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기억 속에서 반복되는 불행의 고리,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창작집단 '작당'의 연극 "나쁜 피"
잘못된 기억 속에서 반복되는 불행의 고리,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창작집단 '작당'의 연극 "나쁜 피"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8.3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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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최근 박근혜 정권 당시의 기무대 계엄령 문건이 공개가 되어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정권 당시 기무대는 계엄령을 선포한 이후, 언론과 국회를 통제하고 장갑차와 탱크를 동원하여 집회를 진압할 예정이었다. 이는 박정희 때의 친위 쿠데타를 떠오르게 한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업적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박정희가 했던 악행들을 우리가 모두 잊었기 때문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던 것라고도 할 수 있다. 

연극 "나쁜 피" 일부.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나쁜 피" 일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처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사건들을 잊어가는 이들, 혹은 숨기려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을 받아 오는 9월 16일까지 나온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창작집단 ‘작당’의 연극 “나쁜 피”이다. ‘작당’은 작년 11월 고려대학교 극회 출신의 배우와 작가들이 “기존의 연극과는 다른 연극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단체다. 

연극 “나쁜 피”는 존속 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태영’과, 그의 심리평가를 위해 범행에 대해 물어보는 수현의 대화를 다루고 있다. 태영은 자신의 가족이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지게 한 사회적 큰 사건들에 한 발을 걸치고 있으나, 그 사건을 기억하지 않으려 쉬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나쁜 피’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연극 "나쁜 피" 일부.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나쁜 피" 일부. 사진 = 육준수 기자

여기서 ‘나쁜 피’는 잘못된 기억을 의미한다. 창작집단 작당의 이경은 극작가(연출 겸)는 흐른다는 피의 성질에서 ‘기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역사에 대해 무언가 잘못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있고, 그것이 현재까지 흘러들어온 것이 바로 ‘나쁜 피’라는 것. 이경은 작가는 자신은 “이십대 초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루는 것을 보고서야, 보도연맹 학살을 알았다.”며, 이때 “사람들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가는 최근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들이 “제가 어릴 때, 뉴스에서 본 사회적인 사건, 사고들”과 맥락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잘못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며, 심지어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하다는 것.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왜 안 죽냐. 똑같이 죽여 버려야 한다. 사형시키자.”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경은 작가는 “그런 반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처벌은 한 번 겪었던 문제들이 다시 반복해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문제의 고리를 끊어내지는 못한다는 것.

연극 "나쁜 피"의 이경은 극작가(연출).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나쁜 피"의 이경은 극작가(연출). 사진 = 육준수 기자

그러며 이 작가는 작품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세월호 참사 당시에 본 어떤 학부모의 인터뷰에 있다고 밝혔다. 한 학부모가 “제가 젊었을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그때 저는 ‘안됐다, 슬프다.’ 정도만 이야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일이 또 발생한 거다.”라고 말하는 인터뷰이다. 이경은 작가는 “그때 학부모는 지금 슬퍼하는 사람들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며 그것이 바로 ‘올바른 기억’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그것에 대해 올바르게 기억하지 않고, 없던 일로 취급하거나 침묵하는 행위는 결국 그 비극이 다음 세대에 되풀이 되도록 방조하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연극 "나쁜 피" 일부.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나쁜 피" 일부. 사진 = 육준수 기자

태영의 가족들은 이런 가해자의 전형이다. 어머니는 수련회 화재 사건(씨랜드청소년화재사건)에서 동료 교사와 술을 먹고, 아이들이 죽어갈 동안 홀로 탈출한다. 할아버지는 백화점 붕괴 사건(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건물을 지은 건설업자이며, 그가 사회적으로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성장하게 된 데에는 민간인 학살(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일들을 떠올리기조차 싫어하며, 집에서 가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강요한다. 이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쉬쉬하고 그것을 묻으려 하는 “엄숙성을 강조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의미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역사에 대해 우리는 마주보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그것을 잊지 않을 때에만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오는 9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창작집단 ‘작당’의 연극 나쁜 피는 우리에게 이런 역사에 대해 한 번쯤 돌이켜볼 기회를 제공한다.

연극 "나쁜 피" 일부. 사진 = 육준수 기자
연극 "나쁜 피" 일부. 사진 = 육준수 기자

끝으로 이경은 작가는 연극을 관람하러 온 관람객들이 다른 사람들과 한 번쯤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창작집단 작당의 이후 활동에 대해서는 “저희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개인을 억압하는 시스템이나 개인의 정체성”이라며, 삶의 경계를 보여주는 작업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계나 연극계에 있었던 미투운동 등 당연하게 여겨진 부당한 지점들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극단이 아닌 창작집단인 만큼 무용이나 소리예술, 영상, 웹드라마 등의 다원 예술도 생각 중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