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인 동인문학상 논란] 야비한 자연주의, 그 친일논리의 허약한 본질 - 김동인의 경우. 2부 김상천 평론
[친일문인 동인문학상 논란] 야비한 자연주의, 그 친일논리의 허약한 본질 - 김동인의 경우. 2부 김상천 평론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11.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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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비한 자연주의, 그 친일논리의 허약한 본질  
-김동인의 경우

 

김상천 평론 "야비한 자연주의, 그 친일논리의 허약한 본질 - 김동인의 경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김상천 평론 "야비한 자연주의, 그 친일논리의 허약한 본질 - 김동인의 경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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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는 과연 전범이 될 만한 모범적 작가였나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자, 여기 한 작가의 업적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수여하기 위한 전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머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가 타인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적인 행위를 했느냐 라는 객관적 사실의 문제다.  

자, 그렇다먼 식민지라는 암울한 시대 현실에서 작가는 무엇으로 타인의 모범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머 화가가 선과 색, 명암으로 명화를 낳아 모범이 되듯이,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붓을 들고 명작을 낳아 모범이 되는 것이다. 자, 여기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어떤 대상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예술적 충동을, 화의畵意를 느끼듯이, 꼭 그렇게 작가 또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참을 수 없는 예술적 충동을, 작의作意라고 부를 수 있을 구체적인 동기를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격한 감정의 발로이자 강한 의지의 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예술행위 일반을 놓고 볼 때,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기호는 항상 그 누군가를 또는 그 무언가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 무엇을 위한 도구적 예술(리얼리즘)이든, 아니먼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자율적 예술(모더니즘)이든 예술적 생산물도 결국은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 그런데 작가가 생산한 예술품이 민족의 지향하는 목적과 배치된다먼 어떨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김동인의 단편예술작품과는 다른 성격의 글을 보게 되는데,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 많던 재산을 기생과의 외입질과 사업 실패로 다 날리고 즉 삶이 파탄나고 생이 곤궁해지기 시작하먼서 마치 가난이 극도로 심각해지자 몸을 팔기 시작하는 복녀처럼 그토록 아끼던 매문행위를 서슴치 않는 그를 볼 수 있다. 예술에 대해 청교도 같은 결백을 지닌 그였다. 그동안 ‘예술성’을 지닌 덴시티density한 단편 중심으로 그나마 상당한 수작의 예술작품을 건져 올린 김동인이 당대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가미한 ‘상업성’을 지닌 티크thick한 신문 연재 장편소설에 손을 대고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치자. 머 그도 7곱 식구를 거느린 가장으로서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인간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장편을 쓰다 모해 친일 작품을 쓰기 시작하먼서 그의 ‘자아’ 정체성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복녀의 가난과 도덕적 타락을 복녀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당시의 명망있는 작가가 먹고 살기 위해 친일을 했다고 그에게만 책임을 씌울 수는 없다. 그것은 폭력적 현실과 타락한 사회가 복녀의 운명을 망쳐놓았듯이, 꼭 그렇게 김동인 또한 일제라는 폭력적 현실과 빌어먹을 타락할 대로 타락한 현실이 그를 망쳐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자료를 보건대, 친일문학이 한국에서는 1940년을 중심으로 시작하였다(임종국, [친일문학론]). 이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집어삼킨 일제가 그 제국주의적 야심을 품고 만주사변(1931)을 일으키고 이른바 대동아전쟁(1941)을 일으키먼서 전시체제로 몰아갔던 조선반도의 폭력적 현실이 근본적인 악의 발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악은 일제였지 김동인이 아니었다.  

자, 그렇다고 해서 가난을 핑계로 도덕적 타락을 일삼고 왕서방을 살인까지-미수에 그치고 그가 오히려 죽고 말았지만- 했던 복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시대를 핑계로 친일 행위를 일삼고 반역자-[반역자]는 외배 이광수의 친일을 옹호하고 두둔한 단편소설이다. 그는 소설로만이 아니라 해방 이후 반민족처벌법 시행 당시 이광수를 적극 변호하였다-를 두둔했던 김동인을 묵인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는 소극적인 친일행위를 한 작가와는 그 유가 다르다.

“우리 문단인이 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내선일체內鮮一體로 국민의식을 높여가게 된 것은 만주사변 이후다. 만주사변滿洲事變은 ‘만주국’이 탄생하고 만주국 성립의 감정이 지나사변支那事變으로 부화되자 조선에선 ‘내선일체’의 부르짖음이 높이 울리고 내선일체의 대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다시 대동아전쟁이 발발되자 이제는 ‘내선일체’도 문제거리가 안 되었다. 지금은 다만 ‘일본신민日本臣民’일 따름이다.  
한 천황폐하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榮枯를 함께할 한 백성일 뿐이다. ‘내지內地’와 ‘조선’의 구별적 존재를 허락지 않는 한 민족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종족種族을 캐자면 다를지 모르나 일본인과 조선인은 지금은 합체合體된 단일민족이다.” 

