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SF&판타지 도서관 전홍식 관장, ‘2020년에 다시 만나요!’
[인터뷰] SF&판타지 도서관 전홍식 관장, ‘2020년에 다시 만나요!’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1.21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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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그리고 도서관은 고마웠어요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2009년 3월 동작구 사당동에서 문을 연 SF&판타지 도서관은 국내 최초의 SF 및 판타지 전문 도서관이자 팬들이 만들어낸 공간으로 주목을 받았다. 관장을 맡은 전홍식 씨가 자신이 수집한 7천여 권의 책을 모으고, 사용하지 않았던 지하 건물을 SF 팬들이 모여 닦고 꾸미며 시작된 것이다. 2012년 5월부터는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새로이 문을 열었고, 도서관의 기능에 더해 영화 상영회, 동호회 모임, SF 관련 강연 등 문화 공간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며 SF 팬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운영되어 왔던 SF&판타지 도서관은 18년 10월을 끝으로 약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긴 휴관에 들어가게 됐다. 전홍식 관장은 휴관을 알리는 공지에서 “2009년 3월에 문을 연 이래 약 9년 반 동안 많은 분께서 도서관을 찾아주셨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도서관의 모습과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며 “제가 바라는 도서관의 모습에 대해서 더욱 고민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고심 끝에 문을 닫게 된 SF&판타지 도서관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SF&판타지 도서관이 지향하는 새로운 공간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전홍식 관장 [사진 = 뉴스페이퍼]
전홍식 관장 [사진 = 뉴스페이퍼]

뉴스페이퍼에서는 전홍식 관장을 만나 SF&판타지 도서관의 개관부터 휴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새로운 도서관의 모습을 들어보았다. 전홍식 관장과의 만남은 12월 26일 합정역 인근 카페에서 이뤄졌다. SF&판타지 도서관이 이미 문을 닫아버린 다음이라 도서관의 모습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카페에 나타난 전홍식 관장의 모습은 고글이 달린 중절모를 쓰고 여행용 가죽가방을 든, 마치 스팀펑크 작품 속에서 튀어나온 듯 독특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 “SF&판타지 도서관, 책을 통해 사람들이 만나고 모이는 공간”

전홍식 관장이 도서관을 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08년 대전에서 열린 SF 컨벤션에 참석하고 나서다. 2008년 4월 대전 엑스포공원과 꿈돌이랜드에서는 ‘사이언스 페스티벌’이 개최됐고 부대 행사로 ‘대한민국 SF 컨벤션’이 열렸다. ‘대한민국 SF 컨벤션’에 참석하고자 전홍식 관장을 비롯한 팬들 30여 명이 함께 대전에 내려가게 됐다. 전홍식 관장은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행사장을 찾은 시민 대부분은 SF 컨벤션에 관심이 없었고 컨벤션의 방향이나 내용 또한 팬들이 원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 후 뒤풀이 자리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놀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전홍식 관장이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나서며 SF&판타지 도서관이 시작됐다. 9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서관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비어 있는 지하 창고를 빌려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장소를 꾸며 2009년 3월 개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홍식 관장 [사진 = 뉴스페이퍼]
전홍식 관장 [사진 = 뉴스페이퍼]

전홍식 관장은 도서관을 운영하며 가장 만들고 싶었던 것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만나고 모이는 공간”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도서관을 개관하자마자 강의와 영화 상영회, 작가와의 만남 등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열기 시작했다. 배명훈, 김보영 등 국내 유명 SF 작가들이 도서관을 찾기도 했다. 

전홍식 관장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사람과 만난 경험 중 인상 깊었던 것으로 야로슬라프 올샤  전 주한 체코 대사와 만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야로슬라프 대사가 우리나라 출판사와 함께 체코 SF 걸작선을 출간하게 됐고, 신문사 인터뷰를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전홍식 관장은 “보통 대사라고 하면 근엄한 느낌을 받는데, 야로슬라프 대사는 반팔 와이셔츠에 넥타이도 안 매고 편하게 오셨다. 인터뷰 중 자리를 비우신 적이 있는데, 어디가시나 했더니 앞에 편의점에 가서 콜라를 사오시더라.”며 “SF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모여 체코 대사와 마시고 떠들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SF&판타지 도서관이 지향하고자 했던 것은 ‘격식을 차릴 필요 없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이 지향점은 2012년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꾸준히 이어져왔다. 그러나 도서관의 규모가 커지고 일종의 복합공간이 되며 전홍식 관장은 지금의 도서관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도서관인지 의문에 빠지게 된다. 

