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주간 2018 문예지 세미나] 디지털 시대와 문예지의 방향 - 고봉준 문학평론가
[문학주간 2018 문예지 세미나] 디지털 시대와 문예지의 방향 - 고봉준 문학평론가
  • 고봉준 문학평론가
  • 승인 2018.09.1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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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5일 마로니에 공원 다목적홀에는 문학주간 2018 행사의 일환으로 문예지 세미나 '지금 여기, 문예지 공동체를 꿈꾸다'가 개최됐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뉴스페이퍼와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가 협력한 행사로, 문예지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이하는 세미나에서 발표된 발표문 전문입니다.

1.

한국 근․현대문학사는 문예지의 역사라고 이야기해도 과장이 아니다. 한국의 근대문학은 ‘신문’과 ‘잡지’라는 새로운 매체를 중심으로 성립․성장했고, 여러 언론사들이 발행하던 각종 종합지, 다양한 단체와 소규모 출판자본이 발행한 월간문예지의 시대를 거쳐, ‘창비’와 ‘문지’가 주도한 이른바 ‘계간지의 시대’, 심의․검열 등의 정치적 억압 때문에 생긴 ‘무크지의 시대’를 통과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문학시장은 특이한 더블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문예지’ 발행과 ‘단행본’ 출간이 분리/연속 상태로 서로의 재생산에 기여해왔다는 것, 작가는 물론 편집자들 또한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들을 모아 작품집(단행본)을 출간하는 시스템에 적응해온 것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소설 분야에서 이른바 ‘공모전’의 시대가 시작되어 전작 투고 및 출간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기발표작을 모아서 작품집을 내는 방식이 압도하고 있다. 이 특이한 더블-시스템으로 인해서 문예지는 독자와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학장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문예지의 지형은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축소되었다는 정도의 소극적인 평가로 그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1) ‘독자’와 ‘생산자’가 거의 일치한다. 
(2) (종합)문예지를 읽는 순수 독자층이 거의 사라졌다. 
(3) 대안적인 문예지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4) 온라인 문예지의 약진이 돋보인다.(<문장 웹진> <웹진 비유> 등) 
(5) 시 전문 문예지가 지속적으로 창간과 폐간을 반복하고 있다.  
(6) 온오프 라인을 결합시키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문학 3>) 
(7) 새로운 플랫폼 형태의 문예지가 약진하고 있다.(<릿터> <미스테리아> <악스트> 등)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사후적인 진단에 불과하겠으나 문예지 중심의 문학장은 인쇄 및 출판, 시장과 생산의 규모 등이 변화함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작가(생산자)의 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개별 ‘작품’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 출간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도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길었다. ‘생산’의 영역과 ‘소비’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었다. 문예지는 중간에서 매개 역할을 담당했고, 무엇보다 ‘비평’의 역할이 중요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단행본 시장이 활발하지 못할 때, 문예지가 그 역할의 일부를 담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국내문학만을 놓고 보아도 현재의 단행본 생산 규모는 엄청나다. 자신이 애정하는 작가의 작품을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문예지를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한때 유행하다가 지금은 시들해진 시스템, 가령 대형 포털사이트를 비롯하여 서점, 출판사 홈페이지 등에 소설을 연재하고, 연재가 끝나면 그것을 출간하는 시스템이 증명하듯이 지금은 단행본 출판이 그 자신의 규모를 유지, 재생산하기 위해 작가와 문예지를 쥐어짜는 것이 현실이다. 동시에 독자들 또한 문예지보다는 단행본에 익숙한 세대가 주이고, 무엇보다도 잡지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사라졌다. 이런 현실은 이미 오래전에 예견되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에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일환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문학의 성격 변화를 주장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문학 특유의 보수성 때문인지 그런 논의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출판시장에서는 한동안 ‘E-book’ 대세론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뾰족한 출구를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   

2. 

