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작가 백석의 저작권자는 누구일까?' 남북 저작권 교류의 역사 살펴본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
'북한 작가 백석의 저작권자는 누구일까?' 남북 저작권 교류의 역사 살펴본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9.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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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사슴' 표지
백석 '사슴' 표지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백석 시인은 모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대 전체에서 폭넓게 사랑받는 시인 중 하나이다. 시집 복간본이 유행하던 16년에는 '초판본 사슴'이 발매 하루 만에 수천 부 이상 팔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백석 시인의 작품은 꾸준히 읽히며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백석 시인이 1987년 이전에는 한국 문학사에서 존재하지 않는 작가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광복 이후 자신의 고향인 평안북도에 자리잡은 백석 시인은 자연스럽게 북한 작가가 되었고, 분단 이후에는 백석 작가의 작품을 출판 및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87, 88년은 한국 문학에서 기념비적인 해라 할 수 있는데, 백석 시인을 포함한 100명이 넘는 문학인들의 광복 이전 작품 출판 및 판매가 해금됐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는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월북, 납북 문학인들이 한국문학에 등장했고,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백석, 임화, 이용악, 홍명희 등의 작가들의 작품이 다시 출간, 판매되기 시작한다. 월북, 납북 작가의 해금은 한국 문학장의 저변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혼란과 무질서가 도래하는데, 바로 출판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다.

발표 중인 김기헌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기획실장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중인 김기헌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기획실장 [사진 = 김상훈 기자]

지난 15일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에 발표자로 참여한 김기헌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기획실장은 "당시 이중계약, 문서위조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출판사 간의 소송전이 붙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책과 출판을 통하여 평화를 모색하고자 기획됐으며, 김기헌 기획실장이 발표를 맡은 세션 2의 주제는 "한반도의 역할과 사례"였다. "남북 교류의 제도화와 저작권 협력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를 맡은 김기헌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기획실장은 87, 88년 해금 이후 남한과 북한 사이에 저작권 교류가 어떻게 시작됐는지와 바람직한 저작권 교류를 위하여 향후 어떻게 되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 해금 이후의 혼란기 겪고, 저작권 문제 해결 필요성 인식

해금 이후 일어났던 혼란을 살펴볼 수 있는 사건 중 하나는 "갑오농민전쟁" 사건이다. 박태원의 소설 "갑오농민전쟁" 분쟁은 월북 작가 저작권 귀속 문제를 두고 처음으로 법정 시비가 붙은 사건이다. 우리에게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로 알려져 있는 박태원 작가는 해방 이후 월북을 하고, 북한에서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하게 된다. 문제는 해금됐을 시기 박태원의 유가족이 남한과 북한에 모두 생존해 있었다는 것이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89년 2월 17일 중앙일보 기사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89년 2월 17일 동아일보 기사

89년 2월 23일 박태원의 차남 박재영 씨는 도서출판 "깊은샘"과 함께 "갑오농민전쟁"을 출간한 도서출판 "공동체"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다. 당시 "깊은샘"은 박재영 씨와 판권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으며, "공동체"가 "갑오농민전쟁"을 출간하여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도서출판 "공동체" 측은 "갑오농민전쟁"이 "월북한 후인 77년 이후 저술했으므로 저작권이 제2부인 권영희 씨 측에 있다고 판단했고, 후일 권영희 씨에게 저작료를 지불할 생각이었다."고 항변했다. 이 사건의 결말은 "깊은샘"의 승리로 끝나는데, 같은 해 12월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월북 작가가 비록 북한해서 재혼했더라도 대한민국 법률은 중혼을 인정하지 않기에 북한의 아내는 법적 보호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김기헌 실장이 저작권 교류의 과거 현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김기헌 실장이 저작권 교류의 과거 현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김기헌 실장은 이러한 혼란을 억누르기 위해 남한과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 중 제9조 제5항에 "남과 북은 쌍방이 합의하여 정한데 따라 상대측의 각종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고 정하였으나, 이후 "후속 실천 조치가 부재하여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난립하는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남한 법원은 몇 가지 원칙을 설립하게 된다.

