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함순례 시인, ‘타자’를 ‘당신’으로 호명하는 힘 보여준 “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출간 인터뷰
[인터뷰] 함순례 시인, ‘타자’를 ‘당신’으로 호명하는 힘 보여준 “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출간 인터뷰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1.05 2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함순례 시인 "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표지
함순례 시인 "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표지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함순례 시인의 시집 “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가 애지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시력 25년차를 넘어 비로소 세계를 바라보는 이성적인 눈을 갖추게 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신이 바라본 타자의 모습을 등장시킨다.

시집의 해설을 쓴 고봉준 평론가는 시집에서 ‘길’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이 길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포기하지 않는 생명의 원리나, 간절하게 염원하거나 도달하고자 하는 대상/목표를 향하는 마음의 길처럼 비가시적인 방향성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집 속에서 시인은 근대 산업 사회의 그늘에서 반복되고 순환되는 노동과 허기, 사랑과 욕망, 그 속에 스민 비의와 존재의 흔적을 추적하며, 이 추적의 길에는 ‘당신’으로 호명되는 타자가 등장한다. 시인은 도시의 무관심 속에서 점점 몸집이 불어나고 있는 맨발의 걸인, 쇼윈도에 갇힌 젊은 청춘, 소낙비에 기울어도 심장이 파닥거리는 ‘무서운 여자들’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향해 뻗은 수많은 길을 보여준다.

시 ‘고비 9’에서 화자가 중얼거리는 “어차피 이번 생은 순례야”라는 말은 시인의 이름을 차용한 언어유희이면서 나아가 생의 길, 시의 길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뉴스페이퍼에서는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출간을 맞아 시인으로부터 어떻게 시에 입문하고 살아가고 있는지와 세 번째 시집의 의미를 들어보았다. 

Q. 93년에 “시와 사회”로 데뷔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데뷔에 이르게 되셨을까요? 당시 시를 접하고 쓰게 된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A. 어렸을 적부터 줄곧 글쓰기를 해왔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산문을 썼고, 선생님께 이끌려 백일장에 다니는 게 싫증이 나 고등학교 3년 동안 의도적으로 글쓰기를 쉬었는데, 제가 다닌 청주여고는 ‘백합’이라는 유명한 문학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또래들의 시화전을 볼 때마다 열패감과 부러움으로 3년 내내 펑펑 울고 있는 나를 보았죠. 문학 바깥으로 도망갔다가 오히려 내 안에 꿈틀거리는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확인했다고나 할까요. 

1993년, 데뷔년도엔 제 나이가 28살, 대학 4학년 때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하고 늦게 대학에 입학했는데 시를 쓰기 위해 대학에 갔습니다. 1학년 때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보냈고, 2학년 때 ‘한남문학회’ 동아리 창립 맴버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했습니다. 주로 독서 커리큘럼을 짜고 함께 책 읽고 토론하고 합평을 하는 식이었죠. ‘한남문학회’는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문예운동 차원으로 시국 집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의 역할을 하기도 했죠. 대자보를 쓴다거나 시국에 맞춰 공동창작을 한다거나 시낭독을 한다거나. <힘글>이라는 무크지도 출간했습니다. 당시 맴버 중 지금까지 창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사람이 한창훈 소설가, 최은숙 시인 등이 있고, 지도교수는 이은봉 선생님이셨습니다. 

