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4년 차 접어든 문래동 책방 ‘청색종이’ 김태형 시인을 만나다
[인터뷰] 4년 차 접어든 문래동 책방 ‘청색종이’ 김태형 시인을 만나다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9.02.2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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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청색종이, 사랑방 · 독립서점 책방에서 ‘우리 책 파는 서점’으로
문래, 예술활동 가능한 분위기부터 조성되어야
문래동 골목길에 위치한 서점 청색종이 [사진 = 김상훈 기자]
문래동 골목길에 위치한 서점 청색종이 [사진 = 김상훈 기자]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김태형 시인이 운영하는 책방이자 출판사인 ‘청색종이’는 16년 1월 22일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예술창작촌에 자리 잡으며 탄생했다. 철공소가 집결해있던 문래동에는 임대료 상승을 피해 떠밀려온 예술인들과 값싼 임대료로 자신의 작업실을 열고 싶은 예술인들이 모여들었고, 자신의 출판사를 차리고 싶었던 김태형 시인 또한 문래로 찾아든 예술인 중 한 명이었다. ‘청색종이’는 동네 사랑방 서점이나 희귀본 중고 서점, 시집 전문 서점 등으로 알려졌고, 문래동의 독특한 장소로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청색종이’가 문을 열고 3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새로운 동네 책방들이 전국 곳곳에 자리를 잡으며 작은 책방 붐을 일으키기도 했고, 문래동에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가 미치기도 했다. 약 3년의 세월 동안 문래동을 지켜온 ‘청색종이’에도 여러 변화가 이뤄졌다. 뉴스페이퍼에서는 ‘청색종이’ 김태형 시인을 만나 ‘청색종이’와 문래동의 변화와 향후의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 ‘동네 사랑방 서점’, ‘희귀본 중고서점’에서 ‘우리가 만든 책’ 파는 서점으로

김태형 시인의 ‘청색종이’는 처음부터 서점을 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아니었다. 10대 후반부터 출판사를 차리고 원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던 김태형 시인은 40대에 접어들며 비로소 출판사를 만들고자 움직이게 된다. 처음에는 사무실을 차릴 마음이 없었으나 첫 책을 만든 후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임대료가 싼 문래동을 찾아오게 된다. 책방을 열면 출판사에서 낸 책을 소개하고 다른 작업도 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인터뷰에 응해준 김태형 시인과 청색종이 서가 [사진 = 김상훈 기자]
인터뷰에 응해준 김태형 시인과 청색종이 서가 [사진 = 김상훈 기자]

15년 12월부터 공간을 준비하고 16년 1월 오픈식을 진행하며 문을 열게 된 ‘청색종이’에는 김태형 시인이 소장하고 있던 4천여 권가량의 책이 매대에 오른다. 이후 ‘청색종이’는 중고책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희귀본, 초판본 등이 있는 서점, 문래동 일대 사랑방 같은 서점으로 알려지게 된다. 김태형 시인은 “1, 2년 할 때까지만 해도 손님이 찾아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고, 희망 같은 것도 갖고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서점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 것은 2년가량이 지났을 시기다. 김태형 시인은 “많이 지치게 되었다. 손님맞이에도 한계가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청색종이’는 다른 카페형 서점과 달리 오로지 중고책, ‘청색종이’ 출판사에서만 출간한 책을 판매하고 있다. 커피나 주스, 맥주 같은 것을 판매하고 있지도 않다. 책방을 찾는 사람이 늘었지만, 대부분은 가볍게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매출은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서점 주인과 대화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만 늘어 출판을 비롯해 다른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을 많이 소비하게 된 것이다. 김태형 시인은 “일에 지치다 보니 시도 많이 못 썼다.”며 “찾아주는 이들을 매몰차게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고 말했다.

중고책 서점으로 ‘청색종이’를 운영하는 것에도 한계에 도달했다. 맨 처음 ‘청색종이’ 서가를 장식했던 책들은 모두 김태형 시인이 가지고 있는 헌책들이었다. 언론 등에 희귀본이 많은 서점이라고 소개되자 수집가들이 ‘청색종이’를 찾아왔고 박스 단위로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 일이 반복되자 서가가 보잘것없어졌다는 것이다. 김태형 시인은 “처음에는 신간을 들였는데, 신간이라는 게 소화가 안 되면 바로 적자로 누적된다.”며 어려움이 컸다고 이야기했다.

