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아트센터 강연 :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 2강 이토록 다정한 비명, 프란시스 베이컨 
[두산 아트센터 강연 :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 2강 이토록 다정한 비명, 프란시스 베이컨 
  • 남유연 객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1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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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남유연 객원칼럼니스트] 기괴하고 잔인한 풍경과 소재들. 몇몇 매니아들에게만 인기가 있을 것 같은 미술가들이 있다. 그 대표주자는 프란시스 베이컨, 고깃덩이들 같은 신체와 뒤틀린 괴물들을 강렬한 색채로 그린 1990년대 표현주의 작가이다. 눈 뜨고 보기 힘든 참혹함이 깃든 그의 작품들이 어째서 사람들을 매혹시킬까? 어떤 연유로 베이컨은 보편적으로 ‘예쁘다’, ‘편안하다’고 받아들여지기 힘든 작품들을 그리게 되었을까? 

Study after Veláz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 1953.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 연구, 1953.프란시스 베이컨은 교황의 초상 시리즈를 오랫동안 여러 장 그렸다. 비명을 지르는 듯한 교황의 입과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유명한 그림. 17세기에 활동한 유명한 스페인 대가 벨라스케스의 교황을 재해석한 작품.
Study after Veláz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 1953.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 연구, 1953.프란시스 베이컨은 교황의 초상 시리즈를 오랫동안 여러 장 그렸다. 비명을 지르는 듯한 교황의 입과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유명한 그림. 17세기에 활동한 유명한 스페인 대가 벨라스케스의 교황을 재해석한 작품.

 두산아트스쿨의 강연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은 아트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의 작가에 대해 매주 강연한다. 이 강연은 홍콩 크리스티의 스페셜리스트 정윤아 강사가 진행한다. 2월 14일에 진행된 두번째 강연은 프란시스 베이컨에 관한 강연이었다. 저번주는 제프 쿤스에 대한 강연이었으며, 2월 21일, 3월 14일에는 각각 조지아 오키프와 데이비드 호크니를 주제로 강연이 이어질 것이다. 강연의 주제가 되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높은 가격으로 낙찰되었다.

고기를 들고 서 있는 프란시스 베이컨. 1952년, 사진가 John Deakin이 찍은 사진이며, 보그 잡지에도 실렸었다.
고기를 들고 서 있는 프란시스 베이컨. 1952년, 사진가 John Deakin이 찍은 사진이며, 보그 잡지에도 실렸었다.

 ‘고기’라는 소재를 이토록 자주 쓴 작가의 이름이 ‘베이컨’이라니, 귀에 쏙 박힌다. 그는 도축장의 고기를 들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을 정도로 고깃덩어리라는 소재를 즐겼다. (베이컨은 사진 찍히는 것을 나름 좋아해서, 기꺼이 사진가들의 모델이 되었고 그 사진들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가 비참하고 잔인한 그림들을 그리게 된 이유에 대해 강사님이 설명하며 강의가 시작되었다. 추측건대, 그 이유에는 성적 지향성, 세계대전을 두 차례 겪은 세대라는 점, 그리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라는 세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는 동성애자였는데, 당시 영국은 동성애가 범죄로 취급되었고, 베이컨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겨야 했을 것이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1909년에 태어나 1992년에 사망한만큼, 그는 1914년에서 1918년에 걸친 제1차 세계대전과 1939년에서 1945년에 걸친 제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다. 인간의 목숨과 삶이 얼마나 가볍게 취급되고 잔혹하게 스러져가는지 직접 목격한 것이다. 이에 더해 그는 어머니 같았던 보모의 죽음과 연인들의 연이은 죽음을 경험했다. 그는 평소에 필연보다는 ‘운’이나 ‘우연’을 믿었으며, 순전히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 위해 오락으로 도박을 즐기기도 했다. 전쟁 중에는 폭탄이 어디에 떨어지는가, 총탄이 어떤 방향으로 날아오는가, 라는 운에 의해 생사가 갈리기도 했으니 그의 성향은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본인의 성향과 경험이 그의 죽음에의 욕망, 타나토스적 욕망을 만들어낸 기반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의 생과 작품들은 죽음과 가깝지만, 동시에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공포스런 작품에는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발버둥치며 삶을 살아내려는 끈질김, 강사님의 말에 따르면 ‘명랑함’이 있다.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 십자가 책형 발치의 인물들을 위한 세 개의 습작들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 십자가 책형 발치의 인물들을 위한 세 개의 습작들

