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조선인은 단일 민족’ 친일파 김동인 기리는 ‘동인문학상’ 폐지 주장 제기...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세미나 열려
‘일본인과 조선인은 단일 민족’ 친일파 김동인 기리는 ‘동인문학상’ 폐지 주장 제기...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세미나 열려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10.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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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폐하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를 함께 할 한 백성" 
"일본인과 조선인은 지금은 합체된 단일 민족이다." 
"이미 자란 아이들은 할 수 없지만,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이 별개 존재라는 것을 애당초 모르게 하련다"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위는 우리에게 단편소설 '감자'의 저자이자 한국근대단편소설 양식을 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소설가 김동인이 일본제국에 복무하며 남긴 글이다. 김동인은 일제에 협력해 친일 논설, 친일 소설 등을 남겼으며, 심지어 해방을 맞이하는 날인 1945년 8월 15일 오전 조선총독부 정보과장이자 검열과장이었던 아베 다쓰이치를 만나 일제와 협력할 종군작가단을 조직할 것을 제안하는 등 파격적이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대동아전쟁이야말로 인류 역사 재전의 성전(聖戰)인 동시에 나의 심경을 가장 엄숙하게 긴장되게 하였다." 
- 김동인, '감격과 긴장', "매일신보", 1942. 1. 23

전쟁을 찬양하고 징병을 돕는 것을 "문학인의 책무"라고 표현했던 김동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기리는 문학상인 "동인문학상"은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과 더불어 한국 소설문학 3대 문학상으로 불리고 있다. 동인문학상을 비롯해 친일 행적이 있는 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으로는 미당 문학상, 팔봉 비평상 등이 있으며, 지난 수 년 간 친일문인기념문학상(이하 친일문학상)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세미나 현장 [사진 = 김상훈 기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세미나 현장 [사진 = 김상훈 기자]

16년에는 최남선과 이광수를 기념하는 문학상이 제정되려 하자 거센 반대 운동으로 인해 제정이 취소됐고, 미당 문학상을 중심으로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반대 토론회가 열렸으며, 17년에는 친일 및 항일 시 낭송, 미당문학상 폐지 집회 등을 통해 친일문학상 폐지의 목소리가 이어져왔다. 지난 10월 6일 오후 1시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는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세미나 -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이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공동으로 개최되어 동인문학상을 두고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작가회의 한창훈 사무총장은 행사에 앞서 "시민사회의식, 역사의식이 개인의 욕망보다 큰 경우, 통제를 스스로 하는 이들을 지성인이라 말한다."며 "발제자, 토론자 모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석학들이신데 이 자리를 통해 우리를 행동력 있는 지성의 세계로 이끌어주시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세미나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으며 1부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의 기조발제와 김자흔, 유순예, 송경동 시인의 항일시 낭독으로 채워졌다. 기조발제를 맡은 임헌영 소장은 김동인의 창씨개명 이름인 '히가시 후미히토'를 언급하며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 설명했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 설명하는 임헌영 소장 [사진 = 김상훈 기자]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 설명하는 임헌영 소장 [사진 = 김상훈 기자]

당시 친일 문학인들은 글을 통해 학도병, 징병을 찬양하고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작업에 함께 했다. 김동인은 이에 더해 실질적인 활동을 했는데, 바로 황군 위문단 결성 사건이다. 1939년 2월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를 찾아간 김동인은 '문단 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지방에 주둔한 '황군'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다. 김동인의 제안은 받아들여져 3월 문단 사절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선출됐고, 4월 15일부터 5월 13일까지 황군 위문 문단사절로 활동했다. 당시 문단 사절은 베이징을 거쳐 스좌장, 위츠, 타이위안, 린펀, 윈청, 안이 등 산시성 일대를 돌았는데, 이 일대는 항일투쟁의 격전지였던 타이항산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곳이었다. 임헌영 소장은 "이것은 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성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1945년 8월 15일에도 김동인의 적극적 친일은 끝나지 않았다. 항복 선언을 전해듣기 전인 8월 15일 오전 10시 김동인은 조선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베 다쓰이치를 만난다. 이는 더 효과적으로 친일활동을 할 수 있는 단체 결성을 허가 받고자 한 것이었다. 임헌영 소장은 "이런 그가 일본의 항복 선언을 들은 뒤 히가시 후미히토에서 김동인으로 되돌아왔을까? 그러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해방 후인 8월 17일 작가 단체를 구성하는 자리에서 이태준이 "일본 놈 때도 출세하고 해방됐어도 또 선두에 나서려 하다니"라며 이광수를 제명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하자 김동인은 "만약 이광수를 뽑아내는 문사단체일 것 같으면 나도 참가할 수 없는 바"라며 퇴장했다. 임헌영 소장은 "김동인은 8.15 이후에도 친일행각에 대한 변명과 직간접적인 친일파 옹호 활동을 이어갔다"고 전했다. 

2부에서는 평론가들의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이명원, 오창은, 최강민 평론가와 동인문학상 후보를 거부한 전적이 있는 공선옥 작가가 발표자로 참여했으며, 종합토론에는 고명철, 이성혁, 서영인 평론가가 참여했다. 

- 동인문학상이 주요 문학상이 된 이유? 사상계로 인한 '착시효과'와 힘 관계 비대칭성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김동인의 대일협력과 동인문학상 문제"라는 발표를 통해 김동인의 친일 행적과 친일 논설을 요약 설명하고 동인문학상이 왜 한국문학상의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이명원 평론가는 동인문학상이 한국문학의 주요한 문학상으로 자리잡은데는 시행주체와 심사주체의 문제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고 보았다.  

