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소설]제 9장 예의바른 죽음-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추천 소설]제 9장 예의바른 죽음-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 장희태 소설가
  • 승인 2018.08.3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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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소설]제 9장 예의바른 죽음-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뉴스페이퍼에서는 장희태 소설가의 장편 소설 "미리 죽는 인간"을 격주 연재합니다.
뉴스페이퍼에서는 장희태 소설가의 장편 소설 "미리 죽는 인간"을 격주 연재합니다.

 

예의바른 죽음 

 

꿈에서 조문 온 엄마가 아버지 시신을 내려다본다. 엄마를 부르자 엄마와 팔짱 낀 낯선 남자와 아버지가 동시에 나를 돌아본다. 둘을 밀쳐내려는데 손발이 늪에 잠긴 듯 무겁다. 간신히 소리를 지르자 입술에 익숙한 온기가 포개진다.

“악몽 꿨어?”
어느새 유라가 창백한 메이크업까지 마치고, 꼭 맞는 흰색셔츠 단추를 잠그고 있다. 
“네가 흡혈귀 같아서 그래.”
나는 희미한 향냄새를 맡으며 머리칼을 틀어 올린 목덜미에 키스한다. 유라는 손만 잠깐 멈추더니, 다시 능숙하게 단추를 잠그고 방문 손잡이를 돌린다.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손으로 가리자 유라가 웃는다.
“너도”

그녀는 바닥에 누군가 놓고 간 구겨진 담뱃갑을 뒤진다. 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으로 가, 허리를 깊게 숙여 향로 끄트머리 불씨에 담배를 댄다. 
“아버님. 불 좀 빌릴게요.”
유라는 봉투에 파묻힌 날 바라보며 연기를 내뿜는다. 
“전에 아저씨 얘기한 적 있잖아.”
나는 기지개를 켠다. 손끝에서 만 원권 몇 장이 담뱃재처럼 떨어진다.
“그랬지”
“사실 엄마한테 말했어. 새아빠가 나랑 잤다고”
나는 대꾸 없이 누런 얼룩이 남은 봉투들을 발끝으로 치운다. 유라는 한참 말이 없다. 필터까지 다 피운 담배를 가만히 물고만 있다. 연기에 눈이 매운지 얼굴을 찡그린다.

“근데 엄마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나는 고개를 젓는다.
“처음엔 이를 갈더라. 죽여 버릴 거라고. 근데 다음 날부터 더 잘하는 거야. 평생 안하던 요가학원에 다니질 않나, 야한 속옷도 잔뜩 사고”
“엄마가 널 질투한 거야?”
한참 동안이나 고른 말인데, 나는 자책한다. 유라는 돌아보지 않고 머금었던 연기를 길게 내뱉는다.
“한 몇 달은 그렇게 생각했지. 내가 불쌍하지도 않나. 딸보다 남자를 더 밝히는 미친년이라고 욕했지”
“근데 둘만 있을 땐 외벌이 하느라 매일 카레만 만들던 엄마가 새 요리를 배우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굳은 몸을 스트레칭 하는 걸 보는 게 괴로운 거야. 처음엔 꼴 보기 싫어서 그랬는데, 엄마가 실은 누구보다 발버둥치고 있다는 걸. 그녀와 내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요가에 전념하는 게?”
“달리 방법이 없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된다고 없던 지혜나 특별한 강함이 생길 리 없는데, 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가 어떻게든 해결해줄 거라 막연히 믿었거든. 늘 일단 저질러놓고, 혼자 간직하기 버거워 엄마한테 쏟아버렸지. 엄마가 쓰레기통도 아닌데. 생각해보니 난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더라. 진짜 이기적인 년이야”