-김동인, ‘감격과 긴장’ [친일문학작품선집], 실천문학사

자, 여기 암울한 시대현실에서 조선과 일제의 민족 모순에 대한 본질적 인식을 뒤로 한 채 두 나라가 ‘내선일체’를 넘어 ‘일본신민’일 따름이고, 더 나아가 일본인과 조선인은 ‘합체된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점층적 기법으로 강조하고 있는 그의 문재도 문재려니와 우리가 확인하는 사실은 무엇인가. 네이키드naked하다니, 머 아주 노골적이지 않은가...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서 그 어떤 일말의 작가적 자존심과 고민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조선의 천재 이광수가 현실적으로 ‘조선 민족은 일본의 굴레를 도저히 벗을 수 없다’고 독립무용론을 펼치며 ‘차라리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반역자])는 자조自嘲 섞인 모순적 논리를 드러내고 있다먼, 김동인은 이와도 달랐다. 그만큼 그는 ‘철저한through’ 친일작가였다. 이것 이외에도 [백마강], [성엄의 길], ‘총동원 태세로’, ‘일장기의 물결’, ‘반도 민중의 황민화’ 등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그가 어느 작가보다 많은 친일 작품을 낳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자신의 말대로 ‘어떤 기생과 사괴게 되어 한번 쏠리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문단 30년의 자최’)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학이 하나의 삶의 수단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극단적인 사례를 본다. 다시 말해 문학이 그 무엇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기능하고 도덕이라는 가치를 상실하였을 때 볼 수 있는 잔인의 극을 보게 된다. 즉 우리는 결국 문학이 자신의 삶의 태도를 스스로 형성하고 결정하는 주체적인 삶의 방식이 되지 모하고 그 무엇인가를 위해 맹목적으로 기능할 때 어떤 참혹스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김동인, 그는 과연 한국 근대 소설의 선구자 아니었나. 다시 말해 그는 그 누가 뭐래도 삶의 태도를 스스로 형성하고 결정하는 주체적 삶의 방식의 주인공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이런 자가 외부의 힘에 쉽게 무너져 복녀처럼 타락하고 말았는가.  

“이게 다 운명 탓이지요.” 
-귀스타프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이게 바로 그 빌어먹을 자연주의 망탈리테 아닌가. 

나는 여기서 그 본질적 의미에서의 근대적 자각이 철저하지 모하먼 쉽게 무너지고 마는 나약한 지식인의 초상을 본다. 참 허약한 자연주의라니... 

그러나 한국 근대의 소설 문학은 김동인 이외에도 이광수를 비롯 염상섭, 현진건, 나도향과 최서해, 한설야를 거치면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 드디어 민촌 이기영에 이르러 거대한 리얼리즘의 강물을 이루먼서 조선 소설의 일대 장관을 이루었으니, 이런 소설적 성취는 무엇보다 조선의 모순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진실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기영의 [고향], 이것은 과연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을 폭로하먼서 당대 조선인의 실상을 진실한 화폭으로 놀랄 만큼 생동감 있게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런데 그나마 자연주의에서 색정문학으로 기울다 못해 아예 친일문학으로 타락한 김동인을 한국 소설의 우두머리로 삼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친일행위로 민족문학의 발전에 해를 끼치고 민족의 이익에 누를 끼친 그를 기리는 상을 제정해 이 악업을 떨치지 못하다니...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통념과 관행이라는 개가죽을 벗겨내지 모한 채 비성숙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정신적 후진국의 세태가 아닌가. 

그렇다먼 대체 ‘성숙成熟’이란 무엇인가. 성숙이란 머 미숙한 단계를 벗어나는 존재의 내적,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를 지나 나비로 성장하듯이, 어린이가 청소년기의 미숙한 단계를 지나 어른이 되는 과정과 유사한 것이다. 자, 이런 성숙의 과정에는 반드시 번데기가 스스로 허물을 벗듯이, 스스로 미숙한 껍질을 벗어던져야 하는데, 이 껍질 속에는 칸트([계몽이란 무엇인가])가 말하는 바의 ‘게으름’과 ‘비겁’이 들어 있다. 따라서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엄숙한 판단과 이성적 사고에 바탕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속의 굴레를 과감하게 끊어낼 줄 아는 ‘결단’과 ‘용기’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근대정신이고 독립정신이 아닌가.  

4, 결어,  

김동인이 타락한 것은 그가 정신의 북극성을 갖지 모했기 때문이다. 그가 배워 이식한 자연주의는 가장 대표적으로 [마담 보바리]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본래 프랑스의 정치적 좌절에서 나온 원한과 분노가 말초신경적으로 형상화 되었던 것이고, 이것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로 치닫고 있던 일본의 정치적 좌절에서 그대로 재현되었거니와 김동인은 당시의 문학 사조를 조선적 현실에 아니, 자신의 운명에 걸었던 것이니 그의 자연주의적 좌절과 타락은 머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김동인이 근대적 의식을 형식을 통해 보여줬던 과감한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은 문학사에 값진 유산으로 남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형식에서의 성공과는 별도로 근대적인 이념을 작품으로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따라서 그를 근대 소설의 진정한 선구자라 하기에 주저치 않을 수 없다. 말하건대, 김동인은 근대 소설 ‘형식의’ 진정한 개척자다.  

또한 김동인은 그 어느 친일작가 못지않게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하고 많은 친일작품을 남긴 철저한 친일작가였다. 이런 그의 반민족적인 궤적을 두고 문학사의 전범이라고 할 수는 없다. 즉 그는 외려 민족의 이름으로 벌을 받을 사람이지 결단코 기릴 작가가 아니다.  

이와 같이 김동인은 한국 근대 소설의 진정한 선구자도 아니었고, 전범이 될 만한 모범적인 작가는 더욱 아니었다. 따라서 한국 근대 소설사 기술은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고,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 수상 또한 폐지가 마땅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 

나는 그렇게 본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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