- ‘규모 커졌지만 색깔 잃어버려...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

12년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도서관이 이사하며 장서 수부터 규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확장되었다. 7천 권 정도였던 장서는 3만 권에 이르게 됐고, 상영관과 강의실, 회의실 등 공간을 따로 꾸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전홍식 관장은 15년을 즈음해 “SF&판타지 도서관이 특별한 공간이 아니게 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도서관의 기능을 확대시키기 위해 넓은 공간을 찾아 연희동으로 왔지만 접근성이 떨어지게 되는 한계를 맞이했다. 도서관 일이 많아지다 보니 독특하고 즐거운 행사를 기획하기 어렵게 됐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다보니 SF 중심의 공간에서 추리, 무협, 판타지에 이르게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 전홍식 관장은 “일반인 뿐 아니라 저에게마저도 도서관은 SF 책과 판타지 책이 모여 있을 뿐이며,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게 됐다.”고 말했다. 

전홍식 관장 [사진 = 뉴스페이퍼]
전홍식 관장 [사진 = 뉴스페이퍼]

사당에서 연희동으로 옮겨왔을 때 자신보다 크게 느껴졌던 도서관의 공간은 더 이상 자신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더 이상 성장하거나 변화할 수 있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전홍식 관장은 “도서관을 마치기 전에 이전에 인터뷰한 것들을 살펴봤다. 맨 처음 인터뷰에서는 정말 좋아서 하는 게 느껴지는데, 뒤로 가면 의무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며 “도서관장이라는 자리에 집착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두 가지 욕구가 있어요. 하나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하나는 자기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 양쪽 다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적절하다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남에게 인정받고픈 욕구만 강하면, 그걸 저는 허영이라고 불러요.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는데 인정받고 싶어서 명품을 입는다거나 벤츠를 타려 한다거나. 그런데 내가 그런 상황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도서관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제가 하고픈 거만 했어요. 연희동 옮기고 삼년간은 재밌겠다 싶으면 그냥 해버렸죠. 상영회를 열었는데 한 명만 와도 둘이서 같이 영화보고 했고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마음 약해지고 더 인정받고픈 욕구가 강해진 것 같아요.”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고 힘들다고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 전홍식 관장은 여행지에서 중절모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무언가에 홀린 듯 중절모를 구입한 전홍식 관장은 중절모에 어울리는 복장을 맞춰 입기 시작했다. 인터뷰 자리에서 전홍식 관장은 고글이 달린 중절모에 가죽 반장갑을 끼고 ‘신비한 동물사전’에 나올법한 가죽 여행 가방을 들고 있었다. 앞주머니에서는 회중시계가, 손목에는 시계의 부품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스켈레톤 디자인의 손목시계가 튀어나왔다. 이런 차림새는 “내가 좋은 걸 하고, 내가 재밌어하는 걸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홍식 관장은 중절모와의 만남에서 초심으로 돌아갈 힌트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강의실에 제다이 옷을 입고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것을 보며 자신에게 즐거운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SF&판타지 도서관이 문을 닫고 열린 “다함께 SF! 한국 SF 컨벤션 2018”에서도 SF&판타지 도서관의 원래 취지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전홍식 관장이 만들어갈 SF&판타지 도서관은 어떠한 모습일까? 전홍식 관장은 먼저 ‘도서관’의 규모를 줄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장서의 수를 무한정 늘리는 것보다는 자신이 즐겁게 읽은 책, 의미 있는 책들을 큐레이션 해주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일종의 ‘북카페’ 형태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공간을 분리시켰던 연희동 SF&판타지 도서관과 달리 새로운 도서관은 공간을 분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도서관을 옮기며 가장 후회했던 것이 방을 나눈 것으로, “넓은 공간을 다 썼다면 훨씬 더 같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열람실 겸 로비와 작은 응접실, 창고 정도의 규모를 생각하고 있다는 전홍식 관장은 “약간 영국식의 신사 클럽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새로운 도서관의 개관은 2020년으로 예상된다. 준비 기간까지 합쳐 10년의 세월을 버텨온 SF&판타지 도서관인 만큼, 1년은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닌 셈이다. SF&판타지 도서관을 사랑해주셨던 분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홍식 관장은 SF를 좋아하는 것만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에 함께 참여해주셔서 좋았다. 와서 즐겨주신 분과 격려해주시고 도와주신 분들이 아니었다면 10년을 못 채웠을 거다. 전혀 보지도 못한 분들이 단지 SF도서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SF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와서 자리해줬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동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런 자리 만들고 싶고,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다.”

SF&판타지 도서관은 2019년 한 해 동안 문을 닫지만 전홍식 관장은 그만큼을 더 정열적으로 다양한 활동에 힘 쓸 예정이다. SF&판타지 도서관에서 내는 무크지 미래경은 5호를 발행할 예정이다. SF 팬들이 모여 SF에 대해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었던 SF 콘벤션은 2019년에도 이틀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전홍식 관장은 “많은 분들이 그 자리에서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참여해주시면 좋겠다. 강연을 하실 수도 있고 동인지를 판매하실 수도 있을 거다. 미래경에도 이러한 내용이 있다면 좋겠다, 고 이야기해주시면 최대한 재미있게 꾸려보겠다.”며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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