김태형 시인은 이러한 어려움을 겪은 후 서점이 좀 폐쇄적이 되었다며 “일이 많을 때에는 문을 좀 닫기도 하고, 손님이 와도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웃음)”라고 말했다. 외주 일도 많이 하게 되고, 강연 요청이 있으면 무조건 달려가며 책방 및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팔아 이윤이 남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4년 차에 접어든 ‘청색종이’의 목적은 출판에 주력해 ‘청색종이’에서만 접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신간을 들여와 판매하는 것에는 큰 매력이 없고 가지고 있는 책도 거의 소진되어버렸기에, 출판사에서 만든 독특한 수제본과 기획 도서 등을 내보내는데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김태형 시인은 “출판사에서 20종 정도 책을 출간했고 수제본도 5, 6종 정도 만들었는데, 상당수가 다른 서점에 들어가고 있지 않다.”며 “열심히 책을 만들어서 그 책으로 책방을 꾸미는 게 앞으로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서점 '청색종이'는 수제본이 만들어지는 작업실을 겸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서점 '청색종이'는 수제본이 만들어지는 작업실을 겸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출판사 ‘청색종이’에서 만들어낸 책은 약 20종 정도로, 이 중에는 직접 손으로 만들어낸 수제본 6, 7종이 포함되어 있다. 윤동주나 백석, 김소월, 이상, 정지용 등 유명 시인들의 수제본이 출간되었으며, 김영랑, 이육사 등의 수제본도 출간 예정이다. 김태형 시인은 “공장에서 쓰는 도구나 기계를 일절 쓰지 않고 삐뚤빼뚤하더라도 손으로 만들어낸 느낌을 주는 것이 수제본의 매력이다.”라며 표지를 염색하느라 손가락이 물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서점 ‘청색종이’ 한편에는 염색에 사용한 도구들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이 수제본은 출판사이자 서점 ‘청색종이’의 주요 콘텐츠인 셈으로, ‘청색종이’는 조만간 생존 시인의 수제본 시선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현재 작업 중인 수제본은 문정희 시인의 시집으로, 김태형 시인은 “생존해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의 기념할만한 시집이나 절판된 시집이 있다면 수제본으로 복간하는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청색종이’는 아동문학이나 산문선, 시선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송재학 시인의 “기억들”이나 조영주 시인의 동시집 “마술”, 전영관 시인의 산문집 “좋은 말” 등 20여 편에 달한다. 봄에는 클래식 음악 에세이가 출간될 예정이고, 미술사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미술 관련 도서 작업도 이뤄진다.

김태형 시인이 수제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김태형 시인이 수제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김상훈 기자]

- ‘문래, 예술 활동 가능한 분위기 조성되어야’

16년 1월 정식으로 오픈했던 ‘청색종이’는 이듬해 여름인 17년 5월 원래 있던 문래예술촌을 떠나 길 건너 공간으로 이주해왔다. 문래동에 젊은 층을 노린 술집이나 밥집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청색종이’ 주변에도 비슷한 가게들이 생기며 월세 인상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김태형 시인은 주변에 밥집과 술집이 들어오고 밤늦게까지 손님들로 북적이는 것을 보며 조금이라도 월세를 절약하고자 공간을 옮기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17년 5월 새로이 자리 잡은 공간은 옛날식 주택이 있던 건물로, 좁지만 마당과 옥상도 있다.

“옛날 집 구조가 재미있어요. 딱 사각형 공간을 다채롭게 만들려고 이리 치우고 저리 치우고 했어요. 구조 자체가 재미있고 마당이랑 옥상도 있고. 그런 독립성이 우리 분위기에 잘 맞고 개인적인 성격에도 잘 맞아 이리로 오게 됐어요.”

