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아트센터 강연 :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 3강 찬연한 고독을 아로새기다, 조지아 오키프
[두산 아트센터 강연 :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 3강 찬연한 고독을 아로새기다, 조지아 오키프
  • 남유연 객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2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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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남유연 객원칼럼니스트]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색색의 선과 면들. 이 그림은 추상화된 꽃을 그린 그림이다. 누군가 꽃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한참 생각했을 정도로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작은 사물을 매우 자세히 들여다보고 확대하면 그것은 더 이상 그 사물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추상적인 것으로 바뀐다. 꽃을 오래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것처럼, 조지아 오키프는 자신의 삶과 마음도 고요히 응시하고 표현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굳혔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몇 안 되는 소위 ‘여류 작가’이지만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성별과 관계없이 그녀 자체로 대작가이다. 그림들이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는 선정적인 루머로 유명한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세계는 그리 단순하거나 얕지 않았다. 두산아트스쿨의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 강연에서 미국 모던 회화의 선구자인 조지아 오키프의 생과 작품들에 대해 배웠다. 

Grey Lines with Black, Blue and Yellow, 1923. 회색 선들과 검정, 파랑, 그리고 노랑, 1923.
Grey Lines with Black, Blue and Yellow, 1923. 회색 선들과 검정, 파랑, 그리고 노랑, 1923.

두산아트스쿨의 강연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은 아트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의 작가에 대해 매주 강연한다. 이 강연은 홍콩 크리스티의 스페셜리스트 정윤아 강사가 진행한다. 2월 21일에 진행된 세번째 강연은 조지아 오키프에 관한 강연이었다. 제프 쿤스,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해 1강과 2강이 진행되었으며, 3월 14일에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주제로 마지막 강연이 이어질 것이다. 강연의 주제가 되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높은 가격으로 낙찰되었다.

조지아 오키프의 연인이자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그리츠가 찍은 사진. 강하면서도 섬세하고, 고독하면서도 이미 고독을 받아들인 것 같은 야생적인 미가 넘친다.
조지아 오키프의 연인이자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그리츠가 찍은 사진. 강하면서도 섬세하고, 고독하면서도 이미 고독을 받아들인 것 같은 야생적인 미가 넘친다.

강사님의 말에 따르면, 조지아 오키프는 여성 차별이 지금보다 더 심했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스타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화가가 되기로 무려 열 살에 결심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영특했던 오키프는 유명 사진가이면서 유명 갤러리 운영자였던 알프레드 스티그리츠와 연인이 된다. 이미 유명한 예술가였던 스티그리츠는 오키프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었다. 스티그리츠의 사진은 도시와 도시 속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유명하고, 지금 봐도 세련된 구도를 자랑한다. 사진은 순간의 예술이며 예술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건물을 옮기거나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피사체를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구도가 세련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키프를 적극적으로 피사체로 활용했고, 나아가 파격적인 그녀의 누드 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연인 스티그리츠를 빼고는 오키프의 삶과 작품을 생각할 수 없으며, 그녀는 그로 인해 덕도 보았지만 힘든 일도 많이 겪었다.

Blue Ⅰ. 초창기의 수채화 작품. 번지는 효과와 추상적인 기법이 돋보인다.
Blue Ⅰ. 초창기의 수채화 작품. 번지는 효과와 추상적인 기법이 돋보인다.

위에서 보았던 오키프의 <Grey Lines with Black, Blue and Yellow, 1923. 회색 선들과 검정, 파랑, 그리고 노랑, 1923.>을 바라보면, 재료가 유화임에도 불구하고 수채화를 쓴 듯 물에 번진 듯한 느낌이 난다. 필자는 실제로 오키프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거대한 그림을 멀리서 보면 어떤 매체를 사용한 것인지 헷갈린다. 그녀는 초창기에 수채화를 적극 활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물을 기반으로 하는 수채화를 먼저 접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양에서는 물감 위에 물감을 불투명하게 덧칠할 수 있는 아크릴과 유화가 흔하다. 서양에는 수채화 물감의 가격도 비싸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수채화가 익숙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수채화에 익숙하지 않아 매우 독특하다고 느낀다. 여하간 오키프의 초창기 작품을 봤을 때, 그녀는 동양의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 영향이 이후 유화로 그림을 그릴 때에도 나타난다. 

