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문학 비평 왜 필요할까? 작가와 평론가 모여 이야기 나눈 요즘비평포럼
장르문학 비평 왜 필요할까? 작가와 평론가 모여 이야기 나눈 요즘비평포럼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2.0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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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요즘비평포럼이 열린 창비서교빌딩 2층 대회의실 [사진 = 김상훈 기자]
제6차 요즘비평포럼이 열린 창비서교빌딩 2층 대회의실 [사진 = 김상훈 기자]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젊은 평론가들이 모여 비평에 제시된 최근의 화두를 살펴보는 ‘요즘비평포럼’이 제6차 포럼을 열고 기존에 한국문학과 구분되었던 ‘장르문학’과 장르문학 비평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포럼의 제목은 “異fan(tasy)思判(이판사판) - 장르로서의 한국문학/비평”으로, 패널로는 노태훈 문학평론가, 배명훈 소설가, 이융희 문화평론가, 정소연 소설가 등이 함께했다.

​‘요즘비평포럼’은 젊은 평론가들이 모여 비평과 한국문학에 제기되는 최근의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다. 지난 5차례에 걸쳐 비평 주체의 변화, 폭력의 재현이 가진 윤리적 문제, 페미니즘적 작품 독해, 정체성 정치 시대의 비평 등을 다룬 바 있다.

창비 서교 빌딩에서 열린 제4차 요즘비평포럼 [사진 = 김상훈 기자]
창비 서교 빌딩에서 열린 제4차 요즘비평포럼 [사진 = 김상훈 기자]

이번 포럼의 주제는 장르문학으로, 한국문학은 장르문학과 의도적으로 구분 지어지며 서로 다른 것이 강조되어왔다. 순문학, 순수문학, 본격문학 등의 용어는 구분 짓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장르문학에 대한 문단의 관심은 꾸준히 있었으나, 요즘비평포럼 측은 이를 “제도적으로 승인된 문학의 외부이자 타자로 장르문학을 규정하고 주변화하는 위계적 태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요즘비평포럼은 “2010년대 들어 배타적이고 관습적인 기율을 통해 유지되어온 ‘문단’이라는 구성체 자체를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움직임이 전면화됨에 따라, 장르문학에 대한 태도 또한 의문에 붙일 필요가 요청된다.”라며 장르문학을 주제로 선정한 취지를 밝혔다. 이어 “다채로운 문단 안팎의 흐름에 비추었을 때 그간 문단이 자의적으로 규정해온 순문학이라는 호칭을 폐기하고, 그 호명이 지시하는 대상이 지금 이 시대에 가능한 여러 문자예술 중 하나의 장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매우 긴요해 보인다.”며 “순문학의 장르성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그동안의 비평이 고수해온 장르성은 문단을 쇄신해야 할 시대적 요구 앞에서 어떻게 변모해야 하는지, 여러 장르를 횡단하고 아우르는 비평은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고 전했다.

​제6차 요즘비평포럼에는 SF 소설가인 배명훈, 정소연 작가, 웹소설 연구자인 이융희 문화평론가, ‘순문학’ 평론가인 노태훈 평론가가 자리하여, 각자가 다른 장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와 평론의 역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 노태훈 평론가, ‘문학에는 구분과 경계 없다? 순문학 진영 솔직해지자’

