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주간 2018 문예지 세미나 참관기] 그래도 만들고 있다 - 유수연
[문학주간 2018 문예지 세미나 참관기] 그래도 만들고 있다 - 유수연
  • 유수연 시인
  • 승인 2018.09.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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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5일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뉴스페이퍼와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가 협력한 문예지 세미나 "지금 여기, 문예지 공동체를 꿈꾸다"가 개최됐습니다. 문예지의 현실과 문예지 정책의 방향성을 살펴보는 자리였으며, 이하는 행사를 참관한 비주얼문예지 모티프의 유수연 발행인의 참관 후기글입니다.

[뉴스페이퍼 = 유수연 시인] 지난 9월 5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된 문예지 세미나를 참석했다. 문예지를 만들고 있는 입장에서 궁금했던 것과 지원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세미나는 PPT를 넘기고 발제문을 읽고 발제문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형식으로, 장장 3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궁금증과 호기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지고 무뎌졌다. 질문할 힘조차 사라질 긴 시간이었지만 마지막 질의응답 때 힘을 내 묻기로 했다. 누군가의 답을 원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3시간 동안 이어진 세미나를 들으며 느꼈던, 나의 의문점이자 답답함에서 나온 물음이었을 뿐이다.  

“문예지의 위기를 꼭 문학인들끼리만 얘기해야 할까요?” 

지금을 위기라 말한다면, 정말 비상시국이라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외부 인사 초청이 아닌가. 함께 물에 빠져 있는데 서로 수영 방법은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말하고 있으면 어찌할까. 문예지의 웹진화 등을 말할 때는 웹 전문가를, 경영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전문 경영인을, 홍보의 부족을 논할 때는 마케팅 업체 등. 전문인의 의견과 함께 들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한계를 알고 있는데 그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왜 한계에 직면한 이들끼리 말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세미나 중 들은 것은 몰랐던 어려움이지, 몰랐던 해결책은 아니었다.  

문예지 세미나 행사장 모습 [사진 = 뉴스페이퍼]
문예지 세미나 행사장 모습 [사진 = 뉴스페이퍼]

세미나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들이었다. 다 맞는 말이고 문예지를 접했던 ‘문학인’들이라면 하나같이 느꼈을, 뻔한 문제점들이었다. 그런데 해결 방법은 어떠한가. 장장 3시간 동안, “문예지를 내기 어렵습니다. 문예지의 모습이 변화해야 합니다. 문예지 운영, 문예지의 홍보, 원고료 미지급 등이 문예지를 위기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사업의 투명성을 살려야 하며, 문예지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대형 출판사 문예지를 배제해야 한다 등” 그런 곳에 ‘지원’ 해야 한다고. 

그 문예지들이 나올 수 있게 ‘돈’을 지원하는 것. 하지만 그 지원이 끊긴다면?  

나는 오로지 문예지가 필요한 돈을 산소호흡기 달아주듯 지원하는 사업에 회의감이 있다. “옜다, 이 돈으로 한 번 버텨봐”식의 지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리(營利) 잡지가 나라의 지원 없이 내기 어렵다면 폐간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하지만 문예지는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문예지가 있어야 문학이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나는 오로지 발행을 목적으로 하는 지원은 원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또 윗분들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원 사업의 지원금이 컸다면 이런 얘기를 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 생각을 하게 됐음을 밝힌다.)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 오기가 제일 어렵다’ 출판업을 하고 문예지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느낀, 말하기 부끄러운 깨달음이다. 돈은 벌기 어렵다. 당연하다. 남에게 파는 것 또한 어렵다. 정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고 지원만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 출판을 할까. 어떻게 살아남을까. 어떤 방식으로 마케팅을 할까. 새로움, 이라는 말로 포장하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들의 활로를 열어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돈으로 다 해결 가능하다. 그렇지 못하기에) 그렇다면 플랫폼 계발 또는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강사의 멘토링, 콘텐츠 경연을 통한 지원방법, 등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선별, 지원 방법은 어떨까. 각자에게 자생력을 갖출 돈을 지원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최소한 아이디어를 증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발제에 나섰던 선생님들도 진즉 하셨을 거라 안다.  

하지만 한 평론가님의 말처럼, 정작 들어야 할 사람들은 여기 없었다.  

이후 생각해 봤다. 문예지는 왜 위기일까. 그런데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문예지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환경이 어떻게 위기로 달려가고 있는지 알 것이다. (위기의 정의는 폐간과 휴간 등 문예지의 존폐에 대한 것으로 밝힌다) 단순하다, 문예지가 안 팔리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이 없다. 왜? 친구들과 웃으며 쓰는 말로 ‘노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재미가 없다. 왜 재미가 없을까. (내 기준에서)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문예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청탁의, 청탁에 의한, 청탁을 위한 문예지다. 