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은 공적 재정을 투여해 제도적 문학장인 ‘문예지’의 출간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반복되는 얘기겠지만, 이 사업의 필요성과 정당성은 ‘문예지’ 자체보다는 그것이 문학장의 중심, 현실적으로는 필자가 더블-시스템이라고 명명한 시스템에서 맡고 있는 역할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 사업안내문은 그것을 “문학 창작 활동의 주요 거점 공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역 문예지나 특정 성격을 띤 실험적 문예지가 대표적으로 그렇듯이 문예지는 단순히 ‘신작(新作)’을 실어 나르는 그릇만은 아니다. ‘신문’은 다음날이 되면 ‘신문지’가 된다는 농담은 ‘잡지’에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다. ‘잡지’는 한편으로는 생산되는 텍스트의 성격이나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의사소통의 형식적 틀 등을 결정짓는 기술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유무형의 문화적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그것을 일정한 기록체계라고 말하는 것이 부당하지는 않지만, 과거 수십 년의 경험이 증명하듯이 ‘잡지’는 시의적인 용도만을 충족시키고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 반복적으로 호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문예지발간지원, 지원을 하는 입장이나 받는 입장 모두에게 문예지는 시의적인 그릇의 차원으로만 이해된 측면이 큰 듯하다. 그리하여 당장 한 권의 잡지를 출간하는 노력과 비용을 어떻게 지워하거나 감당할 것인가가 이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일 것이다. 이 관심의 현실적인 시급함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문학장은 ‘생산자’와 ‘유통자’만이 존재하는 제한적인 세계가 아니므로 마땅히 이 사업은 그것을 수용․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수반해야 할 것이다. 넓게 보면 문예지에 신작이 게재되고 그것이 단행본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이니 독자가 단행본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문예지와 전혀 무관한 관계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순기능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에서 문예지가 유통․소비되는 경로를 들여다본다면 다르게 판단할 지점도 없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술위의 지원금을 받은 문예지들 가운데 극소수를 제외하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통한 독자의 접근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발간되는 문예지들은 갈수록 늘고 있지만 정작 그것들 대부분이 독자의 손에 도달하지 못하고 어딘가에서 사라진다.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사실상 일치하는 시전문지의 경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질문은 공적재정의 지원을 전재한 물음, 그러니까 특정 문예지가 개인 또는 집단만의 재정이 아니라 공적재정의 지원을 받아서 출간되는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 나는 공적지원을 받는 문예지(약 50종)의 경우 목차는 물론 잡지 내용의 일부라도 웹을 통해 공개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통해 제한적이나마 문예지도 기록체계의 일부로 참여했으면 한다. 해마다 우수문예지로 선정되는 문예지들은 그나마 문학장 안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평가되는 매체일 것이고, 따라서 그것들의 목차, 또는 내용 일부가 웹사이트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공개됨으로써 검색 기능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잡지의 내용 전체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공개범위는 목차와 내용의 일부로 한정하고, 공개 범위와 방식은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참고로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북 매거진 ‘나비’에는 ‘신간 제1장 공개’라는 코너가 있는데, 매호마다 상당히 많은 신간들의 일부가 여과 없이 공개된다. 해외 학술지나 단행본의 경우에도 일부나마 공개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용의 일부를 공개하는 것은 공적 지원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고 독자에 대한 서비스일 뿐 편집권․이익추구권의 침해가 아니다. 많은 문예지들이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춘 상태에서 문예지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웹사이트에 내용을 공개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온라인 시스템 구축의 경험과 여력이 있는 문화예술위원회가 플랫폼을 제작․관리하고, 각 문예지는 공개할 내용을 한글문서 또는 pdf 방식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거와 다른 문화적 환경 속에서 문학을 쓰고 읽고 있다. ‘창비’에서 제작한 어플리케이션 ‘시요일’의 이용자가 얼마나 되는지, 각종 문학 팟캐스트에 접속하는 이용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것은 곧 매체 변화의 역사였고, ‘문예지’라는 형식 또한 그 변화의 한 계기를 통해 등장한 문학 장치일 따름이다. 또한 문예지가 익숙한 과거의 방식을 재생산하는 데만 머문다면 그나마 갖고 있는 영향력도 잃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매체와 시스템 차원에서 보면 문학의 역사는 작가와 독자가 관계 맺는 방식의 변화라고 규정할 수 있다. 문예지가 “문학 창작 활동의 주요 거점 공간”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동일하게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곳에서 ‘문학’에 대한 지원이 ‘창작’에 대한 지원에만 국한되어도 좋은 것인지, ‘매체’나 ‘독자’에 대한 지원을 통해 ‘창작’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매체학자들의 주장처럼 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기술의 변화와 발전은 궁극적으로 정보 자체의 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문학은 ‘정보’가 아니지만, ‘문예지=매체’라는 장치가 존재하는 한 비슷한 경향을 띨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지원 규모 자체가 현저히 커져야 한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지원 규모와 변화의 방향성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문학평론가 고봉준  
고봉준은 1970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으로 등단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평론집으로 『반대자의 윤리』, 『다른 목소리들』, 『유령들』 , 『비인칭적인 것』 을 출간했다. 현재 계간 『포지션』,  『문학선』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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