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 ‘잘못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원식 평론가, 김수영 50주기 기념 학술대회에서 오독의 문제 지적해
김수영의 시, ‘잘못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원식 평론가, 김수영 50주기 기념 학술대회에서 오독의 문제 지적해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11.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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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김수영 시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50주년이 되었다. 김수영의 50주기를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일에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김수영 50주기 기념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행사는 김수영의 시와 시 정신을 이야기하는 자리로, 한국작가회의와 김수영50주기기념사업회가 주최 및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진 = 육준수 기자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행사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방문했으며,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과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가 인사말을 전했다. 최원식 김수영50주기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인하대 교수)은 오전 총론 발제를 맡았으며, 오후에는 유중하, 박수연, 김응교, 이영준, 유성호, 오연경 교수 및 평론가의 발제와 토론이 진행됐다.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사진 = 육준수 기자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사진 = 육준수 기자

이경자 이사장은 “우리는 김수영의 시 정신, 시혼이 남긴 의미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분의 시를 알든 모르든 대한민국에는 그분의 혼과 정신이 흐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올해 행사는 “3년 후 김수영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을 위해, 김수영 재단 출범의 초석을 까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경 여사. 사진 = 육준수 기자
김현경 여사. 사진 = 육준수 기자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에 거대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김수영이 날이 갈수록 위대해지는 것은 모두 여러분 덕이라 생각한다. 김수영의 시 정신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 전했다. 

- 김수영의 시, 혹시 잘못 읽고 있진 않은가? 오독의 가능성 제시한 최원식 교수 

총론을 맡은 최원식 교수는 “김수영학을 위한 시론 : 병풍, 누이, 그리고 풀”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진행했다. 이는 ‘김수영론’이 50주기를 맞아 이제는 ‘김수영학’이라 불려야 한다는 의도이다. 최 교수는 김수영론이 김수영학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잘못 읽히고 있는 세 개의 문제작을 짚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 ‘병풍’과 ‘누이야 장하고나’, ‘풀’이다.

병풍(屛風)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醉)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無關心)하다  
주검에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虛僞)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主人)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을 비추어 주는 것이었다 

-「병풍」 전문

이 시는 집에서 장례 치르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으로 1956년에 쓰였다. 최원식 교수는 시에 표기된 한문 ‘六七翁海士’는 대개 ‘육칠옹해사’로 번역하지만, 이 경우 뜻이 모호하기 때문에 ‘육십칠옹해사’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5행의 ‘주검에’는 민음사 “거대한 뿌리”에서 ‘주검의’로 바뀌어 출간된 일이 있으나, 김수영은 ‘의’와 ‘에’를 구별할 줄 아는 서울 토박이기 때문에 “라임을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검에’라고 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황규관의 저서 “리얼리스트 김수영”에서 이 시의 ‘해사’가 하이데거라 하는 모 교수의 주장을 본 적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시의 마지막 행에서 해사는 ‘병풍의 주인’이라고 명시되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해사는 장동 김씨 벌열의 후예이자 고위직을 두루 역임한 데다, 서화가로도 유명한 ‘해사 김성근’(1835~1919)일 것이라 말했다. 김수영의 누이동생 김수명씨는 이 병풍이 집안에 내려오는 가전이라 말한 바 있기 때문에, 해사 김성근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최원식 김수영50주기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 사진 = 육준수 기자
최원식 김수영50주기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 사진 = 육준수 기자

최원식 교수는 “이 시의 주제에 대해 김수영 선생이 ‘죽음을 노래한 시’라고 스스로 말한 바 있다.”며 “그 바람에 평론가와 연구자들이 ‘의도의 오류’에 걸려들었다.”고 말했다. 이 시는 죽음이 아닌 ‘병풍’을 노래하며, ‘죽음’은 극복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최원식 교수는 김수영 시 정신의 핵심은 “압도적인 대상을 풍자함으로서 공포로부터 해탈하는 자세”라며,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부터 촉발된 죽음의 내상을, 예에서 어긋난 화려한 그림병풍을 통해 치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실을 알아야 “김수영이 스스로 시 ‘병풍’을 현대시의 출발이라 한 것”을 납득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누이야 
풍자(諷刺)가 아니면 해탈(解脫)이다 
너는 이 말의 뜻을 아느냐 
너의 방에 걸어놓은 오빠의 사진(寫眞) 
나에게는「​동생의 사진」을 보고도 
 나는 몇번이고 그의 진혼가(鎭魂歌)를 피해왔다 
그전에 돌아간 아버지의 진혼가가 우스꽝스러웠던 것을 생각하고 
그래서 나는 그 사진을 10년만에 곰곰이 정시(正視)하면서 
이내 거북해서 너의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10년이란 한 사람이 준 상처(傷處)를 다스리기에는 너무나 짧은 세월(歲月)이다 

