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타자'... 곽효환 시인, 책방이듬 낭독회에서 시집 "너는"에 대해 이야기해
'너는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타자'... 곽효환 시인, 책방이듬 낭독회에서 시집 "너는"에 대해 이야기해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2.11 2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우리’라는 말은 ‘나’와 ‘너’가 마치 하나로 이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우리'라는 결합은 영속적이지 못하며 '나'와 '너'는 분리되어있는 주체일 수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 ‘너’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때때로 절대로 ‘나’가 가닿을 수 없는 대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곽효환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곽효환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지난 해 10월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출간된 곽효환 시인의 시집 “너는”은 ‘너’라는 타자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1월 27일에는 책방이듬에서 제36회 일파만파 낭독회를 열고 곽효환 작가와 독자들이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는 김효은 평론가(시인)가 맡았다. 이날 곽효환 시인은 자신의 시집 “너는”을 영영 가닿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느껴지는 ‘너’라는 존재에 대해 쓴 시집이라고 소개했다. 

곽효환 시인은 1996년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 3’을, 2002년 시평에 ‘수락산’ 외 5편을 발표하여 작가로 데뷔했다. 시집으로는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가 있으며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깊이 들어왔다” 등의 저서를 펴냈다. 현재 대산문화재단에 재직하고 있으며 다수의 대학에 출강 중이다. 

시집 "너는". 사진 = 육준수 기자
시집 "너는". 사진 = 육준수 기자

시집 “너는”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곽효환 시인은 1부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었지만 모르고 잃어가고 있는 민중성을, 2부에서는 자신의 세계관을, 3부에서는 ‘너’라는 존재를 향한 끊임없는 고백을, 4부에서는 일상에서 느낀 반상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의 제목이 “너는”인 이유에 대해 곽효환 시인은 “시인이 발화하고 나머지 문장은 독자에게 전부 맡긴다.”는 생각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지나치게 설명조로 시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너’에 대해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구석을 하나라도 더 열어두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곽효환 시인이 ‘너’라고 지칭하는 주요한 대상 중 하나는 북방이다. 곽 시인에게 북방은 우리가 잃어버린 문학의 근원 중 하나이며 민중의 비극이 서려 있는 공간이다. 곽효환 시인은 북방에 대해 연구하여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을 펴냈으며 두 번째 시집 “지도에 없는 집”을 쓸 때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하기도 했다. 여행에서 곽효환 시인이 가장 큰 슬픔을 느낀 지점은 이름도 알 수 없는 필부필녀의 모습이었다. 곽 시인은 그들이 “내일이 어찌될지도 모르는 가운데에 일기를 썼더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더라.”며 그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이야기했다. 

시에 이 같은 북방에 대한 생각이 반영되다 보니 곽효환 시인은 일부 독자들로부터 “아버지가 북에서 왔냐.”는 소리까지 들었다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후부터는 제가 전주 출신임을 밝히게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곽효환 시인에게 북방은 막연한 그리움을 줄 뿐 아니라 회복해야 하는 공간이다. 이는 오래 전에 가지고 있던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뜻이 아닌 정신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곽 시인은 자신에게 북방은 모든 것이 시작되는 ‘시원’의 공간‘인 동시에 결코 내가 될 수 없는 타자적 성격을 띤 공간이라고 말했다. 

곽효환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곽효환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그렇기에 결국 북방은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너’와 이어진다. 시집의 서문에서 곽효환 시인은 “너는, 타자이면서 우리이다. 시원이면서 궁극인 너는 끝내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타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라는 말로 묶일 때에는 한 몸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너와 나는 타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곽효환 시인은 아무리 먼 공간이 되었어도 북방은 절대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흔들리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곽효환 시인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은 시 ‘나는 고려 사람이다’에 담겨있다고 말하며 시를 낭독했다.

우즈베크어를 모르는 나의 국적은 우즈베키스탄 
거주지는 경기도 안산 러시아 마을 염료 공장 쪽방촌 
내 아들은 직업을 찾아 모스크바 근처 어디에 
늙은 에미는 타슈켄트 외곽 고려인촌에 산다 
함경도에서 연해주로 그리고 중앙아시아로 
다시 연해주로 모스크바로 서울로 유전하는 나는 
나의 조국을 모른다 

- 시 ‘나는 고려 사람이다’ 일부

곽효환 시인은 “시가 어렵다고 하는 이야기가 서사성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가 시인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타인과의 교감점을 상당 부분 잃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곽효환 시인은 “역사적 사실을 꺼내 제 감성, 목소리를 입힐 때에 더 많은 사람과 교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시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를 쓸 때에 “서사성에 서정성을 입히기 때문”에 곽효환 시인은 비평가들로부터 ‘서정적 리얼리스트’라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곽효환 시인은 이조차 자신이 처음 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 백석, 이용악 등 북방에 근원을 둔 시인으로부터 계승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곽효환 시인(좌)과 김효은 평론가(우). 사진 = 육준수 기자
곽효환 시인(좌)과 김효은 평론가(우). 사진 = 육준수 기자

김효은 평론가는 “보통 끝을 노래하는 시인이 많다.”며 “가보지 않은 곳을 달관하는 시인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선생님(곽효환 시인)은 길 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풍경을 껴안으며 시를 쓴다.”며 “풍경과 자아가 함께 조화를 이뤄 내면과 외면이 시 안에 고스란히 있다. 울면서도 다시 일어나 가야하는 시인을 보여주시는 듯하다.”고 말했다. 

또한 곽효환 시인은 3부의 시를 언급하기도 했다. 곽효환 시인은 북방이라는 공간은 곧 실연의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시집 “슬픔의 뼈대” 때부터 연애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방뿐 아니라 수많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시를 쓰게 됐다고 덧붙였다. 곽 시인은 그렇게 쓴 시이기 때문에 딱히 독자들이 더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나, 무척이나 많은 지지를 받았으며 심지어 주변 사람으로부터 ‘네가 사랑시를 이렇게 잘 쓰는 줄 몰랐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표제작인 “너는” 역시 3부에 수록된 시이다. 

나는 
너는, 나는 
많이 싸웠어야 했다 
불확실한 위험과 시련에서 등 돌리지 말고 도망치지 말고 
그 차오르는 말들을 
그 세세한 기억들을 
그 기적같은 감정을 지키기 위해 
한때 가까웠던 우리는 
더 많이 더 열렬하게 싸웠어야 했다. 
아무데도 없으나 어디에나 있는 
너라는 깊고 큰 구멍  

- 시 ‘너는’ 일부

이야기를 마치며 곽효환 시인은 “글 쓰는 사람은 천성적으로 아웃사이더 같다.”며 자신의 감성은 언제나 패자를, 잃어버린 자를 향해 있다고 이야기했다. 곽효환 시인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천성인 것 같다며, ‘너’라는 존재가 “궁극적으로 아무데도 없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있는 존재 같다.”고 전했다. 

곽효환 시인이 독자의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곽효환 시인이 독자의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행사는 질의응답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행사가 끝난 이후 곽효환 시인은 독자들의 책에 사인을 해주거나 간단한 상담을 해주는 등의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