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취소로 끝난 세계일보 신춘문예 표절 논란... 시사점은 무엇?
수상 취소로 끝난 세계일보 신춘문예 표절 논란... 시사점은 무엇?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1.09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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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표절 논란을 겪고 있는 201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의 수상이 취소됐다. 세계일보는 1월 8일 오후 9시 "201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으로 발표됐던 박신우씨의 작품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의 당선을 취소합니다."라고 공지했다.

심사위원들은 “201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는 심사과정에서 출처나 주석 없이 투고되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으나, 작품 발표 후 일어난 논란을 심사숙고한 결과 표절의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심사의 엄정성을 위해 당선을 취소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당선 취소 이유를 밝혔다. 세계일보 측은 "신춘문예 응모와 심사에 대한 엄정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차원에서 당선을 취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응모자는 이 결정을 수용했습니다."라고 전했다.

- '인용 실수한 것' vs '누가 봐도 표절' 새해 벽두부터 들려온 표절 논란

앞서 지난 1월 3일 세계일보는 2019년 신춘문예 당선 결과를 발표했으며 시 부문 수상작으로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가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는 천체과학에 대한 내용을 담은 산문시로, 심사위원단은 “질량이나 중력, 기체 등 자연과학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를 어색하지 않게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며 “옥상 난간을 서성거리는 화자가 가장 작은 별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생의 구체성의 부여인 동시에 시적 확장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심사위원들은 의견이 일치했다.”고 수상 경위를 밝혔다.

당선작의 표절 논란은 신춘문예 결과가 발표된 날인 3일 신춘문예 공모를 준비하는 네티즌이 모여 있는 다음 카페 '신춘문예공모나라'에서 문제가 제기되며 시작됐다. 닉네임 ‘하늘방랑자’는 ‘고든’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블로거가 쓴 글과 당선작인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가 제목과 내용의 많은 부분이 똑같다며 이를 비교하고 “제목부터 똑같고 내용 또한 많은 부분을 그대로 발췌했다."고 지적했다.

당선작 블로그 게시글
제목 :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제목 :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지금까지 발견된 별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은 별을 발견했습니다. 그 크기는 목성보다 작고 토성보다 약간 큰 정도로 지금까지 발견된 별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은 별을 발견했습니다. 그 크기는 목성보다 작고 토성보다 약간 큰 정도로
이런 작고 조밀한 별이 있을 수 있다니 이런 작고 조밀한 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핵융합 반응 속도가 매우 낮아서 표면은 극히 어둡다고 합니다 핵융합 반응 속도가 매우 낮아서 표면이 극히 어두운 대신 상당히
별의 부피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입니다 별의 부피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지만
여기 옥탑에서는 중력이 약해서 몸의 상당부분이 기체로 존재해요 중력이 약해 밀도가 낮아져 수소와 헬륨의 상당 부분이 기체 상태로 존재하므로

표절 의혹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로 퍼져나갔으며, 뉴스페이퍼 취재에서 심사위원들은 “문학작품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가지고 와서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창작한 작품이기에 표절로 볼 수 없다. 아쉬운 것은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표절이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4일에는 당선자가 문제가 제기됐던 ‘신춘문예공모나라’에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당선자는 “‘고든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 중 ‘우주이야기 678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글이 당선이 되었습니다. 이에 많은 분들이 상처를 받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전했다. 당선자는 블로그 글을 작성한 ‘고든’에게 출처를 명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를 구했고 이를 용인 받았으며, 당선 작품집에 참고자료의 출처를 명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악의적으로 한 일이 아님을 강조하며 사죄의 말을 전했다.

