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요즘비평포럼, "폭력의 재현 그 자체는 문제 아냐"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담론 살펴
제4차 요즘비평포럼, "폭력의 재현 그 자체는 문제 아냐"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담론 살펴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9.2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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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2015년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남성중심의 문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기 시작됐다. 이러한 요구 중에는 "폭력을 재현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었다. 폭력을 재현하면서 그 재현이 폭력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지적은 반성적 태도 속에서 윤리적 감각을 이끌어냈다. 많은 작가들이 '여성혐오'적 표현을 고쳐 쓰거나 피해가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적 효과를 생략해버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일 뿐이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비학당이 함께하는 "요즘 비평 포럼"은 제4차 포럼으로 "재현의 폭력"과 "폭력의 재현"의 문제를 다루었다. "요즘 비평 포럼"은 평론가, 작가 등이 자리한 가운데 문화계에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담론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로, 정체성 정치, 페미니즘, 평론의 역할 등을 주제로 포럼을 진행한 바 있다. 20일 저녁 7시 30분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개최된 제4차 포럼 "이걸 보여줘도 된다고? - 재현의 폭력, 폭력의 재현"에는 이병국 문학평론가가 사회를 맡아, 송효정 영화평론가, 양재훈 문학평론가, 임현 소설가, 최가은 독자가 참여해 "재현의 폭력"과 "폭력의 재현"에 대해 이야기했다. 

창비 서교 빌딩에서 열린 제4차 요즘비평포럼 [사진 = 김상훈 기자]
창비 서교 빌딩에서 열린 제4차 요즘비평포럼 [사진 = 김상훈 기자]

- "'폭력의 재현'과 '재현의 폭력'의 등치 거부한다"

양재훈 평론가는 "폭력의 재현"이나 "재현의 폭력" 모두 섬세하게 사고할 필요가 있는 문제지만, 이 둘을 너무 쉽게 등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을 던진다. 폭력을 재현하는 일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는 없고, 중요한 것은 재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인데, "폭력을 재현하는 행위 일반에 대해 그것이 그 자체로 폭력이 된다는 식의 선험적 재단을 들이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양 평론가는 이 두 가지를 쉽게 등치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왜 이것을 따지는가를 묻고 싶다."고 말했다. 폭력의 재현을 빙자한 재현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것인가, 영향력 있는 작가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 그러한 폭력을 담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 양 평론가는 "그런 작품을 기억하고 있지 않고, 특정한 작품들을 거론하며 비판할 수는 있지만 폭력의 재현이 재현의 폭력으로의 전도라는 일반화된 주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현의 폭력이 될 수 있는 폭력의 재현에 대한 일반적 문제제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단계가 더 필요할 것"이며 이 단계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추구가 그에 대한 강박으로 전환되는 단계"라고 보았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 추구가 강박적으로 이뤄지고, 폭력의 재현 그 자체가 재현의 폭력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양 평론가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에서 "한쪽에는 미적 자율성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정치적 올바름이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 같은데, 둘 다 틀렸다."고 지적했다. 

"미적 자율성"은 미학이 인간의 다른 영역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원리를 따른다는 사상이다. "미적 자율성"이 강조되는 예술은 사회적인 흐름이나 맥락과는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가치를 가진다고 여겨지며, "작품은 작품만으로 미학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양재훈 평론가는 "미적인 것이 자율적일 수는 없다. 미적 가치는 현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는 중요한 것들을 드러내고 접근할 때 생기는데, 이것은 자율성의 영역이 아니라 억압된 것이 돌아오는 방식이다. 억압된 것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언제나 타율적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가치를 가진 작품은 타율성을 갖고 있지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는 '우리는 언제나 올바르다. 그러므로 정당하다'는 전재가 깔려 있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정치적 올바름에서 흔히 사용되는 "폭력의 피해자는 폭력의 장면을 볼 수 없다"라는 논리가 있는데, 이는 "피해자들은 피해자 다워야 한다. 피해자는 피해자 다울 수밖에 없다"는 전재를 함께 하고 있다. 폭력의 피해자임으로 당연히 폭력의 장면을 볼 수 없으며, 때문에 폭력의 장면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양재훈 평론가는 "피해자가 보고 불쾌할 것,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물론 피해자연합 같은 게 있어 거부하겠다는 입장표명이 있다면 존중할 일이지만,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조하게 되고, 이는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폭력의 재현을 문제 삼기 시작하면 최후에는 '폭력청정지대' 같은 게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한계를 지적하고 "모든 재현물을 만드는 사람이 섬세하게 생각하고 어떤 효과를 일으킬 것인지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폭력의 재현이 곧 재현의 폭력으로 전도될 수 있다는 말은 심각한 문제"라고 전했다. 