Music Pink and Blue Ⅱ
Music Pink and Blue Ⅱ

단지 동양적인 번짐 효과를 잘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조지아 오키프만 한 스타 작가가 될 수는 없다. 오키프의 탁월함 중 하나는 터부를 깨뜨리는 파격에 있었다. 당시에는 분홍색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미술계의 암묵적인 금기가 있었다. 그녀는 이 금기를 깨부수고 적극적으로 분홍색을 작품에 활용했다. 강사님의 설명을 듣고 생각해보니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분홍색 옷을 입은 사람의 초상이 아닌 한 분홍색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금기를 무시하는 대담함에 더해서 그녀는 소재를 실제에 있을 법하게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구상’과 구체적인 사물을 묘사하지 않고 감정이나 느낌을 면과 색, 선 등으로 표현하는 ‘추상’을 넘나드는 능력을 가졌다. 오키프의 꽃 연작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꽃 연작에는 나뭇잎, 나무 등의 소재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꽃들과 나뭇잎은 현실의 꽃, 나뭇잎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완전히 똑같게 그리려는 것, 즉 ‘재현’을 최종 지향점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그림 속 식물들은 뭔가 실제의 식물들보다 더 매끄러울 것 같다. 그림의 어느 부분은 사물이 아닌 마음 속 풍경처럼, 혹은 기하학적 도형들처럼 보인다. 그저 색이나 면만 그린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구상과 추상을 하나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강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필자는 예전에 오키프의 작품을 보면서 ‘마술 같다’ 라고 느꼈던 것이 바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오키프의 능력을 경험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Flower Abstraction, 1924(좌), Autumn Leaves, Lake George, 1924(우)
Flower Abstraction, 1924(좌), Autumn Leaves, Lake George, 1924(우)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을 직접 본 마법 같았던 경험을 조금 더 정리해서 얘기해보겠다. 그림을 멀리서 볼 때에는 꼭 꽃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구조와 입체가 보인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유기물인 것 같은데, 꽃이라고 생각하면 꽃의 일부인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사물인지는 몰라도 구체적인 사물을 그린 그림, 구상화라고 생각이 된다. 자연에 있을 법한 무언가. 그러나 앞으로 다가설수록 구체적인 부분들이 증발하고 증발한 자리에 물체의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새로운 색이 들어찬다. 그림에 가까이 서서 그림을 보면 물체의 구조와 입체가 사라지고 시야가 색으로 가득 차게 된다. 물처럼 쏟아지거나 천처럼 서로 부드럽게 감싸는 색과 면들 속에서 더 이상 ‘이것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은 힘을 잃고 ‘내가 지금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혹은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감정은 무엇일까’라는 새로운 의문을 품게 된다. 구상에서부터 추상까지, 물질에서부터 정신까지의 여행을 오키프의 그림 하나로 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지아 오키프의 꽃 연작에 대해서 그 꽃이 여성의 성기라는 섹슈얼한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해석을 거부했다고 한다. 작가 본인이 거부한 해석을 왜 많은 책들과 미술관에서 정설처럼 설명되어지는지, 신기한 일이다. 오키프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작품을 남성 중심적 시각으로만 해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꽃 연작과 선정적인 해석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되면서, 오키프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 필자 자신의 시야가 좁아져 버린 것 같았다. 부끄럽게도 다른 유명 작품, 그녀가 작품들을 다룬 방식, 파격적인 시도들은 잘 알지 못했다. 작가가 위작이라고 주장했는데도 결국은 진짜로 판명된 천명자 작가의 <미인도>가 잠시 생각났다. 

그녀는 꽃 그림뿐 아니라 풍경화도 그렸는데, 풍경화에서도 그녀의 독창성과 파격이 드러난다. 그녀는 <Lake George Reflection>이라는 풍경화 작품을 전시를 할 때마다 가로 세로, 여러 방향으로 다르게 전시함으로써 각 전시에서 관객들이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작품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30억 달러 정도의 고액으로 팔렸을 정도로 좋은 평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Lake George Reflection 1921-1922 의 다양한 전시 방식.
Lake George Reflection 1921-1922 의 다양한 전시 방식.

 오키프는 23년 연상의 연인 스티그리츠와 결국 결혼을 하게 되고, 1924년에서 1928년까지 뉴욕의 최고급 거주지에서 행복한 생활을 한다. 스티그리츠의 갤러리인 291 갤러리에서 소개하던 정밀주의(Precisionism) 예술가들과 교류하기도 하면서 미국의 산업과 건축에 주목하여 도시 풍경과 교량, 기계 등을 주로 그렸던 그들에게 영향을 받아 도시의 풍경을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 스티그리츠가 오키프보다 더 어린, 사진가 지망생이었던 여성과 바람을 피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뉴 멕시코라는 사막 지역에서 고독하게 지내며 그림 작업에 몰두한다. 처음에는 여행으로 뉴 멕시코로 떠나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뉴 멕시코에 정착하기에 이른다. 

