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소설]제 10장 미숙 - 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추천 소설]제 10장 미숙 - 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 장희태 소설가
  • 승인 2018.11.1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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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

 

저는 그렇게 아버지가 남긴 모든 것을 물려받았습니다. 그토록 증오했던, 큰아버지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일조차 말입니다. 빚을 갚아야한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습니다. 월세만 전전하던 제가 방 세 개짜리 아파트가 생기고, 통장에 오억이 있으니 투명하고 견고한 갑옷을 입은 듯 했죠. 유일한 영수증이었던 아버지의 유서엔 연락처조차 없었습니다. 게다가 빚을 진 장본인인 큰아버지를 찾으면 갚지 않아도 될지 모르니까요. 네, 반쯤은 그래서 큰아버지를 찾으러 나선 겁니다. 모든 일을 그만두고 말이에요. 미숙이요? 미숙은 일 때문에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보험사를 나와 미숙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가 예약한 호텔에서 우리는 저물어가는 한강을 내려다보며 습관처럼 엉킨다. 미숙은 언제나처럼 허리를 숙인 채, 베란다 창문에 양손바닥을 기대고 내 마른 몸을 받아낸다. 해질녘에 반쯤 거울처럼 변해버린 거대한 창유리를 통해, 풍경과 거기 떠 있는 나를 동시에 바라본다. 미숙은 행위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나와 눈을 마주친다. 막상 베란다 바깥으로 나가자고 손을 잡아끌어도 번번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립고 황홀한 표정으로 물줄기가 흐르는 도시를, 견고한 유리창 안쪽에서 끝내 바라만 본다. 나는 미숙의 시선을 따라간다. 반투명한 남녀의 알몸 너머 강의 하류에서, 부리 긴 새들이 갯벌을 쪼아대고 있다. 겨울나기를 위해 풍성하게 돋아난 가슴깃털에 머리를 파묻고, 한쪽 다리로 잠드는 새들을 바라보며 나는 사정한다. 

“무슨 일 있어? 몸이 굳어있어”
미숙은 언제나처럼 입으로 정성스레 씌운 콘돔을, 말끔한 손톱으로 돌돌 말아 매듭짓는다. 
“잠을 거의 못 잤거든”
크리스털 와인잔을 쥐거나 두 딸의 머리를 묶어주거나 60평이 넘는 커다란 집을 혼자 청소하거나 남편의 두터운 몸을 어루만졌던 손이, 정액이 새지 않게 콘돔을 묶는 것을 연기 너머로 바라본다. 졸던 새떼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겨울밤하늘로 날아오른다. 미숙은 입을 가린 채 소리 없이 감탄한다.
 
우리는 침대에 겹쳐 눕는다. 천장을 보며 길게 담배를 피우고, 룸서비스로 수제 화덕 피자를 배달해 먹는다. 때론 미숙이 사들고 온 간단한 재료로, 큰 볼 가득 스크램블 에그 따위를 만들어 마주보고 퍼먹기도 한다. 
“애들이 갈수록 아빠를 닮아가, 가끔은 무서워”
미숙이 입을 오물거릴 때마다 장밋빛의 검붉은 입술이 주름진다. 작년 가을 생일 선물로 준 입생로랑 로즈파리다. 언젠가 미숙이 보여준 사진 속에서 그녀는 그 립스틱을 바른 채 남편과 웃고 있었고, 나는 그 뒤로 미숙의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세 조각 째를 집어든 미숙의 입술주름 사이에 립스틱 각질이 끼어 있다. 나는 차가운 콜라를 머금어 미숙의 입으로 흘려보낸다. 건조했던 입술이 탄산 튀는 소리를 내며 촉촉해지는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갑자기 그러지 말라니까”
콜라가 얹혔는지 그녀가 가볍게 기침한다. 미숙은 탄산을 잘 마시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다며, 불과 일 년 만에 부쩍 맥주보다 와인을 찾는다. 
“미안”
나는 가파르게 솟았다 가라앉는 그녀의 등을 찬찬히 쓸어내린다. 마포대교 끝자락에서부터 밀려온 노을이 시민공원과 여의나루를 지나 37층짜리 호텔의 절반가량을 물들이고 있다. 가로수보다 촘촘하게 심어진 수천개의 가로등과, 퇴근길 정박해있는 차들이 뿜어내는 휘황한 불빛에 나는 눈을 감는다. 풍경의 아름다움 그 자체보다, 자신이 아는 예쁜 것을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미숙의 마음이 눈부시다. 
 
미숙은 올해 마흔이 됐다. 등록금이 비싼 사립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있고, 그녀들의 잦은 학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남편에게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고, 매끼 다른 반찬을 내어놓는다. 한 달에 두 번 네일샵이 딸린 미용실에 가고, 일주일에 세 번 폴댄스와 필라테스를 한다. 아랫배에 한 움큼 군살이 있지만 거들을 입어 옷태는 늘 매끈하다. 집안의 모든 경조사를 도맡아 하고, 계절마다 남편과 와인 동호회에 나간다. 손질이 잘 된 손톱으로 와인을 따라 몇 번에 걸쳐 맵시 있게 나누어 마신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한강이 보이는 호텔에서 나와 식물처럼 조용한 섹스를 한다. 그 모든 것이 미숙이었고 그 어느 것 하나만이 미숙은 아니었다. 
 