​노태훈 평론가는 논의에 앞서 한국문학, 순문학, 순수문학, 장르문학 등에 대한 용어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한국문학과 장르문학이라는 용어를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소설을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노태훈 평론가는 문학이란 소설뿐 아니라 시, 에세이를 비롯해 문자로 된 형태의 예술작품을 통칭하는데, 유독 한국문학, 장르문학을 이야기할 때에는 소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문제적이라고 보았다. 또한 서브컬쳐 개념의 장르화된 작품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장르문학은 문학 앞에 장르라는 말을 붙이는 게 어색한 표현이며, 순문학이라는 용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정도의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부득이하게 장르문학을 SF, 판타지,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등 이야기의 소재나 문법이 유사한 일련의 계열을 묶어 부르는 용어로, 순수문학을 문예지를 발간하는 출판사들로부터 출간하는 작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정의한 노태훈 평론가는 “‘순문학’은 정말로 이상한 ‘장르’”이며 “우리가 늘 순문학이 훨씬 더 크고 본질적인 개념이라고 여기는 것은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순문학 자체가 SF나 판타지, 추리, 미스테리처럼 독자적인 문법을 가진 ‘장르문학’이며, 결말의 처리 방식, 인물을 대하는 방식, 순문학을 평가하는 방식 등에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노태훈 평론가는 “한국의 순문학 단편소설은 단지 짧은 이야기(short story)라고는 할 수 없는, 어쩌면 ‘시적인 어떤 것에 가까운 산문’일지 모른다고 저는 생각하고, 그것이야말로 완벽히 ‘장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발표 중인 노태훈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중인 노태훈 평론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노태훈 평론가는 발표 말미에는 순문학 독자와 장 안에 있는 이들을 향해 ‘솔직해지자’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노태훈 평론가는 “장르라는 것은 수용자 입장에서 보면 단지 취향이나 스타일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또 그 취향이라는 것이 사실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며 최근 순문학 장 안에서 ‘문학주의’의 입장으로 타 장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문학에는 경계가 없다, 모두가 다 문학 하는 사람이다, 문학에 어떻게 장르가 있고 어떻게 배척하겠느냐.”라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를 ‘시혜적 태도’라고 본 노 평론가는 “이런 태도가 오히려 장르문학을 배척하는 태도라 본다.”며 “나는 순문학만을 읽는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와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배명훈 소설가, ‘독법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한국문학의 독특한 독법 살펴봐

​배명훈 작가는 장르문학이나 문단문학에 속한 이들 모두가 편견 없이 글을 읽는다고 여기지만, 눈여겨보는 부분과 흘려버리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작품을 읽는 독법이 필연적이라고 밝힌 배명훈 작가는 이 독법이란 “자연발생적으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매체와 작가와 비평 사이에서 상호작용을 한 결과로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순문학의 특징들을 말하고 있는 배명훈 소설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순문학의 특징들을 말하고 있는 배명훈 소설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배명훈 작가는 문단문학과 비평에서 독특한 지점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인물에 대한 강조다. 극 장르와 연관이 있는 모든 서사 장르에서 인물은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문단의 경우는 인물의 비중이 무척 높다. 배명훈 작가는 이런 관점에서 작품을 보았을 때 ‘세계’를 아무리 잘 묘사하더라도 문학적 성취로서 평가받을 수 없으며, “세계를 담아내면서도 제대로 평가를 받으려면 세계를 인물 안에 환원시키는 수밖에 없다. 작가가 이런 전략을 고민하는 순간 문단의 눈은 중립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서사장르의 백미는 묘사라는 입장이다. 배명훈 작가는 “이름은 서사 장르이지만 어떤 작품의 가장 좋은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십중팔구 묘사 부분이 채택되곤 한다.”며 “문단의 서사는 완결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보았다. 세 번째는 결말을 내는 법의 특이점이다. 배명훈 작가는 “문단에서 폭발적 결말, 힘 있는 결말은 자아를 기준으로 내부로 폭발하는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SF에서 폭발적 결말은 세계로 나아가는 결말이다.”며 “한쪽 독법을 채택한 독자가 다른 쪽 작법으로 쓴 작품을 읽었을 때 결말을 못 찾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고 보았다.

​마지막은 철학을 우대한다는 것이다. 배명훈 작가는 “철학을 제외한 다른 학문이 작품에 등장할 경우 ‘복잡한 OO학적 지식’으로 언급한 다음 넘어가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태도는 “블랙박스에 넣어버린 다음 방치해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발표 말미에 배명훈 작가는 “문단문학, 순문학에서 어떤 미학을 가진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이 미학을 발달시키면 다른 예술 하는 사람도 결국 도움을 받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소설가가 이 미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간이다. ‘모든 소설가가 인물, 묘사 중심으로 기술을 마스터 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것이므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않는다면 존경할 만하다.”라고 전했다.

​- SF 비평의 필요성 강조한 정소연 소설가

​노태훈 평론가는 발표 도중 순문학의 장르적 지점에 대해 언급하며 최근의 순문학 작품들은 인물의 성별, 나이, 외모 등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정소연 소설가는 최근 순문학 작품 100여 편을 읽었다고 밝히며 “노태훈 평론가의 말을 듣기 전까지 순문학 작품이 인물과 성별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순문학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로서 어떤 부분을 생각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정소연 소설가는 독자가 발견할 수 없는 부분, 독자에게 발견되지 않는 부분을 짚고 발견하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라 생각한다며 “SF를 쓰고 있는 사람으로 어렵게 느끼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썼을 때 발견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고 토로했다.