임현 소설가와 양재훈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임현 소설가와 양재훈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 폭력의 재현, 전부 없애자는 것 아냐... 정당화와 미화 문제 있어

독자 대표로 참여한 최가은 씨는 "나의 아저씨" 논쟁에서 일어났던 폭력의 재현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아저씨"는 지난 3월 21부터 5월 17일까지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다. 방영 전부터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의 출연 소식으로 인해 논란이 됐으며, 방영 중 드라마의 내용으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최가은 씨는 "나의 아저씨"에 제기됐던 비판을 "롤리타 콤플렉스를 미화하는 '아저씨-젊은 여성' 사이의 애정 구도"와 "여성캐릭터를 향한 폭력 씬의 묘사 방식과 수위, 정당화"로 설명했다. 이를테면 드라마 속 구타를 당한 여성이 남성에게 "너, 나 좋아하지."라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폭력 전체가 정당화되고 미화된다"는 것이다. 

최가은 씨는 '폭력의 재현'이 단순히 폭력적인 장면이 나와서 논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논란은 "장면의 폭력적인 묘사를 통해 얻는 감각적 차원의 불편과는 다른, 의식적 자원의 불쾌" 때문이며 "비판의 논의들이 단순히 '폭력적이었다'는 폭력성 자체에만 덤벼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폭력의 재현 그 자체가 논란이 된다면, "미디어나 영화에서 폭력 씬이 환영받고 재생산되는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입장이다. 

최가은 씨에 따르면 '폭력의 재현'에서 문제가 되는 건 잘못된 논리를 답습하고 있는 작품에 해당한다. 최가은 씨는 "기존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타파해야할 시선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독자의 입장에서 비판을 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이러한 비판이 마땅한 독자의 권리라고 전했다. 

- '작가의 자율성'에 대해 이야기한 임현 작가

임현 작가는 2017년 제8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고두'로 인하여 '여혐' 논란에 휩싸였다. 남성 윤리 교사가 자신이 가르쳤던 여고생과 잠자리를 가졌던 일을 회상하는 소재 때문이었다. 사회 내의 규범들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기만적인지를 폭로했다는 호평의 한쪽에는 '여혐문학'이라는 지적이 있었으며, 이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폭력의 재현과도 관련이 있다. 

발언 중인 임현 소설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발언 중인 임현 소설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이날 행사의 패널로 참여한 임현 작가는 "하나의 소설에 그토록 극단적인 의견이 나올 거라 생각지 못했다."며 "긍정적 말을 듣기도 했고 부정적 말을 듣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지점이 제 의도에서 벗어났느냐, 의도했던 것을 독자들이 못 읽어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느냐는 질문에 긍정한다면, 반대로 소설을 좋다라고 말하는 분들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이 작가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인해 비판을 받은 작가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임현 작가는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듯한 인식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없지는 않다."고 답했다. "무언가를 쓸 때 써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고민하게 만들고,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나는 것인지, 논란의 여지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등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작용하는 것이 작가의 자율성이다. 임현 작가는 "작가의 자율성이라는 것이 마치 폭력적인 장면을 마음대로 써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 같다. 그러나 작가의 자율성이란 사회적 가치 중에서 어떤 것을 반영하고, 반영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무엇을 선택하여 쓸지 말지를 정하는 것은 작가의 자율성에 따른다는 말이다. 

작가에게 '작가의 자율성'이 있다면 독자는 작가의 작품을 보는 순간 어떤 자율성이 부과된다. 독자는 본인의 체험이 곧바로 작품에 투영되는 경향이 강하고, 문학평론가들에게 요구되는 문학사적 맥락과 문학 비평적 견해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임현 작가는 "작가가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가정사를 다루더라도, 독자는 그것을 정치적 의미로 해석하는 게 당연해진다."고 설명했다.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작가의 자율성과 독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때 둘은 충돌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충돌은 작가에게 자극이나 원동력이나 자극제가 될 수는 있지만, 임현 작가는 "무언가를 멈추겠냐고 한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