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1.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1.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9.01.2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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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1.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1.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우리 내부에는 '이야기'라는 오랜 인류의 서사적 문화 유전자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롤랑 바르트의 말대로, 이 세상의 이야기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즉 이야기는 신화 속에 현전하기도 하고, 콩트 속에도 있고, 단편소설 속에도 있고, 서사시 속에도 있고, 역사 속에도 있고...일상적인 대화 속에, 뜨거운 눈물 속에도 있다.

​이야기! 하니, 말빨이 세기로 유명한 구라들이 떠오른다. 그동안 '한국의 3대 구라' 하먼 황석영, 백기완, 그리고 유홍준을 쳤다.

​먼저 황구라, 그는 고딩 때 등단한 소년 문사로, 어지러운 시대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거나 자습시간에는 어김없이 불려나가 '삼국지' 이야기 등을 들려주던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단독으로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났다. 김일성도 한 이야기 하는 지도자였지만 그에게는 적수가 못 되었나 보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대단하십니다. 수령 동지!"하고 상대를 눕혀 놓고 이야기를 꺼내드는데 그때마다 김일성이 참지 못하고 "그래서?", "그래서 어캐됐어?"하고 주도권을 잡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바구 하먼 백구라 또한 빠질 수 없다. 만주벌판에서 성장하고 오랜 세월 야인으로 지낸 내력인지는 몰라도 그의 목소리는 통이 크고 용맹한 기운이 있다. 그는 전통적인 이야기의 대가인데다 가히 이야기의 장수라 할 만하다. 그가 집회현장에서 마이크를 한번 잡았다 하먼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물결친다. 노구에도 시위 현장을 지도하고 있는 그를 보먼 모두들 사기충천한 시위 군중이 되고, 의기 충만한 거리의 전사로 뛰어나가지 않을 수 없다. 여우의 골이 찢어지다니 그의 목소리는 사자후를 닮았다.

​그리고 구라하먼 유구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야기빨도 좋거니와 글빨 또한 풍성하다. 한번 이바구를 틀기 시작하먼 끝이 없고, 특히 지적인 맛이 있는 데다 듣도 보도 못한 숨겨놓은 일화를 꺼내드는 게 일품이다. 그동안 '문화유산' 하먼, 고궁이나 유적지, 박물관에만 있는 것이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주변의 나무 한 그루, 금 간 돌담장, 조각난 항아리, 서민 대중들의 일상생활 풍경과 주름진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모두 문화적 가치를 지닌 소중한 감상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의 덕이다.

​왜 이야기인가? 지금 우리는 시의 시대, 소설의 시대를 지나 이야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고중세 시대 구술문화에 기반한 시가 '맹목적인' 따라 부르기였고, 근대 시기 문자문화에 기초한 소설이 '일방적인' 서술이었다먼, 지금 여기 전자문화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전하는 대중서사로서의 이야기는 '상호적인' 교감에 기초한다. 즉 시의 주인공이 영웅 또는 귀족이고, 소설의 주인공이 지식인이었다먼,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SNS 댓글 문화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풀꽃과도 같은 국민 대중들이다.

​여기, 대중서사적인 이야기의 세계를 열어젖힌 사람으로 3대 구라에 못지않게 모든 약자들의 벗이었던 '대중적' 정치담론의 개척자 노회찬을 추가해야 한다. 이야기는 하나의 생명과 같아서 그는 갔어도 '오래 된 불판은 바꾸어야 한다'는 노구라,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나는 그렇게 본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