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4. 가면을 벗기고 환부를 도려내자
[연재]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4. 가면을 벗기고 환부를 도려내자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9.02.23 0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4. 가면을 벗기고 환부를 도려내자.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늘샘의 문예담론 ‘목소리’ - 4. 가면을 벗기고 환부를 도려내자.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예나 지금이나 세계는 신화로, 가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신화는 일상어parole가 되었다 일상어가 된 신화의 대표가 바로 거인신화 또는 영웅신화다 영웅은 지금도 살아서 나를, 우리를 꼼짝 모하게 하고 경배cult와 찬양을 바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문단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하여 경배와 찬양이 넘치는 한국문단의 사원에서 향불이 끝없이 타오르고 있는 영웅적인 문사는 외배와 미당, 금동이었다 특히, 소설계의 거인을 치자먼 우리는 주저없이 그를 들고, 그것은 머 '한국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동인문학상'이 상징하는 것처럼, 그는 가히 한국문단의 올리브 가지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문단의, 그것도 스스로 '근대문학의 선구자'라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그가 이광수, 서정주보다 더한 '깡디드'한 순악질 친일문인이었다먼 믿것는가 여기, 신화의 미망이 사라지고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은 실로 어처구니없고 어리둥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966년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의 선구적 업적에 이어 임헌영 선생을 비롯 뜻있는 국민들이 힘을 모아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친일문인들의 행적을 낱낱이 찾아내 적시, 고발하기까지 우리는 그동안도 까맣게 몰랐다 머 신화의 가면에 들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다만 영웅들이 부족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것처럼, 꼭 그렇게 우리의 우러르는 문사들 또한 민족을 위해 붓을 들었던 영웅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미 밝혀진 바대로 그토록 똑똑했다는 이광수가 '우리는 영원히 일본을 이길 수 없다'며 친일의 불가피성을 논하며 민족을 배반하였고, 그토록 시를 잘썼다는 시인부락의 족장 서정주가 순수문학을 옹호하고 민족문학을 운운했다지만 사실은 순수를 가장하여 강자의 시종을 자임하고 민족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는데 급급했던 친일시인이자 야비한 기회주의자였다먼 우리는 그 어떤 모럴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러나 이것도 김동인의 경우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후미히토, 그는 자발적으로 '북지황군위문단'을 자청하고 붓뚜껑을 열어 친일을 넘어 부일을 일삼은 노골적인 반민족소설가였다 무론 사회의 공기이자 희망으로서 문인의 소명을 다하기 어려웠던 저 참혹했던 일제 말기, 그에게만 비난의 돌멩이를 던질 수는 없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친일을 넘어 부일을 일삼은 그를 두고 경배와 찬양을 바치는 것을 넘어 그를 기리는 문학상을 제정, 운영해 오고 있다니... 

따지고 보먼 굴종은 이미 처음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1919년 2월 8일 '동경유학생독립선언문'의 발표가 있던 바로 그날, 김동인은 한국최초의 순문예지 <창조>를 창간하였다 여기, <창조>에 전재된 그의 최초의 소설 '약한 자의 슬픔'에서 자신의 몸을 망친 강한 자를 사랑해야 한다며, 강한 자에 대해 굴종해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노예의식을 드러냈다 운명에 무너진 자연주의적 태도와 색정에 기반한 탐미주의,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예속문학으로서의 굴종의 길, 그것은 이미 예고된 길이었다 그러니까 조선의 청년들이 적지에서 조선 독립의 기운을 북돋우던 그때, 즉 하나의 저항서사로서 세계사적 의의를 지닌 국내 3.1혁명의 불을 당긴 저 근대의 민족서사가 발흥하고 있던 그때, 그는 골방에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항복선언문을 읽으먼서 자기기만에 빠져 있던 것이다  

예술에는 오락기능, 교훈기능과 더불어 마약과도 같은 마취기능이 또한 있으니 여기, 대중기만적인 영웅신화가 또한 그렇지 않은가 지금 '민족'과 '독립'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국가이념의 초석으로 세운 지 100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친일행위가 너무도 명백한 반민족 작가를 민족의 신전에 모시고 향불을 피우고 있다 이는 무고한 선열들을 욕뵈이고 양심적인 작가들을 모욕하는 일이니,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난 그렇게 본다 

...... 

 

김상천 문예비평가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