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폭력과 억압 속에서 피를 머금은 서정시. 나희덕 시인, 시집 “파일명 서정시” 책방이듬 낭독회로 독자와 만나
사회의 폭력과 억압 속에서 피를 머금은 서정시. 나희덕 시인, 시집 “파일명 서정시” 책방이듬 낭독회로 독자와 만나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12.2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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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집 "파일명 서정시. 사진 = 육준수 기자
나희덕 시집 "파일명 서정시. 사진 = 육준수 기자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서정시’라는 단어에서 기자는 부드러운 말의 울림과 자연의 싱그러움, 생명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을 떠올리곤 한다. 그렇기에 지난 11월 나희덕 시인이 출간한 시집의 제목인 “파일명 서정시”는 이질적이다. “파일명 서정시”라는 제목은 많은 ‘서정시’가 싱그러움이나 온기와는 상관없이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차가운 철제 캐비닛에 처박힌 듯하다. 서정시는 싸늘함 속에서 더 이상 그 온기를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 서정시가 이 단단한 캐비닛 안에 수감된 것일까? 

나희덕 시인이 참여한 낭독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나희덕 시인이 참여한 낭독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지난 20일 일산시에 위치한 책방이듬에서는 나희덕 시인의 신간 시집 “파일명 서정시” 낭독회가 열렸다. 이날 나희덕 시인은 “파일명 서정시”는 블랙리스트 사태와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문제에서 자신이 느낀 괴로운 감정을 쓴 시집이라고 소개했으며, 시대적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에 시로써 답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시집 “파일명 서정시”의 제목은 독일의 서정시인 라이너 쿤체가 구동독 정보부에게 감시를 당한 일화에서 비롯됐다. 나희덕 시인은 구동독 정보부가 라이너의 서정시를 문제 삼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당시 독일의 많은 시민이 정보국과 체제를 비판하고자 라이너의 시를 문에 걸어두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훗날 공개된 정보부 문서의 파일 모음집 이름이 ‘서정시(Lyrik)’였다고 일러주며 아름다움을 노래했을 뿐인 시인을 검열의 대상으로 삼고, 그 파일명을 ‘서정시’로 한 것은 대단히 역설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시를 낭독하는 나희덕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시를 낭독하는 나희덕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그간 나희덕 시인에게는 따뜻한 시선과 아름다운 언어로 글을 쓰는 ‘서정시인’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작가 본인도 사회의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식물의 생명력을 다루는 데에 집중했고 식물의 이미지를 주로 그렸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번 시집 “파일명 서정시”에는 다른 성향의 작품이 다수 실렸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억압’을 비롯해 시인이 사회에서 발견한 문제점을 시로 썼기 때문이다. 표제작인 ‘파일명 서정시’가 대표적이다.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을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파일명 서정시’ 일부

시 ‘파일명 서정시’에서 정부를 암시하는 ‘그들’은 시인이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떠한 어둠에도 사람의 마음을 열어나가는 시인의 언어는 그들에게 ‘불온한 것’이다.  

나희덕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나희덕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서정시마저 검열을 당하는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희덕 시인은 자신의 시가 변화한 이유는 여러 사회적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서라고 말한다. 시인이 시를 썼다는 이유로 검열을 당하는 세상, 수학여행을 가던 수백 명의 학생이 제대로 구조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세상은 자신으로 하여금 ‘시와 시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했다는 것이다. 

다만 아무리 시인이 썼다고 해도 시는 결국 받아들이는 자의 것이라는 점을 짚으며 나희덕 시인은 ‘시인은 전체를 컨트롤할 수 없는 수동적 존재’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쓴 시의 경우에도 명료한 순간을 능동적으로 썼다기보다는 어둠 속에서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는 지점들이 모여드는 순간에 나왔다는 것이다. 

나희덕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나희덕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나희덕 시인을 둘러싼 어둠 가운데 특히 아프게 다가온 지점은 세월호 참사였다. 시 ‘가라앉은 자 구조된 자’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의 작품 제목을 인용한 시이다. 나 시인은 프리모 레비가 구조된 자인 듯했으나 결국 자살을 통해 가라앉은 자들에게 돌아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프리모 레비의 삶이 마치 세월호가 가라앉은 곳에 떠있는 부표가 움찔거리는 것처럼 느껴져 시를 쓰게 됐다고 밝혔다. 가라앉은 자가 구조된 자에게 끊임없이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그에 대한 답을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곳을 세계의 항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부표 하나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사이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사이에서 

-‘가라앉은 자 구조된 자’ 일부

나희덕 시인(좌)과 사회를 맡은 김용국 법조칼럼니스트(우). 사진 = 육준수 기자
나희덕 시인(좌)과 사회를 맡은 김용국 법조칼럼니스트(우). 사진 = 육준수 기자

시는 본래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는 나희덕 시인이지만 우리 사회를 둘러싼 억압과 아픔 속에서 도저히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시대에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보고 느끼는 문제들이 그런 건데 그런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자체가 직무유기인 것 같았어요.” 오랜 고민 끝에 나희덕 시인은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사회의 폭력성과 어두움을 써야만 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시가 식물성에서 동물성으로 성질이 변화한 것 같다고 나 시인은 이야기했다. 가만히 한 자리에 앉아 뿌리내리기보다는 하이에나, 늑대처럼 피를 머금은 동물의 성격을 띠게 됐다는 것이다. 나 시인은 자신에겐 앞질러간 삶을 치러내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는 기질이 있다며 “삶이 피 흘리면서 갔기 때문에 시도 그렇게 간 것이 어쩔 수 없구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나희덕 시인이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나희덕 시인이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시란 무엇인가, 그리고 시인이란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나희덕 시인은 늘 스스로에게 자문하지만 명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시인의 역할은 어려운 삶의 국면 속에서 발걸음이 멈추게 되는 지점을 그려내고 환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아무리 세상에 고통이 팽배하고 억압이 있다 하여도 ‘시’가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 수 있길 바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