위의 작품은 1930년대 중후반부터 이어진 베이컨의 슬럼프의 끝을 알리며 런던 미술계를 강타한 작품이다. 작가는 그 누구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괴물들을 그려내어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장면을 미술계에 선사한 것이다. 일단 예술가는 독보적으로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면 주목받기 쉽다고 한다. 여기서 도대체 무엇이 명랑하단 말인가, 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림 속 쨍한 주황색 바탕이 명랑하다. 강렬하고도 밝은 주황색이 푸르스름한 회색의 괴물들을 강조하여 그림을 더욱 괴기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축한 느낌을 제거해서 절망에 다소간의 명랑을 부여해준다. 괴로울 때 차라리 비명을 지르고, 슬플 때 차라리 울어버리는 것은 그 감정들을 꾹꾹 눌러 참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다. 이 그림은 작가가, 그리고 당시의 사람들이 느꼈던 고통과 비명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사람들은 괴물들이 나를 대신해 비명을 질러주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꼈을 수도 있다.

강사님은 그림의 형식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세 점의 그림은 하나의 세트라고 할 수 있다. 서양화에서는 ‘삼면화(triptych)’이라는 것이 있다. 삼면화는 보통 서양 문화에서 기독교 종교화에 쓰이는 형식이다. 전통적인 삼면화에서, 왼쪽과 오른쪽의 두 그림은 중간 그림에 경첩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양 옆의 그림을 문 접듯이 안으로 접을 수 있다. 살짝만 접어서 세워 둘 수도 있어 제단 위에 올려놓는 경우가 많았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십자가 책형 발치의 인물들을 위한 세 개의 습작들>은 삼면화의 형식을 가진다. 어릴 때부터 종교적인 시선으로 삼면화를 봐온 서양인들은 그림의 내용이 어찌되었든 베이컨의 삼면화 앞에서도 왠지 경건해지고, 경각심을 느끼며, 자신이 지닌 원죄를 참회해야 할 것 같았을 것이다.

Merode Altarpiece, Robert Campin, 1427. 메로데 제단화, 로버트 캉팽, 1427.
Merode Altarpiece, Robert Campin, 1427. 메로데 제단화, 로버트 캉팽, 1427.

위의 그림은 전통적인 삼면화이다.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중앙 그림의 흰색 옷을 입은 천사가 붉은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에게 그녀가 예수를 임신했다고 알려주는 장면이다. 오른쪽 그림의 남자는 예수의 명목상의 아버지 요한이다.

Painting, 1946. MoMA가 소장 중.
Painting, 1946. MoMA가 소장 중.

이번에 볼 그림도 1940년대 그림이다. 이 그림은 한 번쯤 봤을 수도 있을 만큼 유명한 그림인데, 프란시스 베이컨의 고기 소재 사용을 엿볼 수 있으며, 그림이 그려진 시기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만큼 허망함과 공포가 잘 드러난다. 상체의 일부와 하관만 남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양복을 입은 인간의 형상은 정치인과 정치로 인한 참혹한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듯하다. 베이컨은 도살장 안에서 도축된 소를 그린 렘브란트의 명작을 기반으로 뒷배경의 해체된 소를 그렸다. 앞에서 보았던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재해석해 그린 것, 그리고 렘브란트의 작품을 연구한 것을 보면, 프란시스 베이컨은 미술사를 꿰고 있었으며 다양한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후세에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데미안 허스트는 <Painting, 1946>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작품<Empty King>을 내놓기도 했다.

