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신필 김용, 강호를 떠나다! - 진산 소설가
[기획] 신필 김용, 강호를 떠나다! - 진산 소설가
  • 진산 소설가
  • 승인 2018.11.0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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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지난 10월 30일 세상을 떠난 무협 소설가 김용을 추모하고자, 무협 소설 풍으로 작성된 부고입니다. 진산(필명) 작가가 작성하였습니다."

[뉴스페이퍼 = 진산 소설가] 공전절후, 태산북두,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에게 바쳐진 찬사와 칭호가 수없이 많지만 단 하나의 별호를 고르라면 ‘신필’ 외의 말은 필요치 않으리라.    

1924년 태어나 1955년 20대의 나이로 강호 출두, 그로부터 1972년까지 열다섯 작품을 발표한 뒤, 강호를 평정하는데 더 이상의 초식은 필요 없다는 듯 1972년 절필했다.  

비설련천사백록(飛雪連天射白鹿) 소서신협의벽원(笑書神俠倚碧鴛)라는 열네 자의 대련은 그의 작품 제목 첫 글자를 모아 지은 것으로, 여기에 월녀검을 더하면 모두 열다섯. 신필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이토록 짧은 문구로 압축된다.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나, 홍콩의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김용의 작품은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무협소설의 붐을 일으켰다.  

그 시절 독자들에게는 무협이 곧 김용이었고, 김용이 곧 무협이었다. 누구나 첫 번째 김용의 추억이 있고, 최고의 김용이 있었다. 처음 김용의 소설을 읽으며 밤을 새본 추억, 김용의 소설 속 주인공들 중 누가, 혹은 어떤 무공이 가장 강한가로 열띤 토론을 벌이던 그리운 시절, 우리는 모두 김용의 강호 속 갑남을녀였고, 강남칠괴였다.  

사조영웅전의 황용은 발랄하고 지혜로운 여주인공의 대명사였으며, 신조협려에서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은 수많은 이들의 속을 태웠다. 금나라 시인 원호문의 안구사에서 따온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하느뇨’ (問世間 情爲何物 直敎生死相許)라는 시구는 비운의 여인 이막수의 입에서 읊어지며 되살아났다.  

가상의 인물과 세계를 그려낸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을 덮어씌우며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냈으니 가히 신필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신필은 천의무봉의 성역에 안주하지 않았다. 1972년 이후 절필한 뒤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을 고르고 다듬었다. 독자들은 이미 완벽한 작품에 왜 손을 대느냐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생전에 무협소설가보다는 역사소설가로, 혹은 언론인으로 불리기를 바랐다던 김용이지만, 부단히 자신의 이야기를 다듬는 모습은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아마도 그는 독자들과 달리 자신이 말 그대로의 ‘신필’이 아니라고, 때문에 완전하지 않다고, 아직도 더 고칠 곳이 있다고 끝없이 스스로를 다그쳤던 것이 아닐까. 

사조영웅전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곽정은 칭기즈 칸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다만 한 가지만 여쭤보고 싶습니다. 사람이 죽어 묻히려면 땅이 얼마나 필요할지요?” 
테무친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채찍을 들어 허공에 원을 그려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대칸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많은 피를 흘리고 이 넓은 땅을 차지하셨지만,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테무친은 할 말을 잃었다. 
“자고로 영웅이란 그 행동이 당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후세의 귀감이 되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을 위해 공을 세운 분들이지요.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낀 분들입니다.”
이제 신필은 하늘로 돌아가고 땅에 묻혔다. 절필 이후 부질없을 줄 알면서도 그의 신작을 기대해왔던 소망도 함께 돌아가고 묻힐 것이다.  

그러나 당대의 찬사를 받고 후세의 귀감이 된 그의 이름과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필명 진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