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외의 독자들이 읽고 싶은 문학 번역해야” GKL문학번역상 이영준 심사위원장
[인터뷰] “해외의 독자들이 읽고 싶은 문학 번역해야” GKL문학번역상 이영준 심사위원장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12.11 0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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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GKL사회공헌재단(이사장 채승묵)은 2017년 GKL 문학번역상을 제정하고 역량 있는 문학 번역가 양성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 문학 번역 환경이 취약한 상황에서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고 한국문학 번역의 마중물 역할을 하자는 취지였다. 2017년 아그넬 조지프, 성은지, 자넷 홍 등 세 명의 역량 있는 문학 번역가가 제1회 GKL문학번역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올해에는 대상에 션 린 할버트, 최우수상에 류승경, 박아람, 우수상에 양은미, 허정범, 김칠성, 정슬인, 특별상에 김소라 등 8명이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GKL문학번역상은 이영준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를 심사위원장으로 하고, 국내외 학계 및 작가, 문학 평론가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을 두고 있다. 특히 해외의 저널리스트들을 적극적으로 위촉하여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올해 2차 심사에도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Roger Tagholm, Toby Lichtig, 더 가디언의 기자이자 The Bookseller의 편집자인 Alison Flood, 펭귄 출판사 총괄 편집자 Ed Park 등이 참가했다.

해외의 출판인 및 문학인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는 일은 많지만, GKL문학번역상 만큼 해외 저널리스트를 위촉하는 것은 독특한 일로 보인다. GKL문학번역상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뉴스페이퍼에서는 심사위원장 이영준 교수를 만나 GKL문학번역상의 가치와 한국문학번역의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 ‘공급자 중심의 번역 대신 현지인이 읽고 싶은 책 번역해 현지인이 소개하게 하자’

국문과를 나와 민음사 편집주간을 10년 이상 보내며 한국 문학장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이영준 교수는 90년대 말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된다. 90년대 말은 한국문학이 큰 변화를 겪고 있었는데, 그 이전까지 한국 문학장의 주류였던 혁명적 거대서사가 무너지고 그 자리를 후일담 서사들이 채우기 시작했던 때이다. 김영삼 정권을 시작으로 진보정권이 들어서며 혁명적 거대서사가 원동력을 잃고, 7, 80년대를 회고하는 후일담 서사들이 채우기 시작하며 문학의 가치 또한 바뀌게 된다. 이영준 교수는 “나름대로 팔십년대 문학 패러다임에 빠져있던 사람이기에 시각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뉴욕의 서평지 더 뉴욕 리뷰를 설명하는 이영준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욕의 서평지 더 뉴욕 리뷰를 설명하는 이영준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그렇게 해외로 나간 이영준 교수는 한국문학 번역의 초라한 실상을 확인하게 된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투자해왔으나, 정작 현지인들이 읽고 배울 수 있는 문학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버드 한국문학 서가에 세 칸 가까이가 한국문학 번역 작품이었으나, 당시 이영준 교수의 하버드 지도교수는 “쓸 수 있는 책이 없다.”고 탄식했다. 이는 한국문학 작품의 번역이 정확하지 않은 문제도 있으나, 더 큰 문제는 교육에 적합한 ‘살아있는 문장’으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가에서 진행하는 번역 사업은 권위 있는 교수들이 번역가로 참여하는 일이 많으나, 문제는 그들이 현장에서 현지의 언어로 활동하고 있지 않았기에, 언어를 번역하는 감각이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언어의 문제와 더불어 번역 작품을 선정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다.

“현장에서 제가 공부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 드라마나 영화 등 한국의 대중문화에 관심을 기울인 학생이 한국 관련 강좌에 들어오게 되는 거였습니다. 이 학생들이 관심 있는 건 홍대나 신촌 같은 젊은 문화인데, 교실에서는 염상섭과 이광수를 가르치고 있었고, 제일 뒤로 와봤자 최인훈이었던 거죠.” 

미국에서의 한국문학은 현지의 학생들이 알고 싶은 한국과 배울 수 있는 한국이 너무나도 괴리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문제를 느낀 이영준 교수는 2007년 “아젤리아”라는 잡지를 창간하게 된다. “아젤리아”는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가 펴내는 영문 문예지로, 김영하, 신경숙, 공지영 등 ‘고전’ 작품이 아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미국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젤리아” 최초의 목적은 미국 대학의 강의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잡지로, 이영준 교수는 “나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반가워했고, 십여 개 대학에서 교재로 쓰고 있다.”며 “아젤리아”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이야기했다.

문예지 아젤리아. 자넷 홍이 번역한 "도둑 자매(Sister Thief)"와 성은지가 번역한 "영원한 화자(Forever a Narrator)"가 수록됐다.
문예지 아젤리아

문예지 “아젤리아”로 현지인들이 읽을 수 있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영준 교수는 저널리스트의 힘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과거의 한국문학 번역은 “우리가 잘 번역해서 주면 읽겠지”였으나 실상은 한국문학 작품은 서점에 진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은 도서시장의 3~40%를 번역서가 차지하지만, 미국은 번역서가 시장의 10%가 채 안 되고, 그 10% 안에서 한국문학은 고작 0.7%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영준 교수는 “이 0.7% 안에는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한국문학 책도 존재한다. 우리가 책을 번역했을 이 책이 미국 독자에게 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며 “현지 사정을 알고 전략을 세워야 성과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때 생각했던 것이 영미의 서평 문화였다.

