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벗어나 평화의 화합의 길 모색해야', 소설 '임꺽정'으로 본 이데올로기 수난 시대
'이데올로기 벗어나 평화의 화합의 길 모색해야', 소설 '임꺽정'으로 본 이데올로기 수난 시대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9.1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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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은 조선 시대 도적떼를 이끌었던 임꺽정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 "임꺽정"은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 중 당대 조선 민중의 모습을 가장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식민 통치 이전의 언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회자되어 왔다. 신문에 연재되던 시기인 1920년대부터 1950년 이후 금서 시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동안 대중들에게 사랑받아왔다고 할 수 있다. 

'조선 민중의 모습을 가장 잘 그려냈다', '잃어버린 우리의 언어를 그대로 보여준다' 등의 평가를 받으며 사랑받아왔던 "임꺽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 앞에서 수난을 받아온 역사를 갖고 있다. 저자인 홍명희가 북에서 고위직을 지냈기에 남한에서 오랫동안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80년대 금서에서 해금된 이후에도 "임꺽정"을 향한 이데올로기적 시선은 멈추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도 홍명희와 "임꺽정"을 향한 불편한 시선들은 이어져왔다. 

임꺽정의 조선일보 연재 당시를 소개하는 김태희 편집장 [사진 = 김상훈 기자]
임꺽정의 조선일보 연재 당시를 소개하는 김태희 편집장 [사진 = 김상훈 기자]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가리켜 사계절출판사의 김태희 편집장은 "정권과 남북 관계에 큰 영향을 받는 정치적 산물"이라고 표현한다. "임꺽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권과 남북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9월 15일 제13회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에 참석한 김태희 편집장은 "우리 시대 평화와 통일의 아이콘,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이라는 주제로 연단에 올랐다. 김태희 편집장은 지금까지 홍명희문학제 학술강연에서 진행됐던 "임꺽정" 연구 자료를 취합하여, 홍명희와 "임꺽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살펴보고, "임꺽정"을 통해 무엇이 가능한지를 살펴보았다.

- '남북 평화의 길목에서 홍명희 재조명 어떨까'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는 1888년 7월 3일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금산군수 홍범식이었는데, 홍범식은 1910년 경술국치를 겪자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다. 김태희 편집장은 "아버지의 자결과 유서는 홍명희가 애국의 길로 가게하는 나침반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홍명희는 중국 남양 등지를 돌며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3.1 운동에서는 괴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가 투옥된다. 1927년에는 독립운동 단체인 신간회 창간에 함께해 부회장을 역임했다. 

"임꺽정"의 집필이 시작된 것은 1928년 조선일보 신문연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김태희 편집장은 "당시 왜 '임꺽정'을 소재로 하였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1920년 백정들이 차별에 반발해 형평운동이 일어난다. 홍명희 작가는 역사주체로서 우리의 현실을 역사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했을 것이며, 그렇기에 임꺽정을 다뤘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꺽정"은 당시 민중들로부터 상찬을 받았으며, 신간회 사건으로 인하여 홍명희가 투옥됐을 때에도 유치장 내에서의 집필을 허락받을 정도였다. 1939년 조선일보사판 의형제편과 화적편이 전 4권으로, 1948년 을유문화사판 의형제편, 화적편이 전 6권으로 출간되기도 했으며, 김태희 편집장은 "식민지 억압 하에서 민중의 자존심을 키워주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본다."며 "일제의 민족교육 말살정책에 맞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꺽정"은 1940년대 미완으로 끝나게 된다. 일제가 친일협력을 강요하기 시작하자 홍명희는 창작을 포함한 일체의 활동을 중단한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사회활동을 시작하며, 48년 평양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했다가 남으로 돌아오지 않고 북한에 남아 고위직을 역임했다. 