​이는 SF 장르에 제대로 된 평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소연 소설가는 “SF비평이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순문학이나 다른 장르의 독법을 익힌 사람이 SF를 보게 되고, 개별적 독자들이 본인의 맥락에서 작품을 해석하고 있다.”며 “마치 그런 해석이 SF 비평인 것처럼 되는 상황을 많이 경험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문제는 순문학 평론가들이 SF작품을 평론할 때에도 발생하는 일이다. SF비평에서 발견되어야 마땅한 것들을 순문학 평론가들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표 중인 정소연 소설가. [사진 = 김상훈 기자]
발표 중인 정소연 소설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정소연 소설가는 “어떤 독자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떤 독자는 과학적 지식의 엄밀성만을 이야기하고 어떤 독자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것들이 정돈되지 못하고 나와 감상문과 비평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SF를 쓰는 입장에서 독자에게 전해지면 좋을 것들이 전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비평의 부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소연 소설가의 발표에 노태훈 평론가는 “SF에서 비평의 부재에 십분 동감한다.”며 “순문학에서는 모든 것을 흡수하고 우리에게 경계가 없다는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도 배명훈, 정소연 작가 등 장르문학 작가가 장르작품을 문예지에 발표하면 막막한 기분으로 작품을 읽고 당황하게 된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노태훈 평론가는 “예를 들어 작품에서 우주 이야기를 했다면 ‘우주의 과학적 지식을 보여준다’ 정도로 이야기하고 넘어간다. 이 사람은 어떤 성격이고 이 관계가 애뜻하다, 미묘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걸 보면 독법 자체가 순문학의 독법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정세랑 작가의 작가론이 최근에 써진 것을 언급하며 “정세랑 작가는 2000년대 초반에 활동을 시작해 장르문학 쪽으로는 오래 활동하신 분이고, 문단에서는 2014년 창비에서 장편소설상을 받으시며 활발하게 활동하신 분이셨다.”며 “당연히 여러 차례 이야기가 됐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세랑 작가를 대상으로 쓴 작가론이 처음이고 너무나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SF나 장르문학에서는 비평적 담론, 비평의 역할이 정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배명훈 소설가는 “저도 작가론이 없을 거다.”라며 SF에서 비평이라는 것은 거의 이뤄지질 않고 간혹 과학자들이 소설의 과학적 측면만을 다루는 것은 본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배명훈 소설가는 “SF 비평으로 등단하는 분이 나온다면 저는 얼마든지 환영할 것”이라며 “과거에는 우리가 지원금, 공모전 등에 지원하면 과연 뽑힐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진 걸 알고 있다. 다만 정말 포착될지는 아직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 비평팀 ‘텍스트릿’이 만들어진 까닭은? ‘쓸모없는 논문 너무 많아 답답’

​이융희 문화비평가는 장르문학 비평 담론팀 ‘텍스트릿’의 일원으로 포럼에 함께했다. 텍스트릿은 한국에서 이뤄지는 자생적 비평 담론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공동체로, 지난 18년 4월 발족한 이래 다양한 비평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텍스트릿의 활동을 설명하는 이융희 문화비평가 [사진 = 김상훈 기자]
텍스트릿의 활동을 설명하는 이융희 문화비평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이융희 문화비평가는 텍스트릿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장르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인정 욕구를 무시할 수 없으나, 한편으로는 기존의 연구와 논문이 너무나도 잘못되었기에 이를 제대로 정립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제대로 연구가 이뤄진 논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며, 심지어 연구자가 자신들이 종이책을 연구하고 있는지 인터넷 매체를 연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조차 잡지 못한 채 하이퍼텍스트, 사이버 문학이라는 식으로 퉁치고 연구해왔다는 것이다. 이융희 문화비평가는 “10년이 지난 지금조차 제대로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비평과 연구가 왜 만들어지고 왜 쌓이고 있는가. 그것들은 문학을 도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양적으로 누적하는 것 아닌가, 이런 반성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텍스트릿은 어떤 매체와 콘텐츠의 당사자라는 입장을 강조하는 편이다. 가입원 대부분이 웹소설이나 장르문학을 직접 쓰는 작가인 것은 당사자로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보자는 취지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융희 문화비평가는 “텍스트릿은 독자들과 소통한다, 작가들과 소통한다기보다는 이야기를 규명하고 독자와 작가 사이를 매개하려 한다. 사투리를 번역한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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