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 ‘이제는 미학적 설득을 해야 할 때’. 장강명 소설가, 한국SF컨벤션에서 SF공동체의 역할 강조해
한국 SF, ‘이제는 미학적 설득을 해야 할 때’. 장강명 소설가, 한국SF컨벤션에서 SF공동체의 역할 강조해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11.0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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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이 강한 한국 SF 공동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에서 2000년대 이후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문학장이라고 부르는 공간에서 주연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내는 참가자는 된다고 봅니다.” - “한국 SF 컨벤션”에서 장강명 소설가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난 4일 서울시립과학관에서는 한국 SF 역사상 특별한 행사가 개최됐다. SF&판타지도서관과 한국SF협회가 주최, 서울시립과학관과 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한 “다함께 SF! 한국SF컨벤션 2018”이다. 한국SF컨벤션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가 설립되고 한국SF협회가 발족하며 SF 관련 행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SF를 지향하는 공동체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정례 행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기념비적인 행사이다. 

이날 장강명 소설가는 “SF 공동체의 성장과 확장을 위해”에 대한 기조강연을 통해, 한국 SF의 규모가 확대된 현 시점에서 SF 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미학적 설득력’이라고 이야기했다.

장강명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장강명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장강명 소설가는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우리의 소원은 전쟁”과 “댓글부대”, “당선, 합격, 계급” 등이 있으며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 문학동네작가상 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SF 저서로는 “클론 프로젝트”와 “호모도미난스”, “아스타틴”가 있으며, 최근에는 SF단편 ‘노라’를 미니북으로 출간했다. 

장강명 소설가는 지금까지의 한국 SF는 척박한 불모지였으며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다 보니 한국 SF 팬덤은 자의식과 결속력이 강한 집단이 되었으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다소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장 소설가는 “이제는 우리가 그런 자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어디로 가야할까를 고민할 때”라고 주장했다. 

과거 SF 행사의 서문이나 인사말 등을 보면 ‘SF가 미래를 예측하고 과학적 상상력을 북돋아준다’, ‘SF는 산업적 가능성이 뛰어나다’, ‘SF를 읽은 아이는 성장하여 스티브 잡스나 아이작 아시모프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 ‘SF야말로 현실을 비판하는 데에 적합한 장르다’라는 말을 볼 수 있다고 장강명 소설가는 이야기했다. 

위 장점들은 모두 SF가 가진 장점에 해당한다. 하지만 장강명 소설가는 실제 SF를 읽고 쓰는 사람이 전부 저런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오히려 SF라는 장르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감동과 기쁨 때문에 SF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 소설가는 “특정한 장점 하나만으로 장르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는 오히려 “장르에 족쇄를 채우는 격”이라 주장했다. 

장강명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장강명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그렇다면 SF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장강명 소설가는 어떤 취향 공동체의 쓸모가 입증이 되고, 인정투쟁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미학적 설득”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SF가 현재 이 단계에 속한다고 말했다. “와인 애호가나 클래식 애호가가 자신의 취향을 넓히는 방법은 와인 마시면 심장병에 좋아져요, 클래식 들으면 아이의 아이큐가 높아져요 하는 식이 아닙니다.” 장강명 소설가는 자신의 장르를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 장르에 깊이가 있고 미학이 있고, 여기에 들어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즐거워지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매혹적으로 바깥에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런 세계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취향공동체의 즐거움이라며 “SF 공동체도 그렇게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국의 SF에 이런 역사와 깊이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있지만, 우리가 한 차원 더 깊은 수준에서 체계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미학적 설득력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강명 소설가는 미학적 설득력의 체계화를 강조하며, 이는 작가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장 소설가에 따르면 SF가 주는 독특한 감정 중 하나는 바로 ‘경외감’이다. 그러나 그 경외감이 어느 때에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뚜렷이 말하려면 연구가 필요하다. 때문에 장 소설가는 “책을 읽고 느낀 경외감을 토론하는 공간, 작업이 쌓여야 한다. 그러면 국내 창작자들이 길잡이 삼아 새로운 도전을 펼쳐갈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예컨대 이서영 작가의 “꼬리에는 뼈가 있어”와 박문영 작가의 “사마귀의 나라”, 서진 작가의 “아토믹스”는 하나의 결로 묶어 설명할 수 있다. 장강명 소설가는 “이 세 개는 전 세계적인 아포칼립스가 아닌, 한국 사이즈 정도에서의 원전사고를 다루며 한국의 원자력과 혐오의 문제를 비판”한다며, 미국의 SF 작가들은 쓰지 않을 한국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장 소설가는 이처럼 우리의 미학 체계가 만들어지면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와 비판의 메시지 등에 대한 체계”를 쌓아갈 수 있을 거라 전했다.

장강명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장강명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끝으로 장강명 소설가는 “제가 드린 말씀은 외부인에게 그럴싸하기 위해 포장하는 전시성 작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이 작업이 저희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며 “한국 SF가 번창한다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고,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발제 이후에는 행사에 참여한 청중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의응답을 통해 장강명 소설가는 자신이 SF에 빠지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청중들이 구상 중인 작품에 대해 조언을 건네는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