- 「누이야 장하고나」 부분

김지하는 70년대에 평론 “풍자냐 자살이냐”에서 김수영의 시 ‘누이야 장하고나’를 다룬 바 있다. 최원식 교수는 당시 김지하는 “김수영 문학의 풍자에는 시인의 비애는 바닥에 깔려 있으되, 민중적 비애가 없다.”고 비판하며, 김수영을 역사로 봉인하고 민중문학의 시대를 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그 선언이 유효한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 시에는 누이의 방에 들어갔다가, 남동생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당황한 화자가 등장한다. 최원식 교수는 화자는 김수영 시인으로 치환할 수 있다며, 그가 당황한 이유는 김현경 여사의 저서 “김수영의 연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책에서 김현경 여사는 “수영의 형제 중 넷째 김수경은 집안의 기대주”였으며 “한국전쟁 때 의용군에 자원입대”를 했다가 실종됐다고 밝히고 있다. 누이의 벽에 걸린 사진은 바로 김수경이다. 

최원식 교수는 “김수영의 콤플렉스가 바로 김수경”이라고 말했다. 김수영 시인은 “줏대가 없어서 해방 후 우경과 좌경을 모두 했으며 비자발적으로 의용군에 입대”했다가 탈출하지만, 동생은 가차 없이 의용군에 입대하여 역사 속으로 산화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집안 전체가 잊으려 했던 의용군 동생을 누이동생이 사진을 걸어놓고 추억하고 있다.”며 그 사진의 충격에 김수영의 “풍자와 해탈 전략”이 깨져버린다고 말했다. 때문에 시의 1, 2연은 동생에게 “누이야/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라고 훈계조로 시작하지만, 3연은 “누이야/나는 분명히 그의 앞에 절을 했노라”는 구절로, 4연에 이르러서는 “「누이야 장하고나!」”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는 김수영의 시가 풍자와 해탈의 전략을 부정하던 전통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임홍배의 “역사의 온갖 부침을 고스란히 감당하며 개개인이 살아가는 지루하고도 고된 나날의 삶은 ‘풍자가 아니면 해탈’의 양자택일로 간단히 처리될 서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라는 발언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내적 망명의 불가능함을 당돌하고 시원하게 노래함으로써 현실로의 귀환이 머지않았음을 이야기하는 이 시”를 “자기풍자를 하다 자살에 이르고 말 소시민문학의 운명으로 읽은 김지하”는 오독을 한 것이라 주장했다. 

최원식 김수영50주기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 사진 = 육준수 기자
최원식 김수영50주기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 사진 = 육준수 기자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 부분

김수영의 ‘풀’은 대표작이라 할 만치 유명한 작품이다. 최원식 교수는 김수영문학관에 방문했을 때 둘째 아들에게 준 친필노트에서 “동양사람은 한문을 배워서 고대의 훌륭한 서적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구절을 발견했다며, 김수영의 모더니스트적 표면 때문에 동양적 성격이 억압됐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 ‘풀’은 다시 한 번 봐야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 시에서 ‘바람’과 ‘풀’은 외세의 억압과 민중으로 읽히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대단히 잘못된 해석이라고 말했다. 논어와 맹자에 따르면 바람은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사는 대동세상을 꿈꾸고 실천하는 군자의 개념이기 때문에, 바람이 부는 것은 억압이 아니며 풀과 대립되는 상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원식 교수는 이 시를 “섬기는 권력으로서 대동세상을 향해 불어오는 선비집단과 그런 바람이면 호응해줄게 하는 민중의 대치 상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더해 “바람 덕에 울 수 있었고, 웃을 수도 있는 것”이라며 이를 동양적 유토피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런 측면에서 시를 읽는다면 ‘풀이 눕는다’는 구절의 반복 역시 밟혀서가 누운 것이 아닌, 충전된 상태의 생명력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영 50주기 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김수영 50주기 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학술대회에는 많은 작가와 평론가 및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최원식 교수의 총론 뒤에는 다른 연구자들의 발제가 이어졌으며, 다음날인 3일에는 연세대학교로 장소를 옮겨 두 번째 학술대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