My Front Yard, Summer, 1941
My Front Yard, Summer, 1941

그녀는 뉴 멕시코에 정착한 후에 사막의 건조한 기후와 황량하고 헐벗은 땅을 주로 그렸다. 실제로 뉴 멕시코 지역의 땅은 갖은 풍화작용으로 붉고 누런 땅이 드러나 있다고 한다. 이 풍경화도 완전히 구상적인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세밀한 묘사를 통해 산이 실제처럼 표현되어 있지는 않고, 땅과 산을 그린 붓의 흐름이 추상적인 무언가를 그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그림을 보면 황량하고 고독하면서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 고독조차 아름다워지는 듯하다. 

Ram's Head White Hollyhock and Little Hills
Ram's Head White Hollyhock and Little Hills

그녀는 생의 말년에는 동물 해골 연작을 그리면서 지금까지 펼쳤던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으며, 이 연작으로 미술계에서 다시 한 번 호평을 받았다.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그려왔던 꽃은 물론, 뉴 멕시코의 황량한 들판을 작품 속에 녹여냈고, 그에 더해서 쓸쓸하고 고독했던 자신의 생을 대변하는 듯한 동물 해골들을 자신의 작품에 넣으면서 동물 해골 연작을 그렸다. 그림의 전면에 직접적으로 나선 거대하고 도발적인 동물 뼈들은 죽음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면서도 아름답다. 뼈의 곡선들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나타나듯 우아하고 매끄러우면서도 살아 있는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의 상징인 꽃이 함께 등장함으로써 죽음을 더 이상 두렵거나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뉴 멕시코라는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땅에서 그녀는 정신적인 고양을 느꼈음이 틀림없다. 그녀의 말년의 그림들은 초현실주의적인 느낌도 든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초현실주의의 느낌도 좋아하고, 공허하면서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작품들을 좋아하기에, 동물 해골 연작을 꼭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을 디지털 이미지로 접하는 것도 좋지만, 그림의 실물 크기에서 느껴지는 압도감이나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색채는 디지털 이미지에 드러나지 않기에, 기회가 되면 직접 그림을 보러 전시회에 가는 것이 그림을 즐기기에 좋은 방법이다. 

젊어서는 꽃을 거대하게 확대하여 그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쉽게 지나쳐버린 작은 꽃들의 외면 받은 아름다움을 표현했던 조지아 오키프. 오키프는 고통스러운 생의 막바지에는 뉴 멕시코에서 실제 동물 뼈를 수집하며 동물 해골 연작을 그렸다. 살이 모두 사라지고 뼈만 남은 동물들을 보면서 고독하게 살아갔을 말년의 조지아 오키프는 무엇을 그렇게 오래, 그리고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표현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까.

언제나 강의에 집중을 잘 할 수 있도록 유쾌한 입담을 늘어놓으시는 정윤아 강사님께 조지아 오키프의 더 많은 작품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정윤아 강사님께서는 강연을 듣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은 그림들을 보여주고자 많은 그림을 준비해 오셨다. 그 많은 그림들을 칼럼을 읽는 독자들에게 보여드릴 수 없어서 정말 아쉽다. 여기에 실은 그림은 아주 일부로, 오키프는 생전에 꾸준하고 성실한 작품활동을 통해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 많은 작품들 중 적어도 하나 정도는 취향 저격을 당할 만한 작품이 있을 것이다. 강연이 이루어지는 연강홀의 커다란 스크린과 많은 점의 그림들을 보면서 강사님의 강연을 듣다 보면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든다. 강연은 무료이며, 2008년부터 지금까지 평론가나 아티스트를 초청하여 강연을 진행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현대미술 강의이며, 매년 약 1,500명 이상이 수강한다. 아쉽게도 이번 강연은 마감되었다고 하니 두산아트스쿨의 다음 강연은 꼭 노려보자. 아쉬움이 남는다면 유튜브를 통해 지난 강좌를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두산아트센터 유튜브: www.youtube.com/doosanartcenter)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 강연 일정표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 강연 일정표

 

 

남유연 칼럼니스트 

이력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Pratt Institute Fine art - Painting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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