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이 협업할 수 있을까? 시인 심보선과 뮤지션 이적, 문학주간에서 두 장르에 대해 이야기해
시와 음악이 협업할 수 있을까? 시인 심보선과 뮤지션 이적, 문학주간에서 두 장르에 대해 이야기해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9.1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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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일반적으로 시와 노래는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며, 시가 개작되어 노래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를 잘 살펴보면 대개 윤동주나 한용운 등 과거의 시인으로, 현대의 시인들이 쓰는 시가 노래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처럼 현대시가 음악화 되지 않는 이유 등 ‘음악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지난 3일 문학주간 2018을 맞아 대학로 예술가의 집 예술나무 카페에서 진행된 심보선 작가스테이지 ‘심심파적’이다. 

이날 행사에는 심보선 시인과 뮤지션 이적이 참여하여 음악과 시의 협업을 시도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두 장르의 멀어진 거리감과 협업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심보선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심보선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심보선 시인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사회학자 시인으로,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며 데뷔했다. 시집으로는 “눈앞에 없는 사람”과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오늘은 잘 모르겠어”가 있다. 이적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심보선 시인의 후배로, ‘달팽이’와 ‘뿔’ 등 한 가지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한 가사로 가요계에서는 ‘음유시인’이라 불리고 있다. 

- 시와 음악, 가깝지만 먼 사이 

일반적으로 시와 음악은 대단히 가까운 장르로 여겨진다. 어떤 시는 음악처럼 낭송되며, 어떤 노래의 가사에는 ‘시적이다’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심보선 시인은 “시는 원래 음악이고 노래였다.”만, “현대로 오면 올수록 전통적인 노래의 특징과 운율이 많이 사라지고 자유로워졌다.”고 이야기했다. 현대의 시는 형식이 다원화되어, 노래의 특징인 운율이 사라졌다는 의견이다. 

그러며 심 시인은 자신의 경우엔 사회학자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논문”을 쓸 때가 많다며, 그 영향을 받아 시가 산문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며 이런 산문화된 시의 구절들을 대중가요로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라 전했다. 

실제로 현대의 시를 가요로 만들어 불러봤다는 이적은 “현대시로 대중가요를 만들어보면 정말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대중가요에는 절에 해당하는 벌스(verse)와 후렴에 해당하는 훅(hook)이 반드시 존재하며, 이것이 반복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적은 대중가요에서는 아무리 ‘시적이다’라고 일컬어지는 가사들조차 음절이나 발성 등을 고려해 변형하여 리듬감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현대 시의 언어를 고정된 형식 안에 녹여내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때문에 “가수가 가사를 쓰기에 (시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만 “현대시와 가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먼 장르 같다.”는 의견을 냈다. 

- 시와 음악의 협업, 대중가요 아닌 현대음악에서는 가능성 있어

심보선 시인과 이적은 이처럼 장르 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현대시를 대중가요로 만드는 작업은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중가요가 아닌 현대음악에서라면 시와 음악의 협업이 가능할 듯 보인다고 심보선 시인은 이야기했다. 

여기서의 ‘현대음악’은 ‘현대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이 아닌 시대가 발전하며 새롭게 생겨난 음악 작업 방식이나, 수많은 기법과 양식을 동시에 시도하는 전위의 음악체계를 뜻한다. 

심보선 시인은 현대의 시를 낭독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면 “현대시 안에서도 리듬감이나 운율감을 느낄 수 있다.”며, 현대시 속의 리듬은 “읽는 이가 언어를 읽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발견하고 부여”한다고 말했다. 그러며 이 특성이 현대음악의 작업 방식과 비슷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며 심 시인은 자신이 겪었던 현대시와 현대음악의 결합 사례를 이야기했다. 독일에서 현대가곡을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으로부터 “청춘이라는 시로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청을 받았을 때이다. 심 시인은 요청을 흔쾌히 허가하고 나중에 파일로 받아 들어봤다며 “성악 식으로 청춘을 부르는데, 굉장히 신선하더라. 저로서도 낯선 체험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심보선 시인의 시 ‘청춘’은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로 시작하는 산문시이다. 앞서 이적이 말한 것처럼 음절이나 발성을 신경 쓴 시구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요로 불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학생은 시 ‘청춘’을 ‘성악’이라는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일화를 들은 이적은 “대중 작곡가가 시로 노래를 만들려면 힘들다.”만 “현대음악의 작곡가가 풀어서 접근하면 가능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시와 현대음악의 협업은 시의 언어들을 그대로 음악화 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시 자체에서 다른 종류의 음악성을 찾아내는 재밌는 작업이 될 수 있겠다는 말이다. 

이날 심보선 작가 스테이지 ‘심심파적’은 문학과 음악을 좋아하는 청중들의 참여와 호응 속에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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