나는 뒤에서 좁은 어깨를 깊게 껴안는다.
“어릴 때 그 정도는 괜찮잖아. 어쩐지 부러운데”
유라가 다 피운 담배를 비벼 끈다.
“부럽다고? 여하튼 그 필사적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엄마를 괴롭히는 일은 그만뒀어. 그냥 허무해졌거든”
“나한텐 괜찮아”
유라가 고개를 틀어 내 눈을 들여다본다. 살짝 올라간 입 꼬리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달싹인다.
“그럼 우리 결혼할까?”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의 코가 부딪히며 긴 속눈썹이 입술을 간질인다. 아마 유라가 갈비탕 들통에 세수를 하자거나, 아버지를 관에 넣지 말고 그대로 들어 나르자 했어도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내가 평생 알아온 사람들은 어제를 마지막으로 모두 죽거나 사라졌고, 유라는 내 옆에 남았으니까. 웃고 있던 입 꼬리가 나직이 대꾸한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장례지도사의 전화를 받고 영안실로 간다. 세 시간도 채 못 잤을 텐데, 지도사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정중히 웃으며 유라를 가로막는다. 
“오늘은 직계친속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유라는 자신이 며느리 될 사람이었다며 지도사를 쏘아본다. 
“아버지가 생전에 얼마나 예뻐하셨다고요. 저보다 더 딸처럼 장례를 치렀는데요.”
나도 거든다. 지도사는 곤란해 하며 유라를 안으로 들인다. 

아버지는 어느새 삼베옷으로 갈아입은 후다. 바지와 윗도리, 저고리와 두루마기, 도포까지 걸치고 있다. 발에는 버선을 신고 손까지 싸매져 조금의 속살도 보이지 않는다. 옷들의 사이즈는 모두 xxxl다. 깃대처럼 깡마른 시신이 깃발처럼 펄럭인다. 
“답답해 보이는데, 사이즈가 너무 큰 거 아닌가요?”
지도사는 돌아보지 않고 계속 옷을 갈무리하며 대꾸한다.
“그래야 고인을 편하고 넉넉하게 모실 수 있습니다.”
나는 유라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속삭인다.
“아무리 봐도 내가 입혀준 랑방 셔츠가 훨씬 나은 것 같아”
뾰족한 팔꿈치가 옆구리를 찌른다. 
“그걸? 정말 효자 나셨어.”

지도사는 개의치 않고 자기 할 일을 한다. 분주히 아버지 발에 또 다른 버선과 덧신을 신기며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어제 대화할 때 그는 장례학원을 졸업한지 반년이 되었다고 했다. 세달 전에 자격증도 취득했다며 소년처럼 웃었다.
“습이 끝나면 소렴금(小殮衾)으로 싸서 일곱 번 묶는데 매듭 없이 하며 다시 칠성판에 옮겨 대렴금(大殮衾)으로 싸서 장포 횡포로 묶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크기만 다른 천인데. 게다가 이처럼 꽁꽁 싸매는 것이 시신에 대한 예우라기보다는 산 사람에 대한 배려, 그러니까 되도록 죽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말도 없이 어제 아버지 피부를 복원한 것도 그렇다. 아마 병원에 온 경찰에게 부검하지 않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시신에 손을 댔겠지. 
 
나는 문득 의류 보관함에 있는 아버지의 택시기사 유니폼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역시 그 옷이 제 몸처럼 편할 텐데. 지도사는 말하겠지
“고인에 대한 예우가 아닙니다.”
나는 혼자 가만히 웃는다. 아버지를 전혀 모르는 주제에. 
 
지도사가 나무 숟가락에 생쌀을 떠준다. 내가 두 번, 유라가 한번 그걸 받아 아버지 입에 넣는다. 축축하고 부드러운 점막에 단단한 곡식을 뿌린다. 생쌀은 빗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어제 넣어 둔 유언장 생각이 난다. 생에 마지막으로 쓴 글을 힘 빠진 턱에 물고 있는 아버지. 지도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한 장 남은 천을 건네받아 직접 아버지의 얼굴을 덮는다. 꼭 사형수를 올가미에 매달기 전, 누가 죽인지 모르게 하기 위해 시야를 가리는 기분이다. 윤곽이 드러난 귓바퀴에 속삭인다.
“저예요 아버지”
 
“이렇게 모든 절차가 끝나면 깨끗한 백포로 덮어 입관합니다.” 
지도사가 기다란 천으로 주검을 둘러가며 묶는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빽빽하게 덧씌워가며 여민다. 죽은 사람도 저 정도면 통증을 느끼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몸무게를 실어가며 매듭을 짓는다. 지도사는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도 설명을 늦추지 않는다.
“이건 생에 마지막 이불을 덮어드리는겁니다.”
유라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한다. 어쩐지 심술이 난다.
‘너무나 아픈 이불이네요.’ 
‘방금은 편하게 모시려고 넉넉한 옷을 입힌다면서요?’
유라의 팔꿈치를 곁눈질하며 말을 삼킨다.
 
