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소설가 단편 "빛의 호위"에 영향을 준 소설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와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
조해진 소설가 단편 "빛의 호위"에 영향을 준 소설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와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10.1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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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나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다. 학살을 피하기 위해 많은 유대인은 비교적 온건한 국가나 산골로 몸을 숨겼으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독일 치하 여러 나라의 수용소로 끌려갔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나치 수용소에서는 무려 6백만 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총살을 당하는 이들도 있었고, 가스실에 갇혀 목줄기를 부여잡다 손을 떨구는 이들도 있었다. 가축을 죽이듯 잔인한 대학살은 이후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은 학살을 작품으로 다뤄냈다. 

조해진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조해진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지난 10일 의정부과학도서관에서는 의정부시도서관이 주최한 “가을밤의 북토크”가 진행됐다. 본 행사는 10월 한 달 동안 매주 수요일 작가와 편집인, 서평가 등 다양한 저자에게 책을 추천받고, 그들이 받은 영향을 들어보는 자리이다. 행사의 첫 초대 작가는 조해진 소설가였다. 

이날 조해진 소설가는 자신이 소설 “빛의 호위”를 쓴 데에는 두 권의 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프리모 레비가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증언한 “이것이 인간인가”와, 서경식이 프리모 레비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추방당한 이들과 그들의 예술사를 다룬 “디아스포라 기행”이다. 조해진 소설가는 “저는 40년대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한국에 사는 작가이지만, 이런 이야기(홀로코스트)를 소설로 담을 수 있었던 데에는 두 책의 영향과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조해진의 소설 ‘빛의 호위’는 유대인 등록령이 내린 후 벨기에 오케스트라에서 해고된 알마 마이어와, ‘권은’이라는 한국의 종군 사진작가 이야기를 교차시켜 보여준 작품이다. 알마는 호르니스트 장으로부터 은신처를 제공 받고, 이후에는 도주로까지 마련 받아 먼 곳에서 장의 아들 노먼을 낳게 된다. 성장한 노먼은 아버지의 ‘타인을 살리는 행위’를 재현하고자 구호트럭을 타고 팔레스타인 분쟁지역으로 향하나, 폭탄 테러로 사망하게 된다. 종군 사진작가인 권은은 노먼의 생애와 알마의 인터뷰를 다룬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권은에게는 죽음을 생각하던 빈곤한 어린 시절, 팔아서 생활에 보태라는 의미로 화자가 건네준 카메라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조해진 소설가는 이 소설에서 전혀 다른 두 개의 국가적 폭력과, 그 안에서 타인을 살리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냈다. 

- 인간의 상처는 영원한 것인가?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조해진 소설가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는 “증언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고 이야기했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인가"는 이탈리아에서 친구들과 레지스탕스를 결성했던 프리모 레비가,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혀 아우슈비츠 기차에 타면서부터의 일을 다루고 있다. 가스실에 끌려가는 여성과 아이들, 하루 십여 시간의 노동을 하여 발이 괴사한 남성들, 빵 한 조각 먹기 위해 최선을 다한 수용자들의 모습이다. 

조해진 소설가는 프리모 레비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 것은 약 8년 전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다녀온 직후라고 말했다. 조 소설가는 이 작품을 읽고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안전한 국적, 집, 가족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내 안에도 다른 누군가에 대한 차별이나 선입견 혹은 어떤 방어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내가 당연히 보호 받는다.’는 생각은 허상이며, 그렇게 맹신하는 순간 마음 속에는 타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함을 알게 됐다는 것. 조 소설가는 이 책을 통해 “어떤 모든 것도 영원하지 않고, 나 역시 안온하지 않은 이방인”임을 느꼈다고 전했다. 

또한 레비의 삶이 죽음으로 끝난 것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며 “가령 살아남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수용소에서 새겨진 상처가 수많은 작품 활동을 통해서도 치유될 수 없는 것이었는지, 인간에게 상처는 영원한 것인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 추방된 이들의 삶,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디아스포라 기행”은 재일 조선인 서경식이 런던, 잘츠부르크, 카셀, 브뤼셀, 런던, 파리, 한국 광주 등을 여행하며 디아스포라적 삶과 예술에 대해 쓴 책이다. 저자인 서경식은 1970년대 재일 한국인 유학생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약 20년간 옥살이를 한 서승, 서준식의 동생이기도 하다. 조해진 소설가는 “서경식은 자신이 언어를 배우고 살아간 일본에서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았고, 한국에 간 형들은 재일 조선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다.”며 서경식에게는 명확한 국가 정체성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때문에양국 모두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추방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조 소설가는 “서경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닌 환경에 의해 강제적으로 자신의 근거지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보았다.”며 이 책에서는 “자신의 근거지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장소의 작품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맥락을 통해 인간으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의 내용 중 조해진 소설가는 4장 ‘추방당하는 자들’에 등장하는 장 아메리의 이야기로부터 특히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장 아메리의 본명인 한스 마이어에서 알마 마이어의 이름을 따오기도 했다는 것. 

장 아메리는 프리모 레비와 마찬가지로 아우슈비츠 생존자 출신의 작가이나, 아우슈비츠에 대한 이야기는 6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조해진 소설가는 “이는 아메리에게 아우슈비츠를 떠올리고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아우슈비츠는 누굴 도와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예컨대 내 손에 쥔 빵을 옆 사람에게 주면 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먹어야 하기 때문에 주지 않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예민한 감각을 가진 장 아메리로서는 이런 기억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1978년 장 아메리가 자살한 바탕에는 예민함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조해진 소설가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조해진 소설가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조해진 소설가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가 둘 다 자살했다는 사실은 자신에게 지금까지 큰 의문을 남기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적인 비극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상처, 예민함에 대해 소상히 고민해볼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조 소설가는 그런 의미에서 두 책은 자신에게 소설을 쓰게 한 원동력이자,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계기라 말했다. 

끝으로 조 소설가는 “좋은 책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며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작가였지만, 이 책을 읽은 후 더욱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넓게, 멀리 보려 애쓰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두 책이 “여러분에게도 그런 책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