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눈물의 왕’ 노작 홍사용과 만나러 가는 길... 손택수 시인과 함께한 노작홍사용 문학관 탐방기
[탐방기] ‘눈물의 왕’ 노작 홍사용과 만나러 가는 길... 손택수 시인과 함께한 노작홍사용 문학관 탐방기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2.05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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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과 함께한 노작홍사용 문학관 탐방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손택수 시인과 함께한 노작홍사용 문학관 탐방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반석산의 나무들은 푸른 이파리를 모두 떼어내고 월동을 지내는 중이었다. 깊은 잠에 빠진 단단한 나무들을 멀리서 보고 있자면 그 너머로 아스라하게 감색 건물이 보인다. 추위를 참으려 몸을 한껏 웅크린 반석산을 등진 노작홍사용 문학관이다.

​노작홍사용 문학관은 홍사용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목적으로 2010년에 개관한 공간이다. 홍사용은 1900년에 태어나 신극운동에 앞장섰으며 일제에 저항하여 3.1운동에 참여했다. 3.1운동 실패 이후에도 문예지 ‘백조’를 창간하고 사상지 ‘흑조’를 기획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러던 중 1939년 “김옥균전”을 집필하다 일제가 검열에 나서자 붓을 꺾어버렸으며 1947년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반석산에 오르면 그리 높지 않은 곳에서 정갈한 산소와 시비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잠에 취한 나무, 색 바랜 건초와 함께 몸을 뉘이고 있는 것은 홍사용의 묘와 시비이다. 낙엽 부서지는 소리 말고는 미동도 없는 겨울, 언덕바지 정도 높이에 있는 낮은 묘역이 홍사용과 무척이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중고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홍사용은 자신을 ‘눈물의 왕’이라 자청했기 때문이다.

노작 홍사용의 묘역을 손택수 시인은 '누릉'이라 불렀다. 사진 = 뉴스페이퍼
노작 홍사용의 묘역을 손택수 시인은 '누릉'이라 불렀다. 사진 = 뉴스페이퍼

“저는 이곳을 누릉(淚陵)이라고 부릅니다.”

​노작 홍사용 문학관에서 만난 관장 손택수 시인은 홍사용 묘역을 가리키며 일러주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홍사용은 자신이 왕이지만 ‘눈물의 왕’이며 ‘세상 어느 곳이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라고 말한다. 어째서 ‘눈물의 왕’일까를 생각해보면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가 1923년으로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시기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눈물의 왕’이라는 말에는 3.1운동에 직접 참여한 노작 홍사용이 그 안에서 맛봤을 많은 슬픔과 좌절이 배어있다.

홍사용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설명하는 손택수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홍사용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설명하는 손택수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손택수 시인의 말대로 홍사용의 묘지는 가장 낮은 위치에 기거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는 ‘눈물의 왕’이 잠든 왕릉처럼 느껴졌다. 또한 문학관의 앞마당에 있는 홍사용의 문학작품을 새겨둔 네 개의 석벽은 왕의 업적을 치하하는 구조물처럼 느껴졌다.

​당초 기자가 노작홍사용 문학관에 방문한 것은 작년 7월 관장으로 취임한 손택수 시인에게 올 한 해 사업 계획을 들어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손택수 시인에게 들은 노작 홍사용의 행보와 문학정신에 흥미가 돌았고, 더욱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손 시인의 뒤를 냉큼 따라나서 문학관의 이모저모를 뜯어보게 되었다.

  

노작홍사용 문학관의 전시물을 소개해주는 손택수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노작홍사용 문학관의 전시물을 소개해주는 손택수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2층 전시관은 근대극 운동을 펼친 극단 ‘토월회’의 이야기를 담은 방과 문예지 ‘백조’의 이야기를 담은 방, 추모의 방, 기억의 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방에서는 홍사용의 문학 활동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조건 속에서 문학을 공부한 홍사용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조금이라도 가늠할 수 있는 장소였다. 손택수 시인은 사실 홍사용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을 모르고 살았던 인물이라고 말해주었다. 홍사용이 가난을 겪은 것은 독립운동 자금을 대거나 다른 활동을 하면서부터이다. 손 시인은 사정이 어려워지자 홍사용이 되레 기뻐했다고 말하며 혀를 내둘렀다. 가난해졌으니 오히려 낮은 곳에 머물며 그곳에 있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것이다.

2층 전시관은 백조, 토월회, 기억의 방, 추모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 뉴스페이퍼
2층 전시관은 백조, 토월회, 기억의 방, 추모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 뉴스페이퍼

‘확실히 왕이라 자청할만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사용에게 있어 문학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백조’의 방에서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 방에는 홍사용이 문예지 ‘백조’를 창간했으며 ‘백조’에 실린 작품에는 3.1운동 실패에 대한 절망과 애수가 반영되어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많은 이들의 아픔, 슬픔과 함께하고 있는 잡지인 것이다.

​‘백조’의 방을 둘러보고 나니 손택수 시인이 문학관을 운영하려는 방향이 홍사용의 정신과 상통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문학관이 문학작품, 문인을 저장만 해놓는 장소가 아니라 주민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문학적 체험을 제공해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주민과 만나고 소통할 여러 계획으로 들뜬 듯 보이기도 했다.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나가 시민들의 사진이나 시화 등을 전시하고, 거리에서 음악 연주와 시 낭송을 선보이고, 문화적으로는 다소 허술한 신도시에 출판을 교육하여 문학의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 했다.

노작홍사용 문학관 1층에 마련된 극장. 사진 = 뉴스페이퍼
노작홍사용 문학관 1층에 마련된 극장. 사진 = 뉴스페이퍼

그렇기에 문학제가 열리거나 기획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면 1층에 마련된 극장에 많은 주민을 모시는 것이 최우선이다. 가장 낮은 곳에 머물며 많은 이와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 눈물의 왕 홍사용이라면, 지역 주민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일 먼저 모색해보는 노작홍사용 문학관은 정말로 그의 정신을 잇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택수 시인은 “문학관이 소통하지 않으면 무덤 속의 관이 되어버린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 말대로 밖에서 사람과 만나고 그들을 위한 일을 생각하는 문학관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손택수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손택수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문학을 하는 사람은 한 번쯤 ‘문학의 본령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궁극적으로 문학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일까? 나 역시 문학을 공부할 때에 이러한 고민을 했다. 지금 시대에 내가 문학을 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누구에 대해서 어떤 목소리를 내고, 무엇을 써야하는가. 노작홍사용 문학관은 이러한 고민을 한 번쯤 환기해볼 수 있는 장소였다. 홍사용처럼 낮은 위치에서 문학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길을 관철한 그의 행보는 귀감이 된다.

명절이 지나면 머지않아 봄이 찾아온다. 그때쯤이면 산에는 초목이 우거지고 주민들은 누릉 주변을 거닐고 있을 것이다. 낮지만 슬프지 않을 때, 낮지만 활기가 느껴지는 때에 누릉을 다시 한 번 찾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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