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천안중앙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제비꽃 여인숙”,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의자” 등의 시집으로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이정록 시인이 어느덧 데뷔한지 30년을 맞이했다. 30년 이상 꾸준하게 시를 써온 이정록 시인과 만나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으며 시를 잘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들어보는 자리가 있었다. 지난 10일 책방이듬에서는 이정록 시인의 산문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를 주제로 한 ‘저자와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는 이정록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슬럼프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으며 2부에는 장석남, 나태주, 김사인 등 다른 시인의 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3부에서는 시인의 대표작인 ‘의자’를 비롯한 여러 시의 비화를 다루고 있으며 4부에는 시에 대한 짧은 생각을 풀어냈다. 5부에는 삶에 관한 여러 생각과 사연이 있으며 6부에는 어머니 이의순 화가의 삽화가 실렸다.
산문집 제목의 ‘시내버스’는 있는 그대로의 버스를 말하지 않는다. 시내버스는 굽이진 길을 달려가는 시인의 마음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소의 상징이다. 이정록 시인은 시가 안 써질 때마다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러 가는 것’이다.

행사를 시작하며 이정록 시인은 작가로서의 자신이 1999년의 끄트머리를 통과한 ‘막차를 탄 세대’라고 이야기했다. 사용하는 언어부터가 2천년 이후 등장한 세대와는 감각이 다른 “수렵채취의 언어, 논두렁의 언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정록 시인은 자신이 ‘불안의 세대’라는 생각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작품을 쓴다고 말했다. 또한 시가 안 써지면 시내버스처럼 사람이 모인 곳으로 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발굴한다고 덧붙였다.
매일 작품을 써내려가다 보니 이정록 시인은 어느새 이십여 권의 책을 출간한 다작 작가가 되었다. 일부에서는 다작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이정록 시인은 ‘곤충이 알 낳듯이 작품을 쏟아낸다’거나 ‘누가 글을 써주냐’는 심한 말까지 들어봤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히려 “곤충의 알을 봐라. 하나하나 완벽하고 아름다운 구체를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자신의 문학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 매일 글을 쓰는 비결은 호기심과 궁금증, 설렘을 유지하고 과학적 상상력으로 접근하는 것

이정록 시인은 “그럼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어렵지는 않냐.”는 관객의 질문에 “문학을 계속 하는 데에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더라.”고 답했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있다면 매일 글 쓰는 것이 심한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은 남녀의 단추가 좌우 달리는 곳이 다른 게 왜 그런지 너무 궁금했어요. 인터넷 보면 나올 것 같은데 안 나오더라고요. 석박사들의 책을 한 26만 원 어치 사서 읽어보고, 전 세계의 단추 만드는 사이트에도 들어가 봤어요. 우리나라에 단추가 갑오경장 때에 들어오고 그 전엔 옷고름이었던 건 알겠는데 좌우가 다른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더라고요.”
이정록 시인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느낀 대상이 있을 때 그것을 관찰하고 그 끝에 얻은 과학적 발견이나 생각을 시로 표현한다고 밝혔다. 호기심을 안고 어떤 사물에 접근하다 보면 시를 쓰고 싶어지고, 쓰게 된다는 것이다. 의복과 관련한 많은 책을 독파해도 남녀 단추의 좌우 위치가 다른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중세시대 여성의 옷은 하인이 입혀주어서 좌우가 반대이다’, ‘남녀의 좌뇌와 우뇌 발달 정도가 달라 단추도 다른 것이다’, ‘여성은 아이에게 모유를 수유하여 방향이 반대이다’ 같은 관련 가설만 몇 개 알게 됐을 뿐이다. 그러나 이정록 시인은 의복 서적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한 경험이 있었기에 동화 “대단한 단추들”(한겨레 출판사)을 발표할 수 있었다.
‘뭐든지 오래 보면 다 시가 된다.’는 잠언도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정록 시인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이정록 시인에게 ‘시’란 한 대상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고 발견해낸 최종적 산물이다. 시는 결코 독립된 하나일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인이 시나 똑바로 써라”는 말도 잘못된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끝없는 독서의 습관과 다른 작가에 대한 질투심 있어야...

“잘 쓴 시란 무엇인가요?”, “좋은 시는 어떻게 씁니까?”라는 관객의 질문에 이정록 시인은 ‘잘 쓴 시’는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의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신 자신이 시를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이야기했다.
이정록 시인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은 넘어서고 싶은 사람, 질투가 나는 사람을 떠올리라고 일러주었다. 책을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질투심을 자극하는 시인을 떠올리고 그 사람의 작품을 읽으면 읽다 집어 던지는 한이 있어도 심리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록 시인은 시시각각 충격을 받고 골몰히 생각에 잠기다보면 어느새 늦은 저녁에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시를 못 쓴다는 생각에 마음이 졸아 들면 이정록 시인은 “시를 발표하지 않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혼자 열심히 시를 쓰면서 “선배한테 잘 하고 후배한테 밥 잘 사주고 하면서 문단의 활성화”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정록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힘든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 갈비뼈 속에 사람 이름 몇 명을 써놓고 심심하면 꺼내 보면서 정면대응”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시인’이기 때문이다. 이정록 시인은 “그리고 (갈비뼈를) 다시 심장에 넣어야 한다. 글 잘 쓰는 놈과 동행해야 한다.”며 자신은 “질투 나게 하는 놈을 나의 교과서” 삼아 시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행사를 마치며 이정록 시인은 시가 안 써지면 시내버스를 타는 자신의 이야기가 이날 책방을 찾는 이들이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써나가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2019년 한 해는 자신 안의 질투를 일으키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 찬찬히 읽어보고 스스로의 삶을 다 잡는 해로 만들 것이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