정사각형 모양의 방 두개가 연속으로 붙어 있는 '청색종이' 내부 [사진 = 김상훈 기자]
정사각형 모양의 방 두개가 연속으로 붙어 있는 '청색종이' 내부 [사진 = 김상훈 기자]

그러나 문래예술촌을 떠나 길 건너로 이주한 이후에도 주변에 음식점과 술집이 들어서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골목 입구에 대형 술집이 들어서고 책방 인근에도 밥집과 술집이 생긴 것이다. 김태형 시인은 “저녁에 깜깜하고 불빛 하나 없는 골목이었는데 수시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골목이 됐다.”라며 특히 건물주가 임대를 한 식당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임대료가 오를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라고 이야기했다. 

문래동에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제기된 일은 아니다. 서울문화재단은 2016년 11월에 문래지역 예술가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한 일이 있다. 당시 조사에 의하면 문래동에 있는 예술가들은 저렴한 임대료로 인해 문래동을 찾아왔으며, 임대료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상업시설 유입’과 ‘부동산 투기 세력 진입’을 꼽기도 했다. 최근에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인해 집값과 임대료가 올라 예술가들이 쫓겨나게 되었다는 보도가 있기도 했다.

김태형 시인은 문래동에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이 찾아왔지만, 말도 안 되는 임대료 상승으로 쫓겨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서울문화재단의 16년 조사에 따르면 2년 간 임대료 상승 여부에 대해 34.4%만이 상승했다고 답했으며 임대료 상승 비율로는 5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김태형 시인이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상업 시설의 유입으로 인해 예술 활동을 하기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문래동 골목길. 사이사이로 술집이나 밥집이 들어섰다 [사진 = 김상훈 기자]
문래동 골목길. 사이사이로 술집이나 밥집이 들어섰다 [사진 = 김상훈 기자]

김태형 시인은 “상업 시설이 생기면 책방에도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시는데, 대부분은 술을 마시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하는 경우다. 그런 사람들이 중간에 책방이 있다고 둘러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청색종이’에는 외부가 고스란히 보이는 창문이 있는데 기자가 방문했을 때에는 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필름을 붙여놓은 상태였다. 김태형 시인은 “영업하는 곳이니 당연히 보여주고 홍보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놔야 하는데,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이고 매출하고 연결이 안 되어 가려두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예술촌이라고 불릴만한 곳인지 의문이 생길 정도입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예술을 보기 위해 찾아오진 않거든요.”

도시재생 등으로 문래동에 돈이 들어오고, 그 돈을 목적으로 부동산 기획자와 가짜 예술가들이 들어오며 예술가들이 이용한다는 것이 김태형 시인의 설명이다. 김태형 시인은 “예술가들은 언론의 조명 한번 못 받고, 생활도 어렵고, 여기를 떠나 어디로 갈까를 고민하고 있다.”며 “우울한 분위기로 인해 문래동에 활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김태형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김태형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문래동에는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을 정도이며, 수많은 사람이 상업 시설을 운영하고자 대기하고 있다. 김태형 시인은 “문래동의 예술가들은 기획자들과 가짜 예술가들에게 자리를 뺏기고, 술집을 비롯한 상업적 공간에 자리를 뺏기고 있다.”며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이나 영등포구청 등에서 예술가를 도우겠다고 나섰는데, 도움이 안 되고 엉뚱한 사람을 지원해준다거나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대안을 제시하고자 예술인 자치 모임을 만들자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김태형 시인은 “공공자본도 결국 외부자본인 셈인데, 외부자본이 문래를 자꾸 이상하게 왜곡시켰다. 그걸 바로잡으려고 예술인 스스로 나서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책방을 운영해온 소해에 대해 묻자 김태형 시인은 “처음에는 책방을 1년 정도 하면 뭘 좀 알겠구나, 이랬는데, 올해 들어가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며 웃어 보였다.

“책방이 동네 사랑방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뭔가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계기가 있어야 비로소 예술인 사랑방, 문인 사랑방 같은 것이 될 텐데, 아직은 기다려봐야죠. 오래 하면서 오래 남는 사람들하고 자연스럽게 뭔가를 하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사랑방의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이제는 갈 데도 없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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