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몸으로 전해지는 낭독의 재발견 - 공병훈 교수
[오피니언] 몸으로 전해지는 낭독의 재발견 - 공병훈 교수
  • 공병훈 교수
  • 승인 2018.11.22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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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전해지는 낭독의 재발견.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몸으로 전해지는 낭독의 재발견.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 <산유화>

[뉴스페이퍼 = 공병훈 교수] 끊임없이 생겨나고 변화하고 움직이는 자연과 생명의 존재를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뜬금없이 시를 소개한 것은 시가 좋기도 하거니와 시나 책을 더 깊이 공감하기 위한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낭독 독서법. 낭독이란 소리 내어 글을 읽는 음독(音讀)의 하나이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를 그냥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과 입으로 소리 내어 읽고 마음에 새기는 것은 다르다. 낭독하여 읽는 것이 더 기억에 오래남고 이해도 더 잘된다. 눈과 입으로 정확하게 읽는 책읽기 방법인 낭독(朗讀)을 영어로는 사운드리딩(sound reading)이라고 한다. 

올바른 낭독은 정확한 발음과 끊어 읽기가 핵심이다. 단어들의 발음을 정확하게 소리 내 읽게 되면 엉키는 발음을 고칠 수 있다. 단어 하나하나 제대로 읽어 그 의미까지 확인하는 과정으로 책읽기 가능하다. 또 끊어 읽기를 통해 호흡조절 방법을 배우고,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는 법을 체득할 수 있다.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낭독 스킬이 좋아진다. 낭독은 다시 읽기를 통해 내용에 더 친숙하게 될 수도 있다. 여러번 반복하면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내면화할 수 있어서 케어풀 리딩(Careful Reading)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소리 내어 외우던 구구단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구구단을 소리 내어 외우게 한 건 낭독이 지닌 효과 때문이다.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구절의 리듬이나 템포가 몸에 스며들면서 신체에 활력을 준다. 시각으로만 기억하는 묵독(默讀)에 소리를 듣는 청각의 기관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해 책의 내용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다. 또한 낭독은 입을 통해 몸으로 전해지는 일련의 활동이기 때문에 운동효과도 있다고 한다. 측정 결과에 낭독이 전두엽을 활성화시켜 기억력이 20% 향상됐고, 뇌가 평소보다 활발해졌다는 최상한 박사의 실험도 있다. 

음독을 해보면 글의 어법이나 문법을 점검해 볼 수 있다. 글을 읽다가 문장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건 분명 문법이 잘못됐을 확률이 크다. 운율이 살아있어 읽기가 편하다면 그것은 잘 쓰여진 글이다. 낭독은 주의력이 높아지는 것 뿐만 아니라 읽다가 빠트릴 수 있는 문장도 지나치지 않고 기억하게 된다. 30년간 음악교육과 학습 관계 등을 연구해 온 청각 신경학자 니나 크라우스는 소리를 해석하는 능력이 좋을 수록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도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청각 능력이 독서 능력, 외국어 능력, 언어 능력, 나아가 인지 능력과도 이어진다는 뜻이다. 

여러 낭독 모임에서는 더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낭독하기 위해 낭독 독서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낭독이라고 해서 그저 보고 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세를 편하게 잡으시고 낭독물이 얼굴을 가리거나 목소리를 막지 않도록 위치를 잡고 시작한다. 첫 번째로 큰 소리로 읽는다. 자신이 낸 소리가 청중이나 자신이 듣기에 또박또박 잘 들릴 정도로 읽어야 도움이 된다. 두 번째로 적당한 속도로 읽는다. 지나치게 빨리 읽다보면 읽는 것에만 집중해 내용을 놓치게 되고 또 너무 늦게 읽다보면 지루해져 쉽게 그만두게 된다. 마지막으로 끊어 읽기를 제대로 한다. 운율에 따라 글의 구절에 따라 끊어 읽어야 할 곳이 따로 있기 때문에 쉼표에서는 쉬고 마침표에서는 잠시 쉬었다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책이 귀하던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모여 책을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책 한 권을 돌려가면서 필사해 읽곤 했다. 하지만 현대의 인쇄술 등장으로 누구나 책을 갖게 되면서 낭독 독서법은 사라졌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몸에 대한 탐구에서 나온 새로운 공부법으로 낭송을 내세웠다. 

“귀가 열리면 그 때부터 내적 공명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면 무대에 압도당하지 않고 극의 호흡을 찬찬히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서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존재의 무게 중심은 눈이 아니라 귀, 시각이 아니라 청각이다. 하여, 존재의 평형수를 채우려면 이제 이미지가 아니라 소리에 주목해야 한다.”- 고미숙,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던 고대나 중세에는 시인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유럽의 음류시인(吟遊詩人)은 하프나 작은북 연주에 뛰어나고, 노래를 부르며 로맨스를 낭송하고 연극을 공연하면서 한 고장에서 다른 고장으로, 한 성(城)에서 다음 성으로 뉴스를 전하는 일도 하였다. 그들은  배우이고 음악가이며 시인인 동시에 저널리스트이기도 하고 또는 기사(騎士)이기도 했다.  15세기에 들어 구텐베르크에 의해 발명된 인쇄술이 보급됨에 따라 문자를 읽는 사람이 증가하여 이와 함께 음유시인도 사라져 갔다. 

빌려서 베끼고 돌려읽고 외우고 낭독하고. 조선시대의 공부법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한글 소설이 유행해도 글을 모르는 민중들은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이들을 위해 책을 읽어 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던 사람들을 전기수(傳奇叟), 강담사(講談師), 강독사(講讀師), 강창사(講唱師)로 구분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소설의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소설이 유행하였다. 소설의 유행함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직업적으로 읽어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제임스 세인트(James Sant, 1820-1910)의 작품. 동화(The Fairy Tale)
제임스 세인트(James Sant, 1820-1910)의 작품. 동화(The Fairy Tale)

낭독의 효과와 중요성은 ‘말(language)’이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미디어이자, 인류가 영원히 사용할 미디어이기도 하다는 데 비롯된다. 인류가 사는 곳이 아무것도 없는 진공의 상태가 된다면 ‘말’은 더 이상 인류의 미디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말’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리 기호로서 인류가 처음 사용한 메시지 전달방식이자 영원히 사용할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공병훈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앱(App) 가치 네트워크의 지식 생태계 모델 연구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디어 비즈니스, PR, 지식 생태계이며 저서로는 『4차산업혁명 상식사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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