낮에는 직장생활, 저녁엔 학교에 와서 야간 수업을 받고, 사이사이 동아리 맴버들과 공부하고 합평하며 노는 날이 허다해서 전 지금도 ‘한남문학과’를 나왔다고 말하곤 합니다. 전공인 영어영문학은 세익스피어 정도에 매력을 느꼈고 국문학과도 아니어서 동아리 활동이 시 공부의 전부인 셈입니다. 3학년부터는 시에 대한 갈증이 심해서 수업을 빼먹거나 학점을 날리면서 습작에 몰두하게 됩니다. 자면서도 시를 쓰는 경험을 그때 처음 했고, 생각의 꼬투리를 찾아 수없이 밤기차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런 결과인지 4학년 때 대학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에서 시 부문 장원을 수상했고, 이어 계간문예지 ‘시와사회’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시와사회’가 진보적 색채를 띄고 활발하게 출발한 즈음이라서 데뷔지로 괜찮다고 생각했고, 지도교수인 이은봉 선생님의 권유도 있었고, 신춘문예에 번번이 떨어지면서 차선책을 선택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Q. 25년간 시를 써오신 것 같습니다. 시를 계속적으로 쓰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A. “시를 읽고 쓸 때가 가장 재미있고 살아있는 것 같았다.” 라고 하면 답이 될까요. 상처와 결핍의 정서도 한몫 했겠지요.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순간마다 책과 글 속으로 도망갔고, 그들은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어요. 위로가 되었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고 다시 힘을 얻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뭔가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심리적 기저가 심했어요. 제게 읽기와 쓰기는 한 몸인데 읽다보면 쓰게 되고 쓰다보면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시는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계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게 하죠. 공부하게 하죠. 생각을 밀고 당기며 성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해요. 그런 연결고리가 재미있어요. 재미있어서 좋아서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시는 평생 하고 싶은 놀이이자 공부입니다. 시 쓰는 고통이야 왜 없겠습니까마는 즐거운 고통이죠. 

Q. 시집의 제목은 일반적으로 표제시를 두어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번째 시집인 “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에는 표제시가 없는데요. 제목을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친구 이승희 시인이 정해준 제목입니다. 당초 제가 정한 시집제목이 ‘나는 하수다’였습니다. 그런데 지인들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어요. 시의 내용과 달리 선입견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죠. 표사를 쓴 이승희 시인도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뽑은 제목 후보를 일곱 개나 보내줬고, 그 중에 ‘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가 있었습니다. 해설을 쓴 고봉준 평론가도 ‘나는 하수다’ 보다는 위 제목이 제 시집의 정서를 드러내는 제목이라고. 시 ‘블랙홀’에서 따온 제목인데, ‘블랙홀’에서 그려진 당신은 좀 다르지만, 이름을 불러주며 다가간 당신들이 시집 속에 무수히 많다고.  

<대전작가회의 함순례 회장. 사진 제공 = 함순례 회장>
함순례 시인 [사진 = 대전작가회의 제공]

Q. 이번 시집은 세 번째 시집이 되는데요. 저는 첫 번째 시집이 시인의 시세계의 방향을 알려주고, 두 번째 시집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음을 보여준다면 세 번째 시집부터는 여정의 순간순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시인님이 지향하시는 시의 목적, 시의 방향이란 무엇일까요?

A. 제 경우엔 아쉽게도 첫 시집에서 시세계의 방향을 알려주지 못했어요. 제 상처와 결핍을 치유하는데 할애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나와 가족을 끌어안고 지난한 세월을 뒹굴었다고나 할까요. 이번 세 번째 시집에서야 비로소 시세계의 방향이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모질고 아픈 시간을 끌어안는 긍정의 시학”에서 벗어나 “타자와 세계를 바라보는 이성적인 눈”을 가질 수 있었어요.

제게 시는 질문입니다. 타자에 대한 질문, 세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세계와 존재와 대한 성찰입니다. 나와 같거나 다른 타자들과 소통하며 내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시를 쓰는 일은 어찌 보면 참 고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시를 써 나가는 이 여정에서 어려웠던 부분이란 무엇일까요.

A. 시만 쓰며 살수 없는 현실의 어려움이 가장 커요. 스무 살에 경제적 독립을 했고, 지금까지 제가 몸 부리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여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일이 몰려와요. 대부분 문단에 봉사하는 일인데, 누군가가 어디선가 나를 필요로 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란 당위성으로 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때 ‘똑 소리나는 일꾼’이라는 호칭도 따라붙었지만, 문제는 한 번에 두 가지를 할 수 없는 체력이라는 것입니다. 일하다보면 시작업이 자꾸 밀리죠. 타고난 문재도 아니어서 뚝딱뚝딱 시가 써지는 타입도 아니예요. 

그런데 다들 이렇게 살죠. 바쁜 중에도 꾸준히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모범이 되는 선배들이 무지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게으름도 커다란 적입니다. 여러 일에 지쳐있는 몸을 추스르며, 일 사이사이 쉼호흡을 하며 창작의 끈을 당기고 있습니다.  