김태희 편집장은 "누구보다 애국자였지만 월북을 이유로 우리에게는 잊혀진 존재였다. 조선의 3 천재로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벽초 홍명희를 꼽았다고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앞에 두 사람 뿐이고, 홍명희는 진정한 애국자이자 민족주의자였지만 우리에게 잊혀진 존재였다."며 "식민지화와 남북분단으로 파행적 역사가 점철되어 홍명희 선생은 비주류로 남은 채 예외적 존재로 남아있었다. 남북이 평화와 화해로 가는 길목에서 이러한 지식인을 재조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 홍명희문학제가 '좌파 주동 책동'? 판금 조치부터 블랙리스트 피해까지

85년 사계절출판사는 기존에 나오지 않았던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을 수록한 전 9권으로 "임꺽정"을 출간하게 된다. 그러나 출간 직후 정부로부터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하게 되고 책들은 압수당한다. 사계절출판사는 문공부를 대상으로 우리나라 출판사상 처음인 '압수지형 및 책 반환 청구소송', 문공부 행정심판위원회에 '출판 금지처분 무효확인 심판' 행정심판 소송, 문공부 장관을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한 '출판금지 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 등 세 가지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문공부는 89년 홍명희를 포함한 5명을 해금하며, 홍명희의 해방 전 작품 출간이 허용되게 된다. 2005년에는 처음으로 북한과 저작권협상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남북이 직접 저작권 계약을 체결한 첫 사례이자 모범 사례로 꼽히게 된다. 

북한에서의 "임꺽정" [사진 = 김상훈 기자]
북한에서의 "임꺽정" [사진 = 김상훈 기자]

이후 홍명희와 작품 "임꺽정"은 정권에 따라 환영받기도 했지만 때로는 배척당하기도 했다. 김태희 편집장은 괴산에 위치한 홍명희 생가가 보훈단체의 반발로 인해 아버지인 '홍범식 생가'로 복원되기도 했으며, "지금은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있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지만, 2014년 북소리 축제를 기억하고 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사계절출판사는 96년 홍명희문학제를 처음으로 개최하며 지속적으로 이어왔으며, 김태희 편집장은 2014년 파주 북소리 축제의 일환으로 홍명희 문학제를 개최하려 했다. "임꺽정은 제주부터 북한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파주 또한 임꺽정 안에 묘사된다. 벽초 홍명희가 쓴 임꺽정의 취지를 살려, 전국을 돌며 좀 더 대중적인 문화제로 가꿔나가는 생각에 파주 북소리의 일환으로 참여하려 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행사를 앞두고 파주 시청으로부터 연락이 오면서다. 시청 공무원으로부터 축제를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파주 북소리 축제 관계자도 홍명희문학제의 참가를 만류했다. 심지어 파주경찰서의 정보보안과 경위가 찾아와 중단을 종용했다. 결국 그 해 홍명희문학제는 사계절출판사 사옥에서 자체 행사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홍명희문학제에 관련된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민정수석 수첩 사건 때다. 2014년 9월 30일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는 "홍명희 문학제(괴산→파주) 예산 지원 문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2014년 10월 2일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을 적어놓은 김영한 민정수석의 수첩에는 "문화예술계의 좌파 주동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 ex)다이빙벨, 파주, 김현"이라고 적혀 있었다. 

발표 중인 김태희 편집장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중인 김태희 편집장 [사진 = 김상훈 기자]

김태희 편집장은 "많은 행사들이 찾지 않는 행사인데 왜 요주의 행사가 됐는지 몰랐었고, 국정원에 찍혔나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찍힌 것이었다."며 "청와대에서 사소한 행사까지 압박했을 정도면 다른 문화계는 어땠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했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 '임꺽정'은 남북이 갈라지기 전 우리민족의 공통정서를 담고 있고, 이질화되기 전 우리민족의 언어와 풍습을 담고 있다.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이용되지 않고 본연의 텍스트로 읽혔으면 좋겠다. 남북관계가 좋은 쪽으로 감에 따라 택스트가 새롭게 해석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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