Empty King, 2007. 거꾸로 도축된 소의 형상. 'Painting, 1946'의 배경에 있는 소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Empty King, 2007. 거꾸로 도축된 소의 형상. 'Painting, 1946'의 배경에 있는 소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필자 본인은 강의를 듣기 전에 <Painting, 1946>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묘사된 고기의 뼈와 살점들은 사진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짝거려 물기를 머금은 듯한 붉은 물감과 푸르스름한 뼈의 묘사가 실제보다 더욱 징그럽고 충격적이었다. 그 괴기스러움과 끔찍함 속에서 필자는 베이컨이 느꼈던 고통과 허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고통을 묘사한 방식에서 그의 일기장을 엿본 것 같았고, 그림은 공포스러웠으나 동시에 아름다웠다. 전쟁은 나의 뜻과 상관없이 일어나고, 전쟁 중에는 내가 노력한다고 살아남을 수는 없으며, 순식간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부서지고 있는 땅 위를 기어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물론 예전부터 베이컨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필자와 달리 너무 그림이 끔찍하지 않은가, 라고 의문을 표시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베이컨은 생전에 그런 이들에게 현실이 그림보다 잔혹한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필자가 베이컨의 그림을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은 까닭은 베이컨이 현실의 본질을 탁월하게 잡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강사님은 예술가들이 사물이나 풍경, 사건의 본질을 잡아내는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가 정말 멋진 풍경을 보고서 그것을 아무리 좋은 사진기로 찍어도 그 사진은 우리가 그 풍경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재현해내지 못한다. 어딘가 부족하다. 감동을 자아내려면 무언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왜곡을 통해 그 무언가를 직접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솟도록 해야 하는데, 예술가들이 바로 그 일을 한다. 완벽한 재현보다 오히려 왜곡된 그림이 본질을 더 탁월하게 잡아내어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가령, 프란시스 베이컨이 좋아했던 예술가인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가, 같은 구도로 찍힌 해바라기 사진보다 더 큰 감동을 자아낼 것이다.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triptych, 1969. 루시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 삼면화, 1969.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triptych, 1969. 루시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 삼면화, 1969.

 위의 그림 또한 왜곡을 통해 인물의 본질을 잡아냈다고 여겨지는 그림이다. 2013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무려 1500억에 낙찰된 작품으로, 베이컨과 예술적 교류가 활발했던 친구이자 철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시안 프로이트를 그린 삼면 초상화이다. 분명 실제 루시안 프로이트가 저렇게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가로서의 프로이트의 고뇌와 정신세계를 짐작케 하는 작품이다. 인물에 적용된 면의 강조와 인물의 뒤에 그려진 선적인 기하학적 도형의 조화가 인상 깊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1960년대가 베이컨의 전성기로 일컬어지며, 이 시기에 그는 자화상과 연인들, 친구의 삼면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잔인하고 적나라한 그림들을 보기 힘든 분들이라면 초상 삼면화를 보면 어떨까 한다. 뒤틀린 얼굴들은 징그럽지 않고 은근히 친근하며, 인물의 고뇌와 생각이 다채롭고도 안온한 색들로 뒤섞여 표현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관객들은 삶 속의 필연적 공포를 직시하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공포와 끔찍함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보다 인정하고 비명을 지르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분명 우리는 고깃덩어리이고 잠재적인 시체입니다. 정육점에 가면 동물 대신 내가 그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의외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정육점에 들어가서 고깃덩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살피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다른 생명을 잡아먹고 사는 삶에 깃든 모든 공포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도 저번 강연에서처럼 위트 넘치는 정윤아 강사님께 프란시스 베이컨의 더 많은 작품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여기서는 글의 흐름 상 싣지 못했지만 프란시스 베이컨의 연인들에 대한 사랑과 그 연인들에게서 받은 영향이 그림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듣기도 했다. 강사님의 강연을 듣다 보면 관객으로써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든다. 강연은 무료이며, 2008년부터 지금까지 평론가나 아티스트를 초청하여 강연을 진행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현대미술 강의이며, 매년 약 1,500명 이상이 수강한다. 아쉽게도 이번 강연은 마감되었다고 하니 두산아트스쿨의 다음 강연은 꼭 노려보자. 아쉬움이 남는다면 유튜브를 통해 지난 강좌를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두산아트센터 유튜브: www.youtube.com/doosanartcenter)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 강연 일정표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 강연 일정표

 

남유연 칼럼니스트 

이력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Pratt Institute Fine art - Painting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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