당선자의 사과가 게시된 이후 ‘인용을 실수했을 뿐이다’,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문학적으로 창작한 것이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당선자가 표절을 인용 실수로 무마하려 한다’, ‘인용을 표기했다면 당선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심사위원을 맡은 천양희 시인은 뉴스페이퍼의 취재에 “자기 발상이 아니라도 남의 걸 빌려와 내 것으로 만드는 ‘차운시’라는 개념이 예전부터 있었다.”며 이번 당선작을 차운시와 유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당선작은 제목이나 과학적 근거를 빌려왔을 뿐 표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를 차용한 것이 아닌 ‘블로거의 창작물’을 표절했을 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는 블로거가 쓴 글이 순수한 과학적 사실만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블로거가 올린 글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인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가장 작은 별(Smallest-ever star discovered by astronomers)’을 번역한 것에 자신의 의견을 더한 것으로,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가장 작은 별(Smallest-ever star discovered by astronomers)’은 국제 학술지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에 발표된 논문 "'A Saturn-size low-mass star at the hydrogen-burning limit.'”를 대중들이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한 것이다. 즉 블로그에 올라온 글은 블로거가 자신의 사견을 더해 편집한 내용이므로 과학적 근거라고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A Saturn-size low-mass star at the hydrogen-burning limit.'의 일부.
'A Saturn-size low-mass star at the hydrogen-burning limit.'의 일부.

홍형진 소설가는 “'블로그 글 무단인용' 신춘문예 당선작 표절인가 아닌가”에서 “과학적 사실을 인용했다는 대목에도 따져볼 지점이 다분하다.”고 보았다. 고든의 블로그가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교과서적, 기술적으로 설명한 콘텐츠가 아니라 “이런저런 과학 내용을 나름의 시선과 필치로 풀어낸 내용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홍형진 소설가는 “나는 당선자가 가져온 여러 문장을 과학적 사실의 단순한 기술로 보지 않는다. 그 안에 오리지널리티가 있기에 문제 삼을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만약 당선자가 그 내용을 녹이고 변주해서 자신의 문장으로 풀어내거나 사전에 출처를 밝혔다면 문제 될 게 없겠으나 그러지 않았다. 작품의 30%에 달하는 분량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2019년의 글, 콘텐츠 생태계에서 이는 표절로 분류될 측면이 다분하다."고 보고 문학계에는 "어떤 행위가 표절인지, 어디까지 용인되며 어디부터 문제시될 수 있는지, 타인의 콘텐츠를 모티브 삼거나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명료한 기준이 없다."며 "세상이 열심히 진보하며 이에 대한 기준을 점차 내면화하는 동안 문학은 발맞추지 못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한편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인용 또는 표절과 관련된 지적 이외에도 당선작이 한 기성시인의 시와 정서를 이끌어나가는 방식 및 문학적 결이 유사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천양희 시인은 “해당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아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비슷하다면 결도 비슷하게 되어 있다.”며 “정서가 비슷하다고 해서 등단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전하기도 했다.

- '저작물 사용에 대한 감각 쇄신해야'

홍형진 소설가는 앞선 글에서 문학계에는 문학 작품 이외의 글을 '잡문'으로 보는 태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블로그나 게시판, 포스트 등에서 모티프나 아이디어를 얻는 일이 많지만 주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형진 소설가는 "문학 작품을 베끼면 표절임을 알기에 주의하지만 다른 종류의 글을 참고할 때엔 그렇지 않다. 그나마 단행본, 신문 기사 등을 활용할 때에는 눈치껏 출처를 명기하지만 블로그, 게시판 포스트 등은 다르게 대할 때가 잦다. 그 또한 누군가가 공들여 쓴 저작물이고 법적 권리를 가짐에도 낮춰 보는 것이다. 잡문 취급하는 심리 때문인 듯한데 자성해야 할 대목이다."고 보았다.

앞서 지난 2015년 한국문단의 뜨거운 감자였던 신경숙 표절 논란은 문학 권력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움직임을 불러 일으켰다. 각종 세미나를 통해 문학 권력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논의했고 주요 출판사는 문예지의 편집진을 교체하거나 새로운 문예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표절에 대한 의식, 저작권 사용에 대한 감각은 제대로 쇄신되지 못한 듯하다.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단 권력 논쟁이 일어났던 시기에 박민규의 데뷔작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거꾸로 보는 한국 야구사'란 인터넷 글을 참고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으나,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표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학술논문은 "6개 단어가 연속으로 나열될 경우 표절로 본다"는 명확한 기준이 있지만 문학작품에 이를 기계적으로 도입할 수는 없다. 개별 사안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인 판단을 떠나 도덕적인 관점에서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했다'는 감각이 제대로 있었다면 이번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작물 사용에 대한 감각 쇄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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