 등 도시에서 발생한 소재를 촬영한 것이다.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드로잉북. 사진 = 육준수 기자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드로잉북. 사진 = 육준수 기자

2층에 전시된 드로잉 시리즈는 전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유영진 작가는 기존의 부속물을 작가 특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진화된 생물의 형태로 그려냈다. 그리고 이 그림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전시장 한 곳에 비치했다. 그리고 드로잉 북 반대쪽에는 촬영과 드로잉의 표본이 된 몇몇 부속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표본들에 유영진 작가가 그 형태와 기능에서 유추한 고유한 학명을 붙였다. 생물학자 칼 폰 린네의 생물 분류법에 따라, 작은 범위인 ‘종명’과 큰 범위인 ‘속명’을 조합하는 방식이다. 이번 작품의 속명은 서울에서 발견했다는 의미에서 라틴어로 ‘서울’을 뜻하는 ‘세울렌시스(Seulensis)’이다. 각 작품들은 해당 재질과 서울의 라틴어를 합쳐 ‘세울렌시스 팔로르’, ‘세울렌시스 솔레네스 콤플루레스’ 등으로 호명된다. 

유영진 작가는 2층에 전시된 표본들을 보여주며, 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을 취재하던 중 발견한 것을 잘라 가져온 것이라 말했다. 유 작가는 건물의 주인에게 “이거(표본) 잘라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이걸 왜 가져 가냐고 묻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생물(부속물) 표본들. 사진 = 육준수 기자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생물(부속물) 표본들. 사진 = 육준수 기자

인터뷰를 마치며 유영진 작가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도시에 대한 전시전으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어떤 생태계인가를 파악하는 작업”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는 곧 자기 자신이 어떤 배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는지, 나 스스로와 마주하는 작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서 각자의 생태계에 살아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유 작가는 “저도 작가의 생태계에서 어떤 한 부분을 맡고 있을 것.”이라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가 어딘지 아는 것이 곧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나는 어떤 땅에서 태어나 어떤 목표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인가? 그리고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마음 속에 이런 의문이 맺혀있다면, 유영진 작가의 “캄브리아기 대폭발” 전시전에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사진 작품. 사진 = 육준수 기자
전시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사진 작품. 사진 = 육준수 기자

 

인사미술공간에서 진행되는 “캄브리아기 대폭발” 전시전은 오는 9월 15일까지 이어진다. 특히 9월 1일에는 유영진 작가와 만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나누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