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예상치 못한 일과 맞닥뜨렸을 때, 많은 이들은 그 상황을 ‘우연’이라 말하며 기막혀한다. 그러나 정말로 ‘우연’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연락이 끊어진 학창시절 동창생을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을 때 우연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따져 보면 같은 학교를 나온 생활권을 공유하던 두 사람이 마주친 것에 불과하다. 우연은 어느 정도 필연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 오후 7시 30분 마포구에 위치한 책방서로에서는 ‘2018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우다영 소설가의 “밤의 징조와 연인들” 낭독회가 진행됐다. 이 행사는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했으며 책방서로가 주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했다.
우다영 소설가는 2014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여 데뷔했으며, 지난 11월 민음사를 통해 첫 번째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을 펴낸 작가이다. 이날 낭독회는 책방서로의 상주작가인 김봄 소설가의 사회 하에, 우다영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들을 낭독하고 쓰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소설집을 묶고 나서 우다영 소설가는 “제가 얼마나 인생을 우연하게 흐르는 대로 살았는지”를 반성했지만, 막상 과거로 돌아가 시간들을 살펴보고 이것이 순수한 우연은 아님을 알았다고 말했다. 우연이라 생각한 일들도 곰곰 되짚어보면 어떤 징조들을 끌어안고 있다는 것이다. 우다영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은 이러한 “과거의 징조들을 제 방식으로 나열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즉 우다영 소설가에게 소설을 쓰는 것은 과거에 대한 복기이며 반성이다.
반성의 지점은 특히 소설 ‘얼굴 없는 딸들’에서 돋보인다. 우 소설가는 자신에게는 떠나갔는지도 모르고 떠난 친구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서로에게 했던 잘못이나 상처 같은 것이 남아있는데도, 관심이 완전히 멀어진 것처럼 떠나간 과정을 전혀 알지 못한 친구이다. 우다영 소설가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많은 고민을 했고, “왜 헤어졌을까에 대한 추적, 반성”하는 마음으로 소설 ‘얼굴 없는 딸들’을 썼다고 이야기했다.
소설 ‘얼굴 없는 딸들’은 부유한 아이들이 사는 동네인 ‘다목’에서 가정형편이 좋지 못한 아이들이 사는 동네 ‘오로’로 이사하게 된 한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화자는 오로에서 ‘경진이’를 포함한 새 친구들을 사귀게 되지만, 하루하루 흘러가는 과정에서 경진이와의 거리가 벌어지게 된다. 경진이와 화자는 거리가 벌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러다 이내는 다시 연락조차 하지 않는 관계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잊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과 멀어질 때, 정확히 어떤 계기에 의해 멀어졌다고 짚을 수 있는 때는 많지 않다. 그저 어떤 ‘징조’들만이 떠오르며, 먼 훗날 회상을 통해 그것이 관계가 멀어지는 징조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다영 소설가는 이 작품을 통해 “불화는 어떻게 시작”되고, 현재가 어떻게 찾아오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타인과의 멀어짐은 막연하고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이나 상황에 내재된 ‘징조’들의 만남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인물이나 사건의 성격은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다는 게 우다영 소설가의 생각이다.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문장이 필요하고, 긴 시간을 들여 징조를 보여줘야 한다고 우 소설가는 강조했다. 그렇다 보니 구두로 누군가를 설명할 때에는 “네가 말하는 게 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우 소설가는 한 사람이 하나의 특징만을 가지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특징은 표제작인 ‘밤의 징조와 연인들’에서 더욱 자세하게 그려진다. 소설 ‘밤의 징조와 연인들’은 신인 큐레이터들이 모이는 전시에서 ‘석이’와 만나 이후 연애에까지 이르게 된 ‘이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두 사람은 지질하고 초라한 이유로 정색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서로의 사랑을 갈구하느라 한없이 약해지기도 한다. 때때로 석이가 가진 아픔이 관계에 균열을 가져오기도 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연애이지만, 그 안에서 포착되는 징조들 때문에 두 사람은 괴로워하다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우 작가는 이 소설은 자신이 인간관계를 보다 넓게 돌아보고,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다. 화자인 ‘이수’에 자신을 대입하고, 아픔을 간직한 인물인 ‘석이’를 이해하기 위해 깊이 탐구해봤다는 것이다. 우 작가는 소설 속 인물이라 해도 단순히 하나의 현상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 다양한 시간들을 지나온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징조들을 포착하는 것이 소설을 쓰는 자신의 일이라고 말했다.

낭독회를 마치며 우다영 소설가는 인간의 삶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그 어려움 탓에 우연히, 어쩔 수 없이 라는 수식이 따라붙을 때가 많으나, 삶이 흘러온 데에는 명확한 징조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 작가는 이러한 문제들을 다른 방식으로 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며, 앞으로는 더 열심히 글을 써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