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문학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최선영 평론가, 서아책방에서 독자들과 만나
“혼자 하는 문학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최선영 평론가, 서아책방에서 독자들과 만나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2.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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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올해 데뷔한 신예 작가와 만나 신춘문예,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점을 질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수원에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서아책방은 지난 9일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최선영 평론가가 함께하는 ‘책방에서 만난 작가’ 행사를 진행했다.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최선영 평론가가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최선영 평론가가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초청 작가인 최선영 평론가는 201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평론 “'너'에서 '너들'로, '광주'를 되불러오기-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최 평론가는 현재 명지대 대학원 박사 과정을 진행 중이다.

​행사를 시작하며 최선영 평론가는 “사실 문창과가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 낭만적이진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많은 문학 습작생들은 치열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선영 평론가는 이날 독자들과 만나는 시간이 생경하고 기쁘게 느껴진다고 말하며 이야기의 운을 뗐다.

​- 문학은 외로워서가 아닌 외롭지 않기 위해 하는 것, 혼자 한다는 생각 버려야...

​최선영 평론가는 문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에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이야기했다. 문학은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라 외롭기 싫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서만 문학을 하다 보면 한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설혹 집에서 글만 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해도 “집안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한정적”이므로 부러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최선영 평론가는 강조했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접하고 자신의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선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최선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그렇기에 최선영 평론가는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라는 독자의 질문에 “글을 쓰게 된 계기보다는 ‘계속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첫 글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쓸 수 있지만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의 계기가 오히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선영 평론가는 “제가 글을 끝까지 쓸 수 있었던 계기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그리고 비판을 하건 칭찬을 하건 제 옆에서 글을 봐준 사람이 언제나 있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현대사회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나 혼자 그것을 견딘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한 노력이에요.”

​또한 최선영 평론가는 습작생들이 집안에서 글을 쓰다 보니 행동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며 (글을) 쓰시고 책장에 넣어두시는 분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글에 대한 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최선영 평론가는 어디든 글을 투고하라고 이야기했다.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상태로 정진하면 되고, 심사평에서 한 줄이라도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 자극으로 글을 쓰라는 것이다.

​- 문학은 재현의 예술, ‘새로움’의 의미도 정확히 이해하라

​최선영 평론가는 시, 소설, 평론 등 모든 문학은 ‘재현’이라고 말하며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여러분이 본 것에 대한 무의식 등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어떤 방식으로 재현할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문학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최선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최선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최선영 평론가가 평론을 쓴 한강 소설가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소년이 온다”는 몇 십 년 전 광주 5.18 민주화 운동에서 죽은 소년 동호를 ‘너’라고 호명한다. 최선영 평론가는 “‘너’는 기본적으로 앞에 있을 때 이야기하는 말”이라며 “작가가 그 아이를 너라고 불렀을 때에 그 아이는 현재로 온다.”고 이야기했다. 한강 소설가는 동호를 현대로 호출하는 방식으로 재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평론가는 글을 쓸 때에는 자신이 생각한 아름다움을 쓰는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의 종류가 무엇이며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선영 평론가는 영화 “사울의 아들”을 언급했다. “사울의 아들”은 아우슈비츠 시체처리반에서 일하는 주인공 ‘사울’이 죽은 아들의 장례를 시도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최선영 평론가는 이 작품에서 감독이 홀로코스트를 재현하는 방식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홀로코스트의 끔찍함 속에서 사울은 죽은 자들의 시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시야가 굉장히 좁다. 그렇기에 영화의 화면은 굉장히 좁으나 아들만은 뚜렷하게 그려진다. 최선영 평론가는 “사울은 그 안에서 윤리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사람”이라며 때문에 영상이 항상 사울의 뒤를 따라간다고 말했다.

영화 "사울의 아들" 포스터(좌)와 "어둠에서 벗어나기"의 표지(우).
영화 "사울의 아들" 포스터(좌)와 "어둠에서 벗어나기"의 표지(우).

이 영화에 대해 철학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은 “어둠에서 벗어나기”라는 저서를 쓰기도 했다. 감독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면서 영화비평문의 성격을 띤 책이다. 최선영 평론가는 이전까지 아우슈비츠를 그린 수많은 작품은 그 안에서 일어난 잔혹함을 그렸으나 사울의 아들은 전혀 다른 재현의 방식을 택했다며 “위베르만은 ‘사울의 아들’을 보고 ‘아, 맞아. 아우슈비츠는 저런 거였지.’라고 머리를 맞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사울의 아들”처럼 감각을 일깨우는 작품이 “재현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최선영 평론가는 젊은 작가에게는 항상 ‘새로움’이라는 테제가 따라다닌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새로움은 스토리나 소재가 아닌 감각적 재현의 새로움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단적으로 스토리는 다 똑같더라도 각각의 작품에서 재현되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선영 평론가는 한강이 차기작에서도 과거의 인물을 ‘너’라고 호명하면 자신은 그 책을 보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재현하는 게 비윤리적이라 재현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라며 최선영 평론가는 “여러분이 문학할 때도 이러한 재현에 대한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선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최선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와 함께한 이날 ‘책방에서 만난 작가’는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의 질의응답을 끝으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