발표 중인 이명원 문학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중인 이명원 문학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동인문학상은 1955년 "사상계"를 통해 제정됐는데, 당시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9명 중 김팔봉, 백철, 최정희, 이무영, 정비석, 이헌구 등이 친일문학인이었다. 이명원 평론가는 "심사주체가 대일협력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상황이 역사에 대한 '상기'가 아니라 폐허에서의 '재건'을 유독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시행주체의 문제도 있는데, 동인문학상의 원래 제정, 시행 주체는 월간 "사상계"였다. "사상계"는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 시기 반독재 투쟁을 전개했는데, 이것이 일종의 착시효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명원 평론가는 "조선일보사가 동인문학상을 인수한 이후로는 거대언론과 문인들의 힘 관계의 비대칭성이 이 친일문인 문학상에 대한 용인을 가능케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문학인들의 문학사에 대한 무지와 인정욕망도 이 제도를 유지하게 만든 원인으로 꼽혔다. 이명원 평론가는 "'나도 이광수나 김동인이 친일문학을 한 것을 알고 있다'고 발언하는 문인들의 대다수, 특히 젊은 문인들로 가면 갈수록 김동인의 친일소설도, 그의 친일논설도 읽어본 바가 없거나 구체적으로 음미해 본 바도 없을 확률이 높다."며 "그러면서도 문학상 제도의 마술적 효과는 작가들 입장에서 문학이라는 소명적 작업에 대한 상징적, 물질적 보상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친일문인 문학상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을 불가능케 하는 반지성주의를 구조화하게 만든 것이다."고 전했다. 

- '동인문학상 제정은 한국문학사의 비극'

오창은 평론가는 먼저 한국 문학사를 다시 쓰는 것이 중요한 임무로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김동인의 문학사적 위치에 대해 설명한 오창은 평론가는 "김동인은 이광수와 변별되는 위치에 자신의 문학적 관점을 놓았고, 염상섭과도 논쟁을 벌이며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며 근대초기 문학의 중요한 성과로 기록될 만 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근대 초기의 김동인의 문학만이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온당한 것일 수는 없다."며 김동인은 '한국 문학 순화 발전'의 전범으로 삼기에는 너무도 과오가 많은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발표 중인 오창은 문학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중인 오창은 문학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김동인이 여전히 근대문학의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문학사가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창은 평론가는 "문학사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술되고 쓰여져야 하는 작업이지만, 일제 말기 문학에 대한 연구는 강하게 제기되지 못했다. 연구가 축약되어 있고 제대로 기술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으며 문학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제 후기의 행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김동인은 일종의 신화로 남았으며, 김동인 사후 동인문학상의 제정에는 친일 문학인들의 보이지 않은 연결이 작동했다. 당시 심사위원 중 김팔봉, 백철, 최정희, 이무영, 정비석, 이헌구는 친일 문학인들이었는데, 이중 김팔봉, 이무영, 이헌구 사후 각각 '팔봉 비평문학상', '이무영 문학상', '소천 비평문학상'이 제정된다. 오창은 평론가는 "동인문학상이 제정되면서 각각 장르를 점유하는 형태로 친일 경력 문인 문학상이 끊임없이 재현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한국문학사의 비극"이며 "친일 경력 문인들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유산은 문학상이라는 상징체계를 통해 현실에 들러붙어 있다."고 보았다. 

-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 '이제 그만 할 때'

최강민 평론가는 조선일보가 동인문학상을 부활시킨 이유를 크게 시대적 환경 조성, 지역주의를 매개로 한 동지적 연대, 영향력 증대, 우호적 유명 문인 확보, 방응모의 친일 경력 세탁 등으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특히 방응모의 친일 경력 세탁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중간 창업자라 할 수 있는 방응모는 중일전쟁 이후 친일단체 참여, 일제 군국주의 찬양, 친일 논설 쓰기 등 반민족적 친일행위를 했다. 방응모는 해방 이후 반공주의자로 변신했고, 한국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응모의 행적은 바로 김동인의 삶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며 "조선일보가 동인문학상을 통해 김동인을 우상화, 정전화 하면서 조선일보의 방응모를 우상화, 정전화 하는 대리체험과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추론했다. 

발표 중인 최강민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중인 최강민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이어 최강민 평론가는 조선일보에게 동인문학상을 이 이상 지속하는 것은 어떠한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동인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미 상당수의 국민이 김동인을 알고 있으며, 지역주의라는 공통점 때문이라면 구시대적 발상이 되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더라도 조선일보의 사회적 영향력이 흔들릴 가능성은 없어졌으며 오히려 유지함으로써 생기는 논란이 명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리라 보았다. 최강민 평론가는 "조선일보가 정말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 문학상을 만든 것이라면 친일문인인 김동인을 기념하는 동인문학상이 아니라, 차라리 조선일보 문학상을 만드는 것이 낫다."며 동인문학상 유지의 필요성이 없음을 강조했다. 

2001년 동인문학상 후보 추천을 거부했던 공선옥 소설가는 문학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이 자리에서 처음 알았다.”며 “조선일보의 행태 때문에 거부했지만, 이 자리에서 발표문을 보고 거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한편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김화영·김인환·오정희·정과리·구효서)는 지난 9월 2018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로 최시한, 정한아, 김숨, 이기호, 김종광 등 다섯 편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심사를 통해 2018 동인문학상 최종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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