△ 헌법 제3조에 의거, 북한의 저작권도 남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 △ 월북 작가들의 지적재산권도 생존 기간은 물론, 사후에도 50년간 보호되며, 상속인에게 상속도 된다. 따라서 작가 사후에는 상속인으로부터 저작물 사용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남한에 상속인이 없을 경우, 월북 작가는 생존으로 의제되고 지적재산권은 여전히 이들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 북한 정권 수립 이후, 북한의 법에 따라 설립된 북한의 기관, 단체 등의 저작권도 남한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된다.

- 2000년 이후 저작물 이용 절차와 방법 합의 시작

2000년에 들어서며 남한과 북한은 저작권교류 질서 구축을 위하여 자체 제도 정비에 주력한다. 북한은 2001년 저작권법 제정하며 저작권이 사적 소유권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작권에 대한 국가의 관리, 통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004년 6월 설립한 저작권사무국은 저작재산권의 해외 양도 승인권, 저작물의 법적허락권, 저작권사업의 감독 통제권 등의 권한을 가진 채로 북한 국내의 저작권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게 되고 이어 2003년에는 저작권의 국제적 보호를 위하여 체결하는 협약인 '베른 협약'에 가입하게 된다.

한편 남한은 중국 등 제3국의 중개업자를 통한 북한 저작물 사용 계약을 불인정하게 되고, 출판 승인 조건에 계약 사실에 대한 북한 내각 산하 출판지도국의 확인서 제출 추가 등을 정한 후 "질서 있는 남북 저작권 교류를 위해서는 최소한 저작권 확인과 남북 저작권 교류에 대한 북측 당국의 원칙적 의사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남한 단체들을 통해 북한 당국에 지속적으로 전달한다.

체제를 점검한 북한과 남한은 2005년 남한에서 북한 저작물의 이용 절차와 방법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거치게 된다. 2005년 3월 북한 저작권 사무소는 "저작권자의 승인과 저작권사무국의 공증확인서가 없는 한 남측에서의 우리 저작권에 대한 이용은 저작권침해로 판단된다는 것"을 통지해온다. 같은 해 4월 통일부는 북한 저작권사무소의 통지를 남북 저작권 교류 업무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이후 남북 당국은 합의 이행에 필요한 업무를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 위탁하게 되고, 2005년 12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북한 저작권사무국 등과 합의하여 "북측 저작물의 사용을 원하는 남측의 사용희망자와 포괄적인 사전협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남한에서 북한 저작물 이용 절차와 과정
남한에서 북한 저작물 이용 절차와 과정

남한에서의 북한 사용물 사용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맡고 있다. 북한 저작물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려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통해 저작권사무국과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 저작료를 보내야 한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남한에서 사용된 북한 저작물의 계약 현황은 어문저작물 685건, 사진저작물 43건, 음악저작물 2건, 영상저작물 130건 등 총 860건에 달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저작물은 무엇이 사용되고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조선중앙TV다. 김기헌 실장은 "2006년 맺은 포괄합의서 외에도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수출입사와 저작권 협의를 맺고 있다."며 "최근 모 영화제에서는 북한 영화 상영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2009년에는 월북 작가 10인에 대한 저작물을 재단이 일괄 위임받기도 했다. 시인 백석, 이용악, 박세영, 소설가 송영, 이기영, 한설야, 최명익, 대중가요 작사가 조영출(필명 조명암), 동화작가 윤복진, 현덕 등 10인이다. 김기헌 실장은 "10명에 대한 위임을 받아 대리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출판계에서 가장 핫한 문학인은 백석"이라고 소개했다. 

- 이명박 정권 이후 단절... 남북 저작권 교류 합의서 체결 필요

그러나 북한의 저작물이 남한에서 원활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이후 남북 관계가 얼어붙으며 저작권사무국과의 연결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김기헌 실장은 "2005년에 합의한 내용으로는 남북 저작권 교류를 안정적으로 규율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협약 내용에는 남북한 당국 사이의 직접적인 협의 채널이 없으며, 저작권자의 권리 구제와 관련된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남북 저작권 교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남북 저작권 교류에 관한 합의서(가칭)" 체결이 필요하며, 합의서에는 직접적인 협의 채널, 저작권자의 권리 구제를 위한 남북한 공조, 효율적인 저작권 대리 및 중개 방안, 저작권 관련 문서 공증 방안, 저작권료 지급 절차와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기헌 실장은 저작권 교류를 통해 "민족 공동의 자산을 보호하고 민족 구성원의 공정한 이용을 보장함으로써 민족 문화 발전과 통일에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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