아버지는 결국 거대한 누에고치처럼 변한다. 부화한 아버지가 삼베천을 찢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려면 땅에 묻어야 할 텐데, 우리는 화장터로 간다. 흰 장갑을 끼고 아버지를 관에 담아 운구한다. 검은색 리무진에 실으려면 최소 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손이 부족해 지도사 한명이 더 따라붙는다. 불과 오 분 남짓에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부조금으로 받은 현금봉투들을 떠올리며 쉽게 오만원권을 지불한다. 
 
관을 들자마자 아버지를 꽁꽁 동여맨 이유를 깨닫는다. 기성품인 관은 시신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운구하는 사람들의 키 또한 제각각이다. 내가 뒤쪽에서 관을 들자 아버지가 급격하게 앞으로 쏠리며 쿵 소리가 난다. 목이 부러졌을 것 같다. 급하게 무릎을 굽히지만, 그 상태로는 십 미터도 걷기 어려워 천천히 자세를 바로 한다. 게다가 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씩 발이 커다란 돌 같은 것에 채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관이 덜컹거리며 안쪽의 아버지가 심하게 부딪친다. 아마 묶어놓지 않았다면 근육이 기능하지 않는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여버렸을 거다. 괜히 죽은 자의 이불이 아니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화장장에 도착해 차갑게 식은 아버지를 초고온 화로에 넣는다. 과거에는 시신이 완전히 재가 되려면 하루가 꼬박 걸렸는데,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지도사가 덧붙인다. 고운 재가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하식당으로 내려가 밥을 먹는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처박고 갈비탕을 목구멍 안쪽으로 넘기고 있다. 가까웠던 사람의 뼈와 장기와 살을 모두 태워내며, 뼈에 붙은 살점을 허겁지겁 이로 발라 삼키는 입들. 아버지가 기다린 건 내가 태어나는 순간이었을 텐데, 수저를 들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유라는 한 숟갈도 뜨지 않고 관장약만 입에 털어 넣는다. 
“또 먹어?”
“응, 근데 이게 울 일이야? 밖에서 항문용은 좀 그래”
“먹은 것도 없잖아?”
“너도 먹어봐. 이틀 굶어도 뭔가는 나와. 촬영 전엔 수분이라도 빼야지”
유라는 세 번이나 화장실에 간다. 괄약근을 조인 채 종종걸음 치는 뒷모습을 바라보자 성욕인지 식욕인지 모를 허기가 몰려온다. 유라의 갈비탕까지 해치우고 나서야 고개를 든다.
 
가루가 된 아버지를 납골당에 안치하고, 가까운 구청에 간다. 높은 구두로 갈아 신은 유라가 또각거리며 서류 두 장을 가져온다. 사망신고서와 혼인신고서.
“도장 있는 김에 하자”
나는 가만히 피곤에 찌든 앳된 얼굴을 들여다본다. 도장을 찍자 유라는 공무원들 앞에서 내게 기념 뽀뽀를 퍼붓고, 촬영이 있다며 콜택시를 부른다. 
“진짜 안갈거야? 내가 잘 말했어. 아버지 돌아가셔서 제정신 아니었다고.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사람이야.”
나는 고개를 젓는다. 택시 뒤꽁무니를 사라질 때까지 노려보다가, 여분으로 작성한 사망신고서를 들고 보험회사로 간다. 

서류를 제출하고 잡지와 신문을 뒤적거린다. 지역 조간신문에 '중년의 고독사' 라는 제목으로 아버지의 죽음이 몇 줄 실려있다. 다 읽기도 전에 담당실장이 Vip실로 날 안내한다. 본래 받을 보험금은 훨씬 컸으나, 자살에 의한 것이므로 이해 해주시라며 예의바르게 미소 짓는다. 지금 나오는 상품들은 자살로 보험금 수령조차 안 된다며, 양해해주십사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짠돌이었던 아버지가 저렴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의아하지만, 오억이 조금 못 찍힌 통장을 보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신경 쓸 순 없었겠지. 생에 한번쯤은 아버지도 인간적인 순간이 있었구나. 

 

장희태 소설가

1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2012 창작과비평 봄호에 시안, 쥐와 함께 잠들다 수록 2015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출판한 신예작가에 해달이 조개를 건네는 이유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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