그런 문예지는 사서 보지 않는다. 확인만을 한다. 내 시가, 어떤 시인, 작가의 글을 확인하고 덮는다. 물론 청탁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담고 있는 콘텐츠가 청탁에만 과중하게 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만 청탁만이 작가와 독자의 연결장이란 생각을 끊고 새로운 방법을, 콘텐츠를 계발하는 것이 어떨까. 청탁은 소통의 장으로써 큰 힘이 없어졌다. 최근 문학신문의 문예지 통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문예지는 전공자들도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사실 나에게도 그렇다) 문예지는 '등단 지면' 정도로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심사평과 당선자를 ‘확인’하는 용도로, 또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는 용도. 그 이상은 되지 않는 것 같다. 문예지 상품의 가치는 ‘확인용’으로 한정돼버렸다. 그렇다면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잘 팔리는 문예지는 성공한 문예지일까? 그것에 대한 답을 내리기 전에 지금까지 잘 팔린 문예지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예지 판매로 인해 성공한 출판사가 어디 있을까. 사석에서 누군가 말해준 것처럼 폐간하고 잘 된 출판사는 있어도 문예지로 돈 벌었다는 출판사는 없다. 지금의 지면은 케이팝스타나 쇼미더머니 정도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출판사에 어울리는 작가를 발굴하고 키우는 오디션 프로 같다. 지면을 할애하고 조명하고 계약으로 이어지는 단계. 슬픈 것은 그 방법이 많은 작가와 작가 지망생에게는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이는 것이다.   

오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해를 넘어 ‘그런 것 같다’라고 느낄 정도로 문단의 생활은 “아니 설마 그러겠어?”로 시작해서 “정말 그럴 줄이야”로 끝나는 일상이 많다. 하지만 그런 생리가 너무나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문단이라는 우물이 정말 작다는 것이다. 문학 전공자와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우리 우물을 쳐다봐주지 않을 정도로 문단이라는 우물은 깊고 작은 산골짜기 사이에 있다. 거기서 누구의 지느러미가 아름답다 아니다 떠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우리가 대단하게 생각하는 그 문예지들을 알까. 누가 우리 지면에서 청탁 받으신 거 축하드려요, 라는 말에 정말 기뻐해 줄까.  

아무리 욕하고 변화 좀 합시다, 소리치는 지면들이지만 나는 그것들의 매력을 충분히 알고 있다. 청소년 시절, 교보문고에 틀어박혀 읽었던 시 전문지와 종합 문예지들 지금과 비교하면 사진도, 컬러도 없는 그때의 문예지들을 읽으며 시심을 키웠던 것처럼. 그만큼 그들만의 매력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도 10년 전의 일이다. 그때와 지금의 모습에서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열심히 달려왔구나. 할 만큼 했구나. 옆에도 좀 보고 더 먼 미래로 나아가 볼까? 말이다.  

내가 처음 문예지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러한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단하고, 어떻게 문단을 한 번 휘어잡고자 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대단하고, 존재 의미 자체로 문학에 크게 기여하는 문예지는 많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팔리는 문예지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저 누군가의 손에 잡힐 수 있는, 그것이 표지가 예뻐서, 그것이 ‘그냥’ 사보고 싶다는 이유여도 괜찮다. 손에 있는 것들은 언젠가 읽히기 마련이다. 그저 누군가의 글을, 그저 책장에 있다는 이유가 아닌, 읽는 이로 하여금 사고 싶다는 충동으로 살 수 있는 잡지. 왜 그런 잡지가 문예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왜 언제까지 보그와 엘르에 문학인들을 뺏겨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지금의 모티프를 만들고자 했던 치기 어린 이유라 말하고 싶다. 작가들을 대중에게 더욱 노출시키고 싶은 욕망. 작가라고 하면 가지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언제까지 시인은 윤동주여야 하는가.)  

많은 이들이 다양한 걸 시도하고 싶지만 돈이 없다, 안 된다, 어렵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모티프도 전문 모델, 전문 포토그래퍼, 전문 디자이너, 전문 코디, 메이크업아티스트, 로케이션비 등등 사진 몇 장 더 싣는 그 도전에도 어마어마한 돈이 깨졌다. 투자한 만큼 결과가 보이지 않는 곳, 문예지를 밑 빠진 독이라 불러도 될까? 거기에 왜 그렇게 투자하냐는 소리를 듣는다. 그럴 때마다 묻고 싶다. 

"왜? 그러면 안 돼요?" 

내가 사랑하는 것에, 내가 꿈꾸는 미래를 위한 곳에 돈이 무슨 대수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수도 없이 무너지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고자 한다.) 문예지를 읽으면서 문예지의 새로운 변화를 목격한 것이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문예지가 뭐 크게 변할 필요가 있나? 문예지가 꼭 잘 팔려야 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나의 이런 생각이 문예지를 하나둘씩 사라지게 했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문예지를 사서 본 기억보다는 들여다보고 내려놨던 일들만 떠오른다.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많은 이들이 문예지를 만들고 망하고 또다시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같이 허우적거리면서도 “이렇게 하면 덜 가라앉아요”, 말하면서 수없이 가라앉는 이 물속으로의 초대를 반기는 곳이라니. 참 이상한 곳이다. 새로운 문예지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뛴다. 펀딩을 하거나 가능한 만큼의 돈으로 구매하고자 한다. 이것은 내가 같은 입장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 각자가 원하는 방향이 있지만, 서로가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가 문학을 사랑하고 널리 알리고 싶다는 의미로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같이 쓰고 엮으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무너지지 않게 버티고 있고 싶다. 무너지지 않게 함께 버티고 싶다. 그리고 잠시 쉬고 있는 많은 문예지의 복귀를 애타게 기도하고 있다.  

“그게 되겠어요?”라는 말에 “네, 그럼요”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약력> 

유수연 :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문학레이블 공전》 소속. 비주얼문예지『MOTIF』발행인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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