 
미숙을 처음 본 건 작년 초봄이었다. 시아버지의 5일장을 모두 마치고 우울해하는 그녀를 동창들이 끌고 왔다. 그녀는 손목이 붙들린 채 가게 문을 열었고, 파트너를 바꿔가며 노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를 끝까지 곁에 두었다. 미숙이라는 흔한 이름처럼 별 인상이 없었다. 두 번째 찾아와 날 지목했을 때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녀는 그만큼 눈에 띄지 않는 타입이었다. 남자를 미워하거나 열렬하게 구애하지 않았고, 심한 일을 시키거나 과도한 스킨십도 없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말과는 달리 나는 그녀를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그녀는 아마 장례식장과 남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미숙은 순순히 내가 요구한 까뮤 xo 코냑을 시켜 홀짝거렸고, 난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모든 말들과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에 귀를 기울였다. 작은 한숨, 완성되지 못한 채 도중에 끝맺음되는 단어들. 사람을 이해하는 건 내게 가장 쉬운 일이었고, 코냑 한 병을 다 비웠을 때, 난 그녀가 누구보다 열렬히 날 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건 나나와 헤어진 이후로 처음 느낀 강렬한 감정이었고, 그 순간 나는 미숙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날 원하는 눈빛 속에서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인간이니까. 
 
 
나는 미숙의 손에 와인 잔을 쥐어주고 생수를 따른다.
“그거 기억나? ‘미숙’이라는 이름, 본명이었잖아.” 
미숙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나는 뒤에서 무너지듯 그녀를 안는다. 새떼가 지나간다던가, 피자가 식었다는 투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고백한다. 장례식에 못 가 미안해. 내가 네 부모가 되어줄게. 농담이라도 그런 말을 기대 했는데 미숙은 대꾸가 없다. 
“난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체형도 전혀 다르고, 그런데 십년 만에 삐쩍 마른 그의 몸을 보니까”
그녀는 내 머리칼 깊숙이 손을 집어넣어 천천히 쓰다듬는다.
“내 딸들도 처음엔 그랬는데 클수록 표가 나. 그것 때문에라도 독하게 산다니까. 세 명한테 무시 받으며 살 수는 없으니까.” 
미숙이 한숨을 쉰다.
“미안,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듣고 싶은 말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돌아보지 않는다. 겨울의 빠른 해가 어느새 호텔 전체를 그늘로 뒤덮는다. 그녀는 평소처럼 여섯시 정각에 떠난다. 등 뒤에서 육중한 문이 부드럽게 닫히자, 구두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침대 위에 놓인 십만원짜리 수표 세 장을 만지작거리며 장미색 잇자국이 남은 피자를 꾸역꾸역 삼킨다. 미숙은 결코 나와 먹다 남은 음식을 가져가지 않는다.

오늘 결혼했다고 고백했다면 미숙은 내게 답해주었을까. 우리 정말 동지가 됐다던가. 
일이 힘든 날 간혹 방문하는 정신과 상담사에게 미숙과의 관계를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녀를 만나서 미지근하던 내 삶을 조금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해질 무렵 그녀가 떠난 방에서 허리가 녹을 것 같은 라텍스 침대에 혼자 누워있거나, 곱고 깨끗한 돌이 깔린 전망 좋은 테라스를 걸을 때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고. 상담사는 헤어지라고 조언했다. “공허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석이 씨도 실은 그 관계가 절대로 발전되지 않을 걸 알고 있으니 말이에요.”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상담비를 결제했다. 발전되지 않는다. 맞는 말이었지만 그건 나와 미숙의 관계가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것은 오직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지, 욕심을 내는 순간 깨어진다. 내가 원하는 것은 미숙과의 만남 그 자체이고, 미숙과 헤어지는 건 그녀가 나를 원하지 않게 될 때뿐인 것이다. 뭐라 해도 그녀는 내가 가장 오랫동안 촘촘히 알아온 사람이니까. 유라는 내가 이런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지만, 미숙에게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다. 난 몰래 술을 버리듯 처방받은 항우울제를 몽땅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누군가의 앞에서 약하고 어리석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상담사에게 치부를 보여주고 기꺼이 카드를 긁을 때마다, 난 내 손님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들의 비틀린 마음이 못내 가여워진다. 그렇듯 나는 미숙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날 원하는 사람을 절대로 거부하지 못하는 인간이니까. 처음 그 사실을 깨달은 건 열네 살이 되던 해, 나나를 만났을 때였다. 

지금에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유년 시절의 나는 성인 여자들의 흥미를 끄는 무언가가 과도하게 갖춰져 있었던 것 같다. 쇼타로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들조차 내게 어떻게든 구실을 붙여 말을 걸고, 매끄러운 피부와 윤기 있는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나는 내 아름다움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고, 감당할 수 없는 불행에 빠져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조차 버려진 존재였다. 터무니없이 약하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돌봐주는 이도 없었다. 그때 날 만났던 여자들은 누구라도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내 첫 번째 연인을 만나게 되었다.

 

장희태 소설가

1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2012 창작과비평 봄호에 시안, 쥐와 함께 잠들다 수록 2015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출판한 신예작가에 해달이 조개를 건네는 이유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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