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고 지친 이들의 마음 울리는 영화 “시인할매”
서럽고 지친 이들의 마음 울리는 영화 “시인할매”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1.2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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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와 책 표지
책 표지와 영화포스터

2016년 출간됐던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는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야했던 곡성의 시골 할머니들이 한글 교육을 받은 후 쓴 시를 엮은 책이다. 책에 수록된 124편의 시는 문학적 기교나 예술성은 떨어질지 모르나, 할머니들이 진솔하고 투박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영화 “시인 할매”는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쓴 곡성의 시골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다. 남편을 잃고 자식을 도회지로 떠나보낸 상태에서 서로를 지탱해왔던 할머니들은 김선자 도서관장과 만나며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얻게 된다. “시인 할매”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된 할머니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들이 지닌 슬픔과 애환, 삶의 질곡을 되짚고,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우리의 어머니’를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영화 “시인 할매”가 2월 5일 개봉을 앞둔 가운데 언론배급시사회가 1월 29일 오후 2시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개최됐다. 이날 시사회에는 이종은 감독과 영화에 출연한 양양금, 윤금순 두 할머니, 할머니들을 옆에서 지탱해준 김선자 관장이 함께했다. 

- 할머니들의 3년간의 삶 담아낸 감동 다큐멘터리 영화 “시인 할매”

“시인할매”를 제작한 이종은 감독은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 이종은 감독은 “직관적인 언어지만 품고 있는 사연이 강렬했고, 평생을 까막눈으로 사셨던 분들이 어떻게 시를 잘 쓰게 되셨을까, 선생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 등이 2차적으로 궁금했다.”며 곧장 길작은도서관 김선자 관장에게 연락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마이크를 잡은 이종은 감독 [사진 = 김상훈 기자]
마이크를 잡은 이종은 감독 [사진 = 김상훈 기자]

길작은도서관은 마을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으로, 2004년 마을의 아이들을 돌볼 목적으로 설립된 사설 도서관이다. 길작은도서관 김선자 관장은 2009년부터 할머니들에게 한글과 시를 가르치며 할머니들을 옆에서 지탱해왔다. 

길작은도서관 김선자 관장 [사진 = 김상훈 기자]
길작은도서관 김선자 관장 [사진 = 김상훈 기자]

이종은 감독의 연락이 오기 이전, 김선자 관장은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의 흔적이 사라져버린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김선자 관장은 “곡성에서 16년 정도 살았는데, 이웃하던 할머니, 할머니들의 부음 소식을 듣는 일이 많았다.”며 “자녀분들이 어르신이 쓰시던 물건을 불태우고, 집을 허물거나 팔아버리는 과정을 보며 안타까웠다.”고 회상했다. 삶의 흔적이 쉽게 없어지는 것을 가슴아파했던 김선자 관장은 할머니들의 흔적을 최대한 남기고자 했고, 이종은 감독이 촬영을 제안해오자 “감사할 따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촬영이 시작된 영화 “시인 할매”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내린 눈을 쓸고 농사를 짓는 일상의 모습부터 도회지에 있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수줍은 아이처럼 소풍을 나가 봉숭아물을 들이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할머니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양양금 할머니 [사진 = 김상훈 기자]
양양금 할머니 [사진 = 김상훈 기자]

영화에 등장하게 된 소감이 어떻느냐는 질문에 양양금 할머니는 “기분이 너무나 좋아요.”라고 말하곤 “촌에서 살다봉게 말도 할지도 모르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영화에 나와갓고 너무나 기쁘고 머릿속에가 항상 담아져있을 것 같습니다.”는 양양금 할머니는 “나는 말을 할지를 몰라 가지구 못허것네. 이해들 하십쇼.”라고 말해 기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 ‘시인’ 할매보다 ‘시골’ 할매, 단절이 가져오는 외로움의 시간 담아

영화의 제목은 “시인 할매”지만 할머니들이 왜 까막눈이었고 역사의 과정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시인이 된 두근거림이나 시를 쓰는 모습보다도 할머니들의 일상이 모습이 중심이 된다. “시인 할매”지만 사실 상 “시골 할매”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구구절절하게 가지 말자.”는 감독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종은 감독은 영화를 찍으며 인터뷰나 증언 위주로 가는 것은 피하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의 출발점이 된 “시집살이 詩집살이”에서 이미 할머니들의 삶이 함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간담회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기자간담회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때문에 영화 “시인 할매”는 ‘시인’보다는 ‘할매’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옆 마을 청년과 결혼하고,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온 이들이다. 자식들을 도회지로 떠나보내고 외로이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곧 다가올 명절에 자식과 손주와 만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종은 감독은 “도시에 있는 젊은 세대, 중년 세대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잊고 지낸다.”며 영화에서 할머니들의 반대로 사용하지 못한 장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바로 어머니들이 홀로 식사하는 장면이다. 이종은 감독은 그 장면이야말로 “자식들이 어머니를 잊고 있는 동안 어머니들이 어떻게 살고 계신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적은 반찬과 밥을 물에 말아 먹는 모습을 보면 자식들이 가슴을 아파할 것이라는 할머니들의 반대로 인해 영화에서 사용되지는 못했다. 

영화 “시인 할매”는 단절이 가져오는 외롭고 혹독한 시간을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견뎌내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할머니들의 희로애락이 하나의 시로 표현되는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는 영화 “시인 할매”는 서럽고 지친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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