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7)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김병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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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하나

귀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비가 오면 사람이 그리워진다고 쓰려다가 지웠다.

빗방울이 보도블럭에 한 두방울 찍히면 우산을 쓴 얼굴 안으로 흙냄새가 밀려온다. 흙냄새는 발끝을 움츠리고 떨며 우산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 같았다. 아직 낮의 온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우산이라는 지붕 밑으로 간신히 피신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산살 안으로 밀려드는 바람이 제법 따듯하다. 그 속에서 내가 물렁한 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때가 있다.

습기는 아무래도 비 오는 소리보다 느리다. 그러나 그가 한 번 올 때면 그는 자신의 허벅지를 들며 진중하게 흘러든다. 순식간에 놀란 흙냄새들이 닭처럼 눈을 대록대록 굴리며 달아나고, 그 자리는 서늘한 바람이 가득하다. 나는 갑자기 혼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정류장에는 때마침 사람들이 없었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아직 좌석에 남아 있을 온기라도 더듬기 위해 괜스레 엉덩이를 놀린다.

행복한 날들은 이미 내가 모르는 어느 하루에 온통 쏠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 유독 그렇다. 예감도, 암시도, 눈짓도 없이 그날은 온다. 묵시록적인 생각까지는 들지 않지만, 눅눅한 빨래의 무게감을 조금이나마 겪어본다. 자신만의 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는 사람들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어깨에 얹어본다.

그러나 내가 얹는 무게는 결국 내가 자초한 일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비 오는 날이면 하늘을 쳐다본다. 햇살이 맑은 날, 우리는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하늘의 넓이와 하늘의 깊이를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비가 올 때서야 우리는 하늘이 많은 비를 내릴 정도로 넓음을, 두 눈 가득 담아도 모자랄 정도로 넓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야가 탁 트인달까.

‘유재하가 생각날 때마다 비가 왔다’는 말은 차라리 믿고 싶은 거짓말이다. 영화를 보기 이전부터 그랬다. 그 영화를 보고 나니, 이 거짓말은 차라리 달콤하게 느껴진다. 유재하를 들으며 나는 왜 비를 생각했을까.

비에도 깃털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람을 타고 휘어져 내리는 빗줄기들을 생각한다. 날 수는 없지만, 지상의 한 구석으로 낮게 흘러내리는 비에게서 나는 비의 자세를 생각하고, 비의 체온을 생각한다. 만일 비에게도 체온이 있다면, 그것은 유재하의 음악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스며들었으니 저토록 고요한 거울을 만들었으리라. 저토록 진실한 말들을 짜올렸으리라. 실없는 생각에 혼자서 웃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아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요새 많이 나약해진 모양이다.

빗물 고인 웅덩이 안에 잔잔히 퍼지는 파문들로 인해 이따금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며 일어나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흐린 날의 저녁은 유달리 늦게 오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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