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2. '시적 과장' 또는 '시적 엄살'에 대하여
[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2. '시적 과장' 또는 '시적 엄살'에 대하여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9.02.02 22: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적 과장' 또는 '시적 엄살'에 대하여.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시적 과장' 또는 '시적 엄살'에 대하여.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흔히 시인을 가리켜 언어의 마술사라고 부른다. 마술사가 손재주로 사람의 눈을 호리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듯, 꼭 그렇게 시인은 언어라는 도구로 사람의 마음을 호리는 능력을 터득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시인은 사람의 마음을 호리는 불가사의한 매력magic을 지닌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지나치먼 진짜 속임수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마술사에게 속아 그걸 진짜로 오인하먼 안 되듯이, 꼭 그렇게 시인과 그가 쓴 시에 속으먼 안 된다. 시도 스스로를 속일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는 주관의 예술이고, 감정의 포도즙이고, 무엇보다 족장 시대 대중들의 눈을 멀게 하던 마술의 세계형식 아닌가. 아킬레스가 어디 그리스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단 말인가. 그도 불가피하게 전쟁에 휘말린 일개 영웅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때로 시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자, 나는 여기 시가 진실을 속일 수도 있다는 속성을 ‘시적 과장’이라는 말도 있지만 말하기 편하게 '시적 엄살'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즉 시에도 보험금을 타내려는 나이롱 환자가 거짓으로 아프거나 괴롭다고 의사를 속이는 것처럼, 시인 또한 꾸미고 부풀려서 자신을 과잉 포장하여 독자를 속이는 경우가 있다는 야그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나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여기, 시인 서정주가 23세 명절 밤에 썼다는 '자화상'의 서두부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게 바로 시적 엄살이 아니먼 무엇인가. 그는 부유한 집안의 귀공자였다. 그 스스로 말하고 있거니와 그는 "볏백이나 얌전히 추수하는 소지주의 아들"(서정주, <나의 문학적 자서전>)이었다. 일제 강점기, 빈한한 농촌에서 새 맥고모자에, 새 작업복에, 발 편한 새 신발까지 말쑥이 사 신고, 치레로 골통대까지 비스듬히 피워 물고, 그 심란스런 문학청년의 장발을 어깨에 닿도록 늘이고 다녔던 그. 그는 조선의 3대 지주의 하나였던 전남 고창의 대지주 김성수 집안의 농감 서광한 씨의 아들이었다. 즉 그는 비록 남의 집 마름일망정 부잣집 아들이었다. 

이런 그가 시인으로 떡하니 폼을 잡고 시를 쓰려니 갑자기 엄살끼가 도진 것이다. 에비는 종이었다고... 그러먼서 하는 말이 참 가관이다. 아, 씨파! 자신은 존나게 가난한 집에서 살아왔다는 거다. 이게 엄살 아니라먼 무엇인가. 이게 시적 거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순신도 양반 집안에서 유교적 교양을 익히먼서 무난하게 자라 난 사대부 양반의 자제인데, 그를 다룰 땐 무조건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 그를 데려다 놓는다. 독자를 속이는 방법이다. 그래야 동정을 얻는다. 그려야 인생 역전의 주인공으로 감동이 배가 되는 거다. 

서정주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렇게 시의 마술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는 잔뜩 분장을 하고 가난한 소년이 되어 독자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말은 거짓이다. 그런데도 시는 즐거움을 준다. 머 시는 언어의 마술사이자 미인이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본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