서평이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과 달리 영미는 서평지를 비롯한 잡지 문화가 힘을 가지고 있었고, 잡지 기자나 잡지 편집자에게 책이 알려져야 책이 독자들에게 소개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영준 교수는 “그동안은 공급자 중심으로 번역서를 공급해왔으나, 이렇게 하면 책의 번역이나 만듦새도 미국의 주류 출판사에 비하면 허접할 수밖에 없다.”며 공급자 중심의 편이에 의한 선정에서 벗어나, 현지의 수요자들이 진정 원하는 작품을 번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GKL문학번역상에 현지 저널리스트들과 출판 편집자들이 대거 포함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영준 교수는 “우리 문학이 현지인들에게 좋게 받아들이게 하려면, 손님에게 ‘뭘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어봐야지, ‘내가 우동을 만들었으니 먹어라’라고 하면 안 된다.”며 “현지의 독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심사위원 중 현지 저널리스트, 편집자를 위촉하고, 그들에게 좋은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부드럽게 선정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 ‘한국문학, 세계문학과 다른 독특한 지점 갖춰’

이영준 교수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 차별을 두고 있는 독보적인 지점들이 있다고 설명하며 먼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이야기했다. 맨부커상 국제부문을 수상하여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려진 “채식주의자”는 국내와는 상당히 다른 평가를 들은 일이 있다. “채식주의자” 속 줄거리가 너무 끔찍하고 공포소설 같았다는 것이다. 이영준 교수는 “사실 무시무시한 내용이라, ‘채식주의자’가 미국이나 영국에 소개됐을 때 너무나 끔찍한 것으로 여겨질 줄 알았다.”며 “막상 나와 보니 현지인들은 ‘뭐야 이게’ 라는 느낌으로 당황해더라.”고 이야기했다. 

이영준 교수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의 내면세계란 지극히 황폐해 있으며, 척박하게 살아온 이들은 제정신일 수가 없다.”며 깊은 상처가 한국문학 속에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한국문학은 세계인들에게 고통과 아픔이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한국인들의 독특한 정서와 문화가 만들어낸 문학작품은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시를 아직도 향유하는 문화, 감정을 중시 여기는 문화, 인문학에 대한 존경 등이 그러하다.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불과 수 천 부의 시집을 팔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십만 부를 판매하는 시집이 등장하곤 한다. SNS에는 시를 공유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오고, 매년마다 수 백 종 이상의 시집이 발간된다. 시를 향유한다는 것은 문학적 자산으로 이어지며 이영준 교수는 “한국의 단편 문학이라는 것은 시에 가깝다. 황순원이나 한강, 성석제의 작품은 문장도 시적이고 스타일도 시적이고 작품 내용도 시적이다.”며 한국의 단편 문학은 서양의 단편 소설과 차별화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시를 향유하는 문화를 가리켜 이영준 교수는 한국인들이 감정을 공유하는 지점이 강력하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한국문학의 독특한 지점들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에 응한 이영준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인터뷰에 응한 이영준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 제2회 GKL문학번역상, 젊은 세대 번역가 많아져 바람직... 네이티브 스피커 강세 보여

지난 7월 23일부터 9월 21일까지 공모한 제2회 GKL문학번역상에는 타 분야 교차지원을 포함하여 총 37명의 번역자가 작품을 접수하였으며, 전체 접수 건수는 58건으로 총 336편의 작품이 접수되었다. 분야별 접수 현황으로는 일반 번역작가 부문 총 28명이 159편의 작품을 접수하였으며, 기번역작가를 대상으로 공모한 특별상 부문에서는 총 9명의 기번역작가들이 177편의 작품을 접수했다.

제2회 GKL문학번역상의 수상자는 대상에 션 린 할버트, 최우수상에 류승경, 박아람, 우수상에 양은미, 허정범, 김칠성, 정슬인, 특별상에 김소라 등 8명이다. 올해 대상 수상자는 션 린 할버트 씨로,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한국어와 물리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젊은 번역가다. 이영준 교수는 올해 GKL문학번역상 심사 결과를 두고 “젊은 세대의 번역가가 많아져 바람직하고, 네이티브 스피커들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정리했다.

인터뷰 중인 이영준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인터뷰 중인 이영준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투고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전년에 비해 낮아졌으며, 작년 아그넬 조지프 씨에 이어 션 린 할버트 씨가 네이티브 스피커로 번역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영준 교수는 “네이티브 스피커들이 번역자로 참여하는 일은 중요하다.”며 “말 자체가 생물이라 현지인의 언어를 따라잡기가 어렵다. 동시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언어를 활용해야 한국문학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GKL문학번역상 대상으로 젊은 네이티브 스피커인 션 린 할버트 씨가 수상하게 된 것을 언급하며 “젊은 네이티브 스피커 번역자가 열 명만 되더라도 한국문학이 노벨상을 받을 날이 언제일지 가늠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국 문학을 번역하고 해외에 소개하는 일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이영준 교수는 “문화적 투자는 결과가 언제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며 긴 안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긴 안목과 자신감을 가지고 꾸준히 해야 할 일을 해가며 분위기 만든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GKL문학번역상을 통해 세계문학 새 페이지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2회 GKL문학번역상은 오는 12월 12일과 13일 리셉션과 시상식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2층 국화룸에서 진행한다. 12일에는 오후 5시 30분 열리는 리셉션에서는 사업과 심사 경과 보고, 수상자와 원작자가 함께하는 토크, 기자간담회 등을 진행할 예정이며, 13일 오전 11시에는 시상식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