Q. 이번 시집은 '길'과 '당신'의 이미지가 시에 주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봉준 평론가는 해설에서 시는 길이며, 당신의 정체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또는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타자의 존재라는 것은 어떻게 인식되는 것일까요. 또한 시인(시적 화자)과 당신(타자)은 어떻게 관계 지어져야 할까요.

A. 타자는 늘 제 곁에서 호흡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죠. 가깝거나 좀 멀거나 하는 차이일 뿐이죠. 별별 사람이 많잖아요. 그 ‘별별’을 읽으며 따뜻해진다거나 멀미나 난다거나 분노한다거나 하는 것이죠. 어떤 이는 닮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어떤 이는 측은지심을 일으키고 어떤 이는 거리를 두고 싶게 하죠. 타자는 결국 나와 세계를 인식하는 코드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그 ‘별별’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죠. 때로는 스쳐지나가는 타자도 유의미하게 시 속에서 발화되곤 해요. 시 ‘걸인의 식사’에 나오는 걸인이 그 예인데 유심히 관찰하다보니 도시의 무관심으로 몸집이 불어나고 있는 듯한 생각에 이르렀어요. 그래서 시를 쓰게 되었죠. 타자가 시 속에서 당신으로 호명될 때 타자는 타자 이상이죠. 생명력을 갖고 나의 삶과 시를 밀고 가는 동력이 됩니다.

함순례 대전작가회의 회장 [사진 = 이민우 기자]
함순례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Q. 시를 이루는 재료는 주로 어디에서 습득하시나요?

A. 일상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부대끼며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 대화 속에서 툭 다가오는 어떤 말과 행동이 있으면 잘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시로 써요. 산책이나 여행 중에도 감흥을 일으키는 풍경이나 사물이 있으면 오래 관찰해요. 그런데 자연 자체보다는 사람에 더 호응하는 감성이 있어요. 예를 들면 벚꽃잎이 흩날리는 길을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을 때 시적감흥이 일어나요. 제가 유난히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책을 읽는 중에도 생각을 많이 얻어요. 시가 서랍이 안 닫혀(완성이 안 돼) 끙끙댈 때는 책을 읽어요. 읽다보면 실마리가 풀리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중심을 찾아가곤 해요.   

Q. 세 번째 시집을 내신 감상을 듣고자 합니다.

A. 세 번째 시집은 여러모로 의미가 커요. 그동안 ‘자화상’을 이루는 가족, 밥과 사랑, 환대와 나눔을 통해 아픈 시간을 위무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도시의 다양한 이면에 천착하면서 타자와의 불화와 합일의 경계를 따듯하면서도 냉정한 시각으로 그려내고자 했어요. 또 익숙한 화법에서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감각의 시세계를 보여주고자 부단히 노력했어요. 퇴고를 거듭하며 독하게 밀고나갔어요.

‘자정의 작용’에서는 시간의 ‘자정’과 정화의 ‘자정’을 결합했고, ‘걸인의 식사’에서는 걸인과 아프리카 코끼리를 비유하며 도시문명의 무관심을 그렸고, ‘점원 우아하게’에서는 자본의 사회에서 미래가 불안정한 청춘을 들여다봤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자정의 작용) “살아있음으로 매일매일 격렬한”(나는 하수다) 존재와 생에 대한 성찰이 ‘당신’과 만나 호응하며 수많은 에움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어차피 이번 생은 순례야”(고비 9) 중얼거리게 된 것이죠. 이름을 차용해 생의 길, 시의 길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제는 아픈 시 말고 재미있고 유쾌한 시를 쓰리라, 던 생각엔 실패했어요. “웃는 별을 낳아/나 당신의 방에서/낭만적으로 빛나고 싶었으나” 시인의 말에서 고백했듯 여전히 슬프고 아픈 기미를 쫒거나, 허름한 내력의 빈 곳에 시선이 가 있더군요. 이건 어쩌면 시인의 숙명인 것 같아요. 화려한 ‘나비의 날개보다 나비의 몸통에 집중하는 것이 시인이다’라는 어느 분의 말처럼. 

등단년도에 비하면 이제 겨우 세 번째 발자국인데, 스스로는 한 걸음 나아갔다고 자평하고 있어요. 느리고 더딘 시력이지만 앞으로도 제 보폭대로 